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4. 14:00ㆍ국내여행
연휴라서 놀러갈 가방 다 챙겨놨는데
토요일날 아침부터 몸살기운이 있더니, 일하고 들어와 자리보전하고 뻗었다.
현주랑 짱이는 끈 떨어진 갓처럼 오후내내 TV만 보고 있고...
한숨자고 저녁늦게 일어나 라면하나 끓여먹으며 땀 한번 쪽 흘리니 감기가 떨어져 버렸다.
다음날 정오가 되서야 남도로 차를 몰아본다.
고창 선운산,
그 앞산인 소요산의 서쪽 산기슭에 아담한 동네.
동네 집들은 그대로인데 학교 다닐 아이들이 점점 줄다보니
오래전 문닫은 학교를 별장처럼 꾸며 서정주 시인의
" 미당시문학관 " 이 만들어졌다.
고개를 들이미니
신발 벗고 들어오라고, 때묻은 슬리퍼들이 신발장에 잔뜩 채워져 있다,
애써 고개돌려 외면하고 양말바람으로 교실로 들어갔다.
휑한 내부
뒷목으로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얼른 손으로 뒤통수를 만져보니 방금 감은 머리처럼 땀이 척척하다
가뜩이나 오래된 책들을 거의 방치해놓아
색이 바래고 삭는 내가 풀풀나서 빼 볼 엄두가 안난다..
이렇게 온,습도가 높은 곳에서 유물들이 얼마나 베겨낼란가...심히 걱정이다.
서정주시인의 친일문제는 개인적으로 이해하자는 입장이었는데
'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 를 읽고 있자니
시대를 참 잘못 타고난 분이구나 싶다.
옆에서 현주가
" 시대를 잘못타고난게 아니라 너무 시류에 영합하는거 같은데 ? " 한다.
" 왜 ?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1968 <동천> 수록 - 푸르른 날 -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미당이 심사위원이 되었는데, 출품작들이 수준미달이라고 자기의 작품에 상을 준 그 시.
현주의 예기를 듣고보니
" 헛 ~! " 실소만 나왔다.
창밖의 하늘은 참 눈이 부시게 푸르르기만 한데...
전망대 위에 올라가면 미당의 글이 대리석위에 음각되어 있다
' 스물 세 햇 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 '
그의 부인이, 미당 바람나지 말라고 3,000배의 정화수를 떠 놓고 빌었다는데 미당이 바람끼가 좀 있었나 ?
그 바람이 그 바람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바람을 모티브로 만든 자전거가 허옇게 운동장가에 세워져 있다.
둬달전 늦은 저녁에 도착했을때
어둑해지는 운동장엔 바람만 가득하고 세워져 있던 자전거에선 팔랑팔랑 바람개비 소리가 났다
오늘은 그 바람마저도 안 부는 8월의 찜통속이다.
중첩된 뒷산이 선운산.
문학관앞에는 너른 논이 있고 그 앞이 바다
바다 건너 어렴풋하게 보이는 산들이 변산반도다.
마을 뒤에 소요산
마을 안쪽에 녹순 배가 올려져 있다.
이 마을은 예전에 해적질을 해서 먹고 살았는데...
어느 스님이 소금 일구는 방법을 알려준 이후 동네 사람들이 더 이상 흉폭해지지 않고
평화롭게 잘 살았다는 전설이 ..그때 그 해적선인가 ?
마을 입구에 홍살문 대신에 거대 걸상이 세워져 있어
그 밑으로 들어가 보았다.
골목엔 떨어진 감이 그대로
석류는 익기전에 벌써 썩기시작한다
그의 시집 <질마재신화>에도 이 동네에 무궁화꽃이 나오는데
이 골목에 무궁화를 보니 반가웠다.
미당의 시집 1975년 <질마재 신화>에
호랑이가 나오고 질마재 소금고개에 귀신과 도깨비가 동거하던 바로 그 전설속의 동네가 이 동네다.
시 몇 편을 인용해본다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 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 이 시는 나 어렸을때 <전설의 고향>에 소재가 되기도 했다.
<신선(神仙) 재곤(在坤)이>
땅 위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습니다.
' 재곤이가 만일에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리 마을 인정을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罰)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갑술년이라던가 을해년의 새 무궁화 피기 시작하는 어느 아침 끼니부터는
재곤이의 모양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일절(一切) 보이지 않게 되고,
한 마리 거북이가 기어다니듯 하던, 살았을 때의 그 무겁디 무거운 모습만이
산 채로 마을 사람들의 마음 속마다 남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하늘이 준 천벌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거듭 바뀌어도 천벌은 이 마을에 내리지 않고, 농사도 딴 마을만큼은 제대로 되어,
신선도(神仙道)에도 약간 알음이 있다는 좋은 흰수염의 조선달(趙先達) 영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 재곤이는 생긴 게 꼭 거북이같이 안 생겼던가.
거북이도 학(鶴)이나 마찬가지로 목숨이 천 년은 된다고 하네.
그러니 그 긴 목숨을 여기서 다 견디기는 너무나 답답하여서
날개 돋아나 하늘로 신선살이를 하러 간거여..."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 맷돌을 단단히 매어 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거라."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이 없으니 조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사 옳다."
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해일>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앞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나만 보면 옛날 이야기만 무진장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불거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곱씹을수록 맛나는 그의 시를 읖조리며
길 건너 앞 동네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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