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쿠오바디스 ?

2013. 11. 20. 06:00Philippines 2013

 

 

 

 

운희형 !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우 ?

우리 만난지 1382일째 되는 날이야. 

벤동 오프모임에서 형을 첨 본 날이 2010년 2월 7일이었는데 벌써 천일이 훌쩍 넘었네요. 그 동안 둘이만 세번 만난걸 포함해도 총 대여섯번 봤나 ?  그런거 보면 사람의 인연이라는게 참 묘합디다. 많이 본다고 정이 더 붙는것도 아니고,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을수 있는게 사람 사이의 관계니.

이번 여행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이한 면이 없지 않은거 같아요

같이 가자고 가볍게 얘기 나눈게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초겨울 한밤중에 인천공항 가는 고속도로 위에 있는게 아니겠소 ? 

 

 

 

◆    ◆    ◆

 

 

 

김장김치 얼어터지는 한국에 가족을 남겨놓고 혼자만 따뜻한 곳에 간다는게 미안해서 조용조용 가방을 싸놨지만...

어쩔수 없는 설레임에 어젯밤 늦게까지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4시반을 13분이나 초과해서 눈이 떠지는 바람에 머리까지 세숫비누로 후다닥 감고 싸 놓은 가방 둘러 매고 나왔다. 깜깜한 겨울밤 공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급하게 운전하며 폰을 열어보니 부재중 4통화나 들어와 있다. 장난좀 칠까 하다가 장유유서에 입각해 전화를 드렸다,

"  형, 나 일어나서 벌써 출발했어.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하면 되지 ? "

 

 

그 새벽에도 대리주차 직원이 나와있어 다행히 약속시간에 청사로 들어갔다.

모니터에 우리가 달 비행기를 확인하고 J 코너로 찾아가 두리번거리자 운희형이 카트를 끌고 인파속에서 홀연히 나타났다.

오늘부터 동고동락할 맴버는 운희형 위아래 형제분, 정실장, 김실장, 두 누님, 나까지 총 8명이다

젤 연식이 있어 보이는 김실장님이 실상은 젤 먹내라는데 ...이번 맴버 서열이 개족보가 아닌가 슬그머니 의심이 들었다,

 

11월에 그것도 평일에 더더우기 신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빠져나가다니...성수기 비수기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머리위에는  '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가세요 ' 라고 각국말로 쓰여있었다,

 

 

110 게이트에 도착해서야 서서히 해가 떠올랐다.

 

 

 

게이트앞 승무원에게 마일리지를 물어봤다.

우리가 탈 Philippine Airlines 은 국내항공사와 공유가 안된다고 한다. 왕복 34만원에 너무 많은 걸 바랬구나,

 

먼저 와 벤치에 앉아 있으니 일행들이 한두명씩 내 주위에 모여 들었다

한참있다가 큰 누님이 웃으며 

"  왠 모르는 남자가 우리를 보고 말을 거나 ? 했는데 동생이었구먼 ! "

아까 첨 뵐때는 분홍색 잠바와 모자를 썼다가 지금은 필리핀 복장으로 갈아 입고 앉아있었더니 나를 못 알아본 것이었다

 

흔한 LCD 도 아니고 브라운관. 하나갖고 여럿이 함께 보기.

이 비행기도 나이를 많이 잡쉈구만,

 

 

운희형이 안절부절 못하고 계속 두리번거리더니

비행기문이 닫히자마자 빈 자리로 몸을 던져 알박기를 한후에 나를 부른다,

4명이 쪼르르 앉아 있다가 우리가 앞줄로 넘어가자 모두 행복해졌다

 

꾸벅 꾸벅 졸기 시작하는 운희형

행선지는 필리핀, 

행색은 알래스카

 

점점 무너지더니

 

아예 세자리를 차지하고 단잠에 빠져버렸다. 

어젯밤 미리 모였다더니 날밤을 샜구먼.  퍼스크 크라스유 ? 

 

나도 자는척 쎌카 찍다가 깜놀 !

 

사식이닷 !

 

근데 마시읍따.

 

 

 

 

둘째형님과 정실장

 

도착할때쯤 창밖으로 필리핀 땅을 내려다보며 마냥 즐거워 했던 둘째 형님

 

밥먹고 영화한편보고 살짝 잤다가 개운하게 일어나기에는 4시간의 비행이 딱 좋은거 같다.

 

잠이 덜 깬듯 멍한 표정의 운형이.

 

젤 연식이 있어보이는 우리의 막내 김실장.

 

 

마닐라공항은 그 흔한 자동보도 하나 없어서, 비지땀을 쏟으며 꼴찌로 내려왔는데 

 

입국심사대에서 다 만났다.

 

수속이 너무 느려 이줄저줄 떠돌아다녀도 별반 차이가 없다

설상가상, 옆줄은 심사관이 일하다말고 아예 화장실로 ...

 

 

청사밖으로 나오자 처음 운희형을 반긴건 부동산 분양팀 여직원들이었다,

생긴게 필리피노같았나 ?

 

 

 

 

 

햇빛이 너무 강해 눈도 제대로 못 뜨겠는데 카메라라고 안 놀랐겠냐.

모든 사진이 과다노출 되버렸다,

 

' 승합차가 우리를 기다려야지 우리가 매번 주차장까지 찾아가야겠냐 ' 고 형들이 투덜댔다.

그래도 표정들은 모두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여름옷으로 갈이입은 일행들 어깨위로 살인적인 햇살이 무차별적으루다가 내리꽂혔다.

 

짐이 많아서 승합차가 두대왔고 우리차에는 운희형과 누님 두분이 탔다. 

운전수가 주차장 아가씨에게 살짝 장난을 쳤다. 내가 봐도 이쁘긴 하네

 

공항을 나오자마자 차선이 확 줄어들며 도로에 극심한 정체가 벌어졌는데 우리 기사는 백미러 한번 안 보고도 능숙하게 병목을 통과했다.

만약 내가 렌터카를 빌려 나왔으면 일분도 못돼 차 고스란히 반납했을거 같다. 

보는 것 만으로도 질리게 만드는 필리핀 도로와 교통상황

 

 

 

고속도로에 올라타자마자, 뒷자리에서 운희형이

" 신나게 밟아 ! "  하자 우리의 기사 어니가

" 100 km 이상 넘으면 벌금이예요 "

필리피노가 교통법규를 논한다는건 벌금이 빡씨다는 증거.

 

숙소에 도착해서 먹긴 너무 늦으니까 휴게소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필리핀 현지용 휴대폰

 

잠시후 운형이가 내려놓은 쟁반엔 프랜치프라이가 4개씩 2열 종대로 빈틈없이 빼곡했다.

또 다른 쟁반엔 햄버거가 또 2열 종대로 정확히 각을 잡고 있었다.

이제부터, 드디어, 결국, 마침내 우리 여덞명은 食口가 되었다. 똑같은 내용물로 뱃속이 채워지는...

 

햄버거 뚜껑을 열어보니

치즈도 좀 녹아있고 소스도 옆으로 좀 흐르고 빵도 좀 따땃해야 먹을 맛이 나는데... 비쥬얼이 영 엉성했다

 

 

감자튀김 몇개가 고스란히 남았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햅버거 각에 옮겨 담고 케찹도 챙겨 어니에게 갖다줬다,

자존심 세다는 필리피노에게 이런거 줘도 괜찮을래나 고민했는데 반갑게 받긴 하더라.

기사들 점심값은 운형이가 별도로 줬다고 한다.

 

비록 햄버거지만 ' 식후연초는 불노장생' 이라 담배 하나씩 빨고 다시 출발.

한국 스모커에게 필리핀은 천국이었다.

 

 

 

 

뒤에 누님과 운희형은 수다 떨다 자다 하고 나도 어니랑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두시간정도 남쪽으로 내려갔다

필리핀 제 2의 도시가 어디게요 ? 

 

정답 : 세부

 

 

 

 

 

 

 

 

변변한 마을 하나 안 보이고 지루하게 들판만 달리다가 갑자기 넓은 바다와 거대한 크레인들이 줄 지어선 항구도시가 나타났다

바탕가스 (Batangas) 였다.

 

 

바탕가스에서 내려 배로 옮겨 타야 하는데 우리는 30분 더 달려 사설부둣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앞에 봉고차도 우리 일행.

 

 

 

너무나 인간적인 바탕가스 시내.

딱 내 취향이야 !

 

 

 

 

시내에서 본 성당.

보통 돔을 타일이나 금이나 기와로 멋지게 장식한 성당들을 많이 봐온 터라 필리핀에서 보는 이런 소박한 성당이 낯설지만 신선했다.

이 가난한 나라에서 돈 처 바른 성당을 봤다면 오히려 반감이 생겼을 것 같다.

 

 

 

 

 

 

 

전봇대에 왠 LOBO라는 글자가 ?

바탕가스 근처에 지명이었다

 

 

 

 

차가 시내에서 좌로 우로 몇번 돌아서 내가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넋 빼놓고 구경하다보니 벌써 변두리로 나왔다

 

 

 

포장도로를 잘 달리던 차가 갑자기 간판들이 덕지덕지 붙은 오솔길로 꺾어져 내려간다.

 

어니가 내려가며 크락숀을 울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좁은 길에서 큰 덩치들이 맞닥트렸다.

어니 입에서 욕인 듯한 따갈로어가 순식간에 튀어 나왔다.

오른쪽 도랑에 차가 안 빠지게 조심조심 교행하여 무사통과.

 

지금까지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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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형제여 !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이까 ?   쿠오바디스 (Quo Vadi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