2013. 11. 25. 11:30ㆍPhilippines 2013
아침을 먹은 후 운희형과 나는 트라이시클을 빌려 시내를 돌아다녔다.
두시간 내내 일벨이 끄는 인력거속에서 주요섭의 1925년 소설「인력거꾼」이 계속 떠올랐다
마닐라는 외국이라는 공간여행뿐 아니라 과거 1925년 시간여행을 함께 느끼기에 아주 적당한 곳이었다.
「인력거꾼」과 현진건의 「운수좋은날」은 공통적으로 인력거꾼이나 가족이 죽음으로써 비극으로 끝난다. 그만큼 인력거꾼은 현재의 삶도 끌고 가기 버겁지만 죽을 때 만큼이라도 행복하면 그림이 안되나 보다. 인력거 열심히 끌었더니 거부가 되어 벤츠 타고 천수를 누리다 갔다는 결말은 안되는 걸까 ? 일벨이 김첨지나 아찡과 매칭되는 부분은 상당히 많지만 결말부분까지 동일시하는 불경한 상상은 하지 않으려고 나는 애를 썼다
지금부터는 일벨의 입장에서 보는, 그러나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쓴 글이다.
나는 일벨이다. 트라이시클이 내 밥벌이다.
말라떼 (malate) 주변이 주로 내 나와바리인데 부촌은 차들이 위험하고, 가난한 동네는 손님이 없고...그러나 여기는 호텔과 카지노등이 몰려있어 외국 손님이 많다
우리는 빈차로 손님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정작 바쁜 손님 때우고 힘 팽기면 욕 뒤지게 먹는다.
공원 옆길을 따라 트라이시클 몇대가 쪼르르 서서 마냥 기다리고 있다. 가게 앞에 대면 시큐리티들이 쫒아낸다
뒤를 돌아보니 간밤에도 트라이시클 속에서 잤는지 세수도 안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저씨도 보이고 맨발을 핸들에 올린채 아직도 자는 친구도 있다. 이 바닥에도 약쟁이, 노숙자, 외국인에게 바가지에 심지어 강도짓을 하는 놈들도 있다는 소문이 퍼져 관광객들이 잘 안 탄다.
그래서 시큐리티 형들과 친해져야 하는 이유다.
휘익 !
고기집 시큐리티 형이 V 자 손짓을 했다.
오전 내내 공치나 했더니 다행이다. 뒷차에 얼른 가자고 하며 고기집쪽으로 건너갔다
발이 까져 절뚝거리는 한국인이 나에게 두명 태울수 있냐고 물었다. 뒤따라온 동료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얼마냐고 물어서 얼떨결에 200 peso (5,116원) 라고 했다. 짧은 거리 한탕 뛰는 것의 열배 돈이다.
몇시간 걸리냐고 또 물어 보길래 대충 ' 2시간 쯤... ' 했더니 OK 한다.
앗싸 !
주먹을 불끈 줬다.
발이 꺼진 사람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 치즈~ " 를 시킨다. 그랴 나도 기분이다 !
발까진 사람과 발꺼진 사람의 일행들이 손을 흔들고 지나갔다.
오늘 저 사람들까지 다 태웠음 친구들 모여 밤새 파티할 수 있었는데 ...아깝다
발꺼진 사람이 옛날에 여기 이 호텔에 묵었다고 한다
그때는 일본꺼 였다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산 미겔 맥주회사꺼다.
맥주 얘기하니까 더 덥고 시원한 맥주가 그립다.
얼마나 맛있을까 ?
마닐라베이로 건너간다
바닷가에 좀 내려 놓고 나도 쉬어야겠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이쁜 여자애 두명한테 트라이시클로 길을 막고 장난을 쳤다. 기분이 째진다.
발까진이가 나에게 애인있냐고 물어본다.
있어도 없다고 했다. 대꾸하면서 운전하려면 더 힘드니까...
발꺼진 사람과 또 기념사진
그랴 많이 찍어라, 시간은 흘러간다 !
삐끼가 다가왔다.
우리 손님이 한국인인걸 알고 ' 씨발 제페니즈' 라고 하며 환심을 샀다.
손님들이 좋아하자 세부에 사는 자기 조상이 태평양전쟁때 일본군과 싸웠다는 이야기까지 나불댔다
삐끼가 마차투어를 하라고 내 손님에게 권유했다,
나는 그냥 참견 안하고 뒤에서 어슬렁거렸다. 잘못 끼어들면 나도 피곤해진다
얘네들 하는 짓은 뻔하다.
어수룩한 관광객에게 ' 탈때 100 peso (2,500원), 내릴때 100 doller (110,000원) ' 라고 씌우는 악질들이다.
우리는 얘네들하고 같이 안 논다. 너무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내 일이 더 속편하다.
삐끼가 자꾸 꽁짜라고 말을 만져 보라느니 옆에서 사진을 찍으라느니 하는데 손님들이 맛이 간 표정들이다
이럴땐 내가 나서서 얼른 자리를 뜨는게 좋다.
손님을 태우고 힘있게 패달을 밟는데 등뒤로 계속 그 말이 들려왔다
" 씨발 제페니즈 "
쓰벌, 너나 잘해 임마, 괜히 우리들까지 욕먹이지 말구 !
그랜드 리비에라 호텔의 스위트룸 간판옆에 트라이시클을 안방 삼아 자는 사람,
다음 도착한 곳은 리잘공원이다
리잘은 필리핀의 독립 영웅으로 스페인에 비폭력 저항운동한 사람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그가 이 자리에서 처형되었고 여기에 리잘공원이 만들어졌다
여기 내려서 사진도 찍으면 그사이 또 좀 쉬어가려고 했는데 그냥 가자고 한다.
발까진이가 갑자기 내리더니 뒤에 매달려 갔다.
둘이 타려니까 좁지 ?
아.. 졸라맨 힘들다,
좀 쉬고 싶다.
공원 모퉁이를 돌자 도서관앞에 오늘도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한참을 가도 계속 남자들만 바글거리는게 신기했는지 발까진이가 잠깐 쉬어 가자고 한다.
발까진이가 물 두병 사서 나에게 마시라고 한병을 줬다.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냐고 물어봐서, 일자리 찾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줬다
발꺼진이는 큰 빌딩들 말고 집들이 낮은 곳으로 가자고 하고, 발까진이는 내 집이 어딘지 물어보았다
그래서 우리 동네로 데려가기로 했다. 나는 머리가 좋다 ㅋㅋ
시내를 뚫고 가면 빠른데 차들이 너무 많고 매연이 심해 아까 왔던 바닷가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점심때라 사람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 지역은 사람들 때깔이 틀리다. 남자들은 피부가 하얗고 살이 부~하게 찐 중국계 놈들이 많고 여자들도 다 이쁘다.
관공서 호텔 등이 다 몰려있어서 그렇다. 경찰서 앞을 지나갈땐 괜히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패달에 힘이 들어갔다
이 교회가 보이면 우리 동네에 다 온거다.
드디어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아 덥다.
슬슬 장사하러 나가는 동네 형
우리 집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 첫번째 집에 사시는 이 할머니가 우리 집주인이시다,
옆집 꼬맹이가 목욕을 하다가 부끄럽다고 숨었다
내가 사는 집은 폭이 3m 정도 된다.
1층 한 가운데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좁고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저 계단을 올라가서 3층이 우리 집이다
개들이 짖자 발꺼진이가 물었다
" 너는 개고기 먹냐 ? 한국인은 먹는다 "
저 개를 오늘 먹고 싶다는 거여, 먹으라는 거여, 먹냐는 거여 ? 뭔 말인지 모르겠다. 빙신 ~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대는데도 1층 아저씨는 널부러져 자고 있다
빨간 비닐 씌워놓은 곳이 우리집 3층이다.
다시 큰 길로 나왔다
골목옆엔 식당이 있는데 밥값이 50 peso (1,300원) 라서 그냥 집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발까진이가 동네애들을 데리고 가더니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아이스크림 신나게 들고오다 할머니에게 하나 뺐기고, 하나 남은거 엄마 준다고 비닐봉지 흔들며 골목안으로 뛰어갔다.
동네 남자 화장실,
마침 아이스께끼 장사가 지나가자 발꺼진이가 부르더니 하나에 얼마냐고 묻는다
5 peso (125원) 라고 하자 10개를 달라고 하더니
동네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코코넛 안쪽 하얀 살 부코 (Buko) 로 만든 아이스께끼.
발까진이가 우리집 월세를 물어보았다.
3,000 peso (76,740원) 라고 알려주었더니 집주인 할머니에게 아이스께끼를 뇌물로 주며 우리집 월세를 이번달만 300 peso (7,674 원)만 깎아 달라고 졸랐다.
할머니가 영어를 못 알아들었다. 아니 알아들어도 모른다고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발까진이가 굳건히 뒤에 아줌마에게 통역까지 시키며 계속 깎아 달라고 하자 할머니가 드디어 두손을 다 들었다
발까진이가 할머니에게 새끼손가락걸고 손바닥에 제록스까지 하는 것이었다.
잘한다 ! 홧팅 ! 진짜 깎아줄래나 ?
발까진 이가 할머니에게 뭔가 보여준다고 열심히 스맛폰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할머니가 자기 부인하고 닮았다고 사진을 보여주었다
할머니는 적잖히 당황한 눈치였고,
뒤에서 통역하던 아줌마는 눈을 게슴츠레 뜨며 하나도 안 닮았네 하는 눈치였다
발까진이가 발꺼진 이를 태우더니 자기가 운전하고 가겠다고 나한테 Bye Bye 를 하는 것이었다
저 트라이시클은 나도 사납금 넣으며 빌린거라서 내께 아니다.
죽어라고 쫓아갔다
Remedios circle 을 돌아 다시 출발한다.
☆는 우리집
발까진이가 계속 내 트라이시클을 끌고 가는 바람에 나는 쓰레빠로 열심히 뛰어갔다
트라이시클이 비틀비틀 하며 길가에 세워진 벤츠에 바짝 붙길래 겁나서 조심하라고 말했다. 긁으면 내 인생 스크레치 난다.
발까진이가 말했다
" 우리, 한국에 저런차 하나씩 갖고 있어, 걱정마 ! "
놀고 있네 ! 우짜라고 ! 속으로 욕을 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신기한듯 우리들을 다 처다본다
내 인력거 친구랑 마주쳤는데
" 쌔끼, 봉잡았네 ! " 하며 날 놀렸다
드디어 호텔앞에 도착했다.
발까진이가 발꺼진이에게 ' 200 peso 를 자기에게 주라' 고 했다. 자기가 운전했다고...
호텔 도어맨과 시큐리티들은, 그러지 말고 반까이 (Fifty, fifty) 하라고 부추겼다
200 peso (5,116원) 를 거머쥐고 핸들을 틀어 집으로 향했다.
오늘같은 날도 있고, 오래살고 볼일이다.
※ 한국의 법정 시급 : 4,86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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