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자먹는 사람들 "

2013. 2. 1. 10:30독서

 

 

 

 

 

 

 

이 책은 신경숙씨가 1990년대 여기저기에 발표한 단편들을 한권으로 모은 소설집이다.

각각의 글들을 읽어보면

 

 

 

<감자먹는 사람들>

고흐의 동명 회화에서 제목을 따왔다. 친한 언니에게 쓰는 서간문 형식.

첫줄부터 존댓말로 쓰여져 좀 느슨하게 보았는데 몇 줄 읽어보니 베스트셀러 작가의 저력이 느껴지는 문장의 연속이다.

기교뿐만 아니라 촌철살인하는 문장이 가끔 들어가 있다. 유명 작가가 되려면 남들이 해보지 않은 말을 할수 있어야 한다.

- 삶이 가져다주는 것중엔 우리가 물리쳐볼 수 없는 절대적 상실이 있다

- 내가 이미 누군가의 존재를 잊었듯이, 나의 존재를 기억할 나의 증인들도 사라지겠죠.

   가을이 끝나가는 저 하늘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저 구름처럼,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존재의 무

 

<벌판위의 빈집>

단편이지만 으스스한 공포물,

작가는 무서운 이야기라고 썼는데 남미쪽에서는 꽤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받아들여져서

무서운 것과 아름다운 것이 같은 뜻인가 ? 생각하게 했다 한다

 

<모여있는 불빛>

소설속에 소설이 있는 재밌는 구조다,

구수한 사투리에 흥미를 유발하는 일화까지 지루한줄 모르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처음 소설에 조부의 직업이 한의사란 것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여기서도 공통점이다.

소설끼리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는거 같다.

93년 발표한 이 소설은 시간나열순이 아나라 사건의 인과응보식으로 시간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그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독자의 몰입을 은근히 유발하고 있다.

 

<오래된 집을 떠날때>

- 남자의 나이가 마흔 일곱쯤 되고 보면 세상에서 배울 만한 일은 웬만큼 체득한 셈이다

  그래서 어떤 위대한 목적에도, 아름다운 여자에게도 아무런 기대를 갖지 않게 된다.

  그 나이가 되면 다만 아름다운 풍경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게 된다. 풍경이란 거의 배반하는 법이 없기에

- 어머니보다 더 일찍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아버지는 눈 쌓은 마당에 세갈래 길을 내고 있다

  우물과 대문과 변소로 가는 길을, 

  싸악싸악 눈이 쓸리는 소리와 타닥타닥 아궁이에 불쏘시개 타는 소리를 듣는 어슴푸레한 새벽이 있다.

  그 집의 어린 것들은 서로 아랫목으로 가려고 광목을 댄 검정 이불 밑을 수풀속의 물고기들 같이 헤치고 들어갔다.

이 작픔은 작가가 쓰던 작품을 완성시키지 않고 새 작품으로 들어간 처음 경험이라고...

누가 불러주는 예기를 받아 적듯 열에 들떠 글을 쓰는 그 순간에 몰두했다고 한다,

신령이 써 내려간 수작이라 감히 평할 수도 없어 원글만 몇개 옮겨 적는다.

이 작가에게도 엘리자벳 길버트의 지니가 들어온건가 ?

 

<빈집>

저자가 약 빨고 쓴 소설임에 분명한 졸작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이 편은 소설이 아닌 수필같다

-  멀어져서 못 만나는 것과 죽어서 못 만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  나를 비켜가는 그에 대해서 기껏, 내가 뭘 잘못했어요 ? 라고 밖에 물을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

다른 편들과 음산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책의 반 이상을 읽은 지금

이 두꺼운 책이 여러 단편들을 모은게 아니라 하나의 궤를 뚫고 가는 큰 소설이 아난가란 생각이 문뜩 들었다.

문학적인 기교를 떠나 내용은 읽을수록 재수 없어지는 책이다. 현주가 초반에 던져버린 이유를 알거 같다.

 

<전설>

-  나는 행복한 순간을 가져보았지요.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과도 바꿀수 없는 순간요.

   그 순간들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아무런 일이 생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선량하게 살아가게 할거예요.

   그 순간들이 앞으로의 내 생애를 지켜줄 거예요

-  누군가는 은혜를 갚고 누군가는 담요를 팔러 나가고 누군가는 아이를 낳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이국어를 배우고 누군가는 떠나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과꽃은 피고지다

아름다운 선남선녀의 사랑은 6.25 전쟁으로 인해 지상에서 영원으로 승화되었다.

 

<깊은 숨을 쉴때마다>

내가 수필이나 시보다 소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순전히 100 % 타인을 창조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기 때문이다.

나랑 다른 남을 만드는 것이 사실 가능하기나 한건가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서로의 개성이 뚜렷해야 그 글에 몰입된다.

그런 면에서 이 단편에 등장하는 말라깽이 소녀는 완전한 타인이 아닌 작가의 사생아 같은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각 단편의 제목과 이야기 사이엔 거의 관계가 없다.

오히려 단편의 제목들만 모아보면 한 문장이 완성될거 같은 느낌이 든다. 그것도 작가의 의도인가 ?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이 책을 읽은 걸 후회한다.

뭔 단편들마다 다 죽음이 나타나냐고 ! 것도 아주 잔인하게 소설속 인물들을 죽이고 있다.

  기찻길에 머리통을 놓고 부수고,

  애기를 계단에서 밀어 죽이질 않나,

  차에 치어 죽는 쌍둥이,

  총 맞아 죽어있는 여인,

  물에 빠져죽는 소녀,

  하다못해 전쟁에 나가 죽은 남편까지.

역겹다못해 무섭기도 했다능. 

세상에 나왔으면 인류에게 조금이라도 아름다운걸 보여주고 가야 하는게 인간의 도리거늘...

최소한 신여사의 글은 추상적인 단어만 나열한 현학적인 말장난이 아니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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