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0. 21:00ㆍPhilippines 2013
콘크리트 비탈길을 다 내려오자 시원한 바다가 눈앞에 탁 트였다
운형이가 뱃사공과 몇 마디 주고 받더니 너무도 간단하게 배 하나를 섭외했다.
오~ 운형이 Cool !
배만큼이나 부실한 발판.
배는 흔들거리는데 난간은 한쪽만 있고 그나마도 아무 의지가 안되는 줄로 되어 있었다
조마조마하게 간신히 기다시피 건너왔다
우리는 몸만 타면 되고 무거운 짐은 선원들이 다 옮겨주었다,
배가 좀 엉성해 보여도 화장실까지 있었다.
드디어 출발.
하루에 비행기 버스에 배까지 육해공 다 타보긴 난생 첨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모두들 기분이 UP 되었다
' 방카 ' 라고 불리는 이 필리핀 전통 배는 자전거 보조바퀴처럼 배 양편으로 길게 지지대를 만들어 안정감이 좋았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대나무등을 많이 사용했고 다이버들에게는 승선할때 편리해 보였다,
가방 깊숙히 손을 넣어 스맛폰을 꺼냈다
' Maps with me ' 라는 어플은 Wi-Fi 가 안 잡혀도 GPS 만 켜 놓으면 내 위치가 지도 위에 실기간으로 표시되는 유용한 프로그램이다.
내가 지금 바탕가스에서 남쪽 공해상에 떠있는건 알아냈는데 ...어디로 가고 있지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새우 잡기엔 내 알통이 너무 쪼그라들었는데...우짤까나
운형이가 언덕위를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 이 바닷길을 지날 때마다 항상 보는데, 무슨 얼굴 같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어요, 형 ! "
카메라 줌으로 땡기고 확대해 봐도 이 정도가 한계다. 시커먼 여자얼굴을 양 손으로 감싼 부조상이었다,
모지 ?
귀국해서 찾아보니 ' Monte Maria ' 숙박시설로 되어 있었다,
저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멋질지 몰라도, 여기서 올려다보는 건물 모습은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 (Siren)이 불연듯 생각났다
※ 사이렌 (Siren) : 상체는 아름다운 여인이나 하체는 괴물인 신화속의 인물.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 그 노래를 들은 선원들은 소리에 취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오디세우스가 그 바다를 지날때 선원의 귀를 막고 자신을 돚대에 밧줄로 묶은후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한다.
스타벅스는 거리의 사람들이 자기네 커피향에 취하라고 이 사이렌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한참만에 배는 더 넓은 바다로 나왔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고 시커먼 파도가 점점 높아져 슬슬 겁이 났다. 여기가 인당수가 아니길 ...
김실장에게 담배를 두개피 얻어 뱃전에 무심하게 앉아 있는 선원에게 다가갔다.
담배를 나눠 피며 말을 텄다.
이름은 막스, 나이를 물어보자 22 이라더니 곧바로 Thirty-rwo 라고 고쳤다.
영어가 좀 약한거 같아 영어를 어디서 배운거냐고 물어보았더니 학교에서 배우는데 다니다 말았다고 한다. 자기네끼리는 따갈로어를 쓰면서도 영어를 어느정도 하는 필리피노들이 좀 신기한 순간이었다.
운희형이랑 내 나이를 맞춰보랬더니 Fourty-three, fourty 라고 하는데... 영어실력이 의심스럽긴 해도 그말을 믿고 싶었다
유일하게 작은 누님이 배멀미로 약간 고생을 했다
드디어 뱃머리 너머로 섬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저 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사방비치 (Sabang beach)라고 한다
검은 숲에 하얀 조개처럼 집들이 뜨문뜨문 박혀 있었다,
그 모습이 샤방샤방하여 사방비치인가 ?
한시간이나 걸린 뱃길.
부둣가에는 방카의 특성상 옆으로 배를 대지 못하고, 앞 머리를 정면으로 들이민 후 좁고 긴 나무판자를 끌어댔다.
배를 탈때보다 내릴때 더 힘들었다,
간신히 땅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귓속의 세반고리관이 견디다 못해 요동치는 바람에 오뚜기처럼 비틀거렸다.
우리들이 다 하선하자마자 필리피노들이 일사분란하게 무거운 짐을 들고 해변을 따라 쭈욱 들어갔다
그 광경이, 자기 몸의 몇배 되는 먹이를 물고 줄 맞춰 가는 일개미들처럼 보였다,
바닷가 카페엔 서양인과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앉아 우리 일행의 모습들을 쫒고 있었다
오후 내내 별로 할일도 없이 꽤나 심심했나보다.
그럴줄 알았으면 아까 한번 넘어져 줄껄...아니 난간잡고 물에 빠져서 한바탕 쇼를 벌였어야 했는데 ! 그들의 표정을 보니 내가 다 미안해졌다.
마을은 무성한 열대우림 속에 포옥 안겨 있었다.
야자잎 지붕아래 골목길로 애띤 소녀가 지나가며 나를 힐끗 처다본다,
오빠랑 나란히 앉아 오리알을 먹는 소녀
둘이 바라보는 바다는 오후내내 무심히 넘실대고 있었다.,
모래사장에서는 아이들이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놀이에 빠져서 해지는줄도 모르고 신이 났다.
쫌 있음 저쪽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리겠구나
" 얘야 고만 놀고 밥먹어 ~ "
타이티섬에 막 도착한 고갱의 눈에 비친 모습도 이랬을까 ?
그 광경들에 홀려 좀처럼 전진을 못하는 나.
운희형이 그런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한다는 듯...
드디어 우리의 숙소. 파라다이스 리조트에 도착했다
객실을 한 사람당 하나씩 준다고 해서 좀 어리둥절했는데 며칠 있어보니 운영진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저녁을 6시에 먹는다고 해서 한 사람 두사람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식당 바로 옆에 오픈된 부엌
우와~ 닭도리탕, 탕수육과 계란찜이 나왔다
아침 점심밥이 부실하기도 했지만 음식맛이 좋아서 배부르게 먹었다,
저녁 먹고 바닷바람쐬며 슬슬 마을 중심지로 걸어 나왔다,
일단 환전부터 하고...
100 US$ = 4300 peso = 110,000원. 1 peso 당 25.58 원 꼴이다.
과일 노점상도 구경.
클럽에 모두 모여 맥주 한병씩 들고 병목을 마주치며 첫날 밤을 자축했다.
신나는 K pop 이 많이 나오는거 보니 한국인이 젤 많이 오긴하나보다.
알딸딸, 흔들흔들...기분좋아 들어오는 길
내 눈에 비친 사방비치의 야경.
오늘의 주인공 : 정실장 (정호종)
젊을때는 자극적인 것에 끌렸는데 나이가 들수록 변함없이 꾸준한게 좋아진다. 식성이 그렇고 음악 취향이 그랬다.
사람사이의 관계도 그런 변화가 적용되었다.
값비싼 치장, 잘생긴 외모, 화려한 언변의 소유자보다 목소리와 표정과 감정이 안정적인 사람에게 끌린다.
정실장이 딱 그런 사람이다.
공항에서 처음 본 순간부터 여행내내 호종이의 얼굴표정과 목소리는 5 밀리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속엔 화산푹발이 일어나도 그의 얼굴은 항상 웃는 하회탈 같았다.
그런 그도 감정의 급변을 표정에서 들켜버리는 순간이 있었으니 ...
여행후 뒷풀이날 당구비 내기 게임을 치게 되었다.
후반부에 거의 안정권이라고 방심한 사이에 상대방의 쿠션이 성공하자 표정이 양반탈에서 초랭이탈로 변해버렸다
→
그랬다. 정실장이 외모는 부드러워도 승부욕과 자존심이 쎈 외유내강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에게 엄하기에 신뢰를 잃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사업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
벌써 군대간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이해가 됐다. 좋은 물건은 빨리 팔리는 법이다. 일찍 품절남이 되버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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