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lice Munro - Dear Life "

2018. 8. 26. 12:37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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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첫날밤

일본에 가 닿기를



그레타는 남편의 배웅을 받으며 딸을 데리고 열차를 타고 있다

그는 마치 아이가 그에게, 그가 아이에게 영원히 경이로운 존재일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 아내를 향한 그의 미소에서는 희망과 신뢰 그리고 의지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남편이 대륙 북쪽 룬드에 한달 이상 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마침 지인이 토론토에 자기 빈 집을 한달간 쓰지 않겠냐는 제의를 해와서 받아들였다.


여성시인인 그레타는 토론토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시를 실은적이 있었는데, 편집자가 벤쿠버에서 여는 파티에 그녀를 초대했다, 그러나 애까지 맡기고 참석한 파티에 그녀는 동화되지 못하고 홀로 술에 취하고 만다. 파티 주최자의 사위라는 중년남자가 그녀를 부축해 집까지 태워다 준다. 그녀가 남자의 이름을 묻자

그는 이미 이름을 알려주었다고 했다. 아마도 두 번. 하지만 한번 더 알려드리죠. 해리스 베넷. 베넷.

토론토에서 왔다는 베넷의 ' 당신에게 키스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러지 않기로 했다' 는 말에 그레타는 심한 굴욕감을 느낀다.


그날 이후 가을과 겨울과 봄을 보내는 동안 그레타는 해리스의 품에 안기는 상상을 하루라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가정과 일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남편의 출장이 확정되자 그녀는 용기를 내어 해리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는 것과 같아요

그리고 바라죠

편지가 일본에 가 닿기를

그 내용뒤에 이름도 없이 그저 토론토에 도착하는 기차날짜와 시간만 써 넣었다.


토론토행 기차안에서 만난 청년이 딸과 놀아주는 바람에 그와 친해지고 술김에 키스와 애무를 나누다가 멈추자 청년이

"  내 자리로 가요. 그리 멀지 않아요 "

"  나한테는..."

"  나한테 있어요 "

"  지금은 없어요 ? "

"  당연히 없죠. 나를 무슨 짐슴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 "

그레타는 잠든 딸을 커튼으로 잠가 놓고 청년의 자리로 와 중단했던 것을 마저 한다. 좁은 자리에서 엄청난 쾌락의 충격을 맛 본 후 이내 딸이 걱정된 그녀는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딸이 없어져 버렸다. 방금 전 일탈을 후회하며 찾아 헤매다 다행히 객차사이에서 딸을 발견한다, 딸은 울지도 않고 묘하게 표정이 없는 눈동자와 살짝 벌어진 입을 한채 철판위에 앉아 있었다. 남은 시간동안 그레타는 남편에게 일상적인 안부편지를 쓰고 오로지 딸만 신경썼다,


새벽 토론토역에 해리스가 나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잡고, 결연하게 축하하듯 처음으로 키스했다,

처음에는 놀랐고, 그 다음엔 그레타의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고, 이어서 한없이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딸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이이는 그녀에게서 떨어지며 손을 놓았다. 그녀는 피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서 다음에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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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둘째밤

아문센



비비언 하이드는 한겨울 기차를 타고 와 마을에 내린다. 요양원을 둘러싼 주변 풍경은 매우 고요하고 굉장히 고혹적이었다

나는 그곳이 정말 아름다워서 멈춰 섰던 거라고 말했다

"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겠죠. 너무 아프거나 너무 바쁘지만 않다면 "


요양원 닥터 폭스를 만나려고 기다리던 건물안 코트 보관소에서 고등학생 소녀인 당돌한 매리를 만난다. 매리가 닥터 폭스에게 안내했다. 비비언보다 15살 정도 많아 보이는 닥터 폭스가 비비언을 부속 학교 교사로 고용한 것이다, 그는 비비언이 일하다 달아나 곤란해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라며 결혼 계획을 묻는다. 비비언은 없다고 대답한다.


비비언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주로 간호사들이었는데 비비언이나 세상일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닥터 폭스에 대해선 경외심을 품고 있었는데, 그가 책을 아주 많이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들이 모르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 그들이 모르는 시간에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뿐이었다,


비비언의 학생은 열다섯에서 여섯명 정도됐고 오전에만 수업이 있었다. 아이들은 시간표도 과제도 없는 이곳이 가짜 학교라는 것을 대번에 파악했다, 패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급조한 교실 분위기속에서 비비언은 진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수업에 정성을 쏟는다, 우연찮게 수업에 끼어든 닥터 폭스는 비비언에게 수업방식에 대해 ' 언제 한번 이야기를 해봅시다 ' 하고 비비언은 그가 자기를 골칫거리 바보로 생각한다고 확신한다.


아문센 시내 커피숍에서 점심을 먹은 비비언은 닥퍼 폭스의 진료실과 집을 보게 된다, 아내 없이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은 질서있게 정돈된 느낌이었고 그곳에 딱 맞는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어느날 닥터 폭스가 비비언을 자기집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그는 우리가 복도에서 마주친  그 순간 충동적으로 나를 초대한 것 같았다. 아마도 교육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던 그 말이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식사자리에서 남자친구 유무를 묻는 닥터 폭스의 질문에 비비언은 해군에 있다고 둘러댄다. 닥터 폭스는 편한 시간에 자기 집을 쓰라고 한다. 설겆이할때 닥터 폭스는 비비언의 등뒤를 눌러주는데 그 자극이 차에서 내릴때 했던 형식적인 키스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져 그날밤 침대에 누웠을 때 그 느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두번째 저녁식사 초대 자리에 메리가 불쑥 나타난다. 닥터 폭스는 냉혹하게 메리를 데려다 주고 와서 비비언을 침대로 데려간다. 그는 처녀인 비비언에게 콘돔과 수건을 건냈다

그는 되도록 서두르지 않고 해나갔다. 내 열정은 우리 둘 다에게 놀라웠을 것이다.

섹스후 그는 비비언에게 " 당신과 결혼할 생각이예요 " 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정해졌다.

그들의 약혼은 두 사람 사이에서만 확정된 사실이었고 결혼식은 비싼 예물교환이나 하객도 부르지 않고 물자가 부족한 전쟁중이라 저녁을 함께 먹는 것도 그만두기로 한다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헌츠빌에 도착. 맛없는 점심을 먹은 후 식당 화장실에서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비비언을 보며 닥터 폭스는 손을 꼭 잡고 예쁘다고 말해준다. 결혼식장 가는 길에 잠깐 들른 상점앞에서 닥터 폭스가 결혼을 안하겠다고 선언하고 비비언을 토론토행 열차역에 내려주며 마지막 농담을 한마디 하고 가버린다.

"  아마도 언젠가 당신은 이 날이 당신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거요 "


여러 해가 지난 후 토론토에서 길을 건너다 둘은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

시간에 훼손된 우리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 충격을. 동시에 응시하면서

그가 내게 소리쳤다 " 어떻게 지내요 ? "

"  잘 지내요... 행복하게 "

여전히 우리가 그 무리에서 빠져나오면 금방이라도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각자 가는 길을 계속 갈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만큼 확실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했다, 격한 울음도 없었고, 내가 보도에 다다랐을 때 내 어깨를 잡는 손도 없었다.

사랑에 관한 한 정말로 변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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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세째밤

메이벌리를 떠나며



메이벌리 읍내 영화관에 새로운 매표소 직원이 들어왔다. 영리해서 일은 잘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리아는 낮엔 집안일을 도와야 돼서 저녁때만 근무하기로 했다. 그런데 토요일 늦은 밤 퇴근 문제로 아빠랑 의견이 안 맞았다. 영화관 사장은, 야간 순찰을 돌다가 영화를 조금이라도 보겠다며 종종 들르는 경찰 레이를 떠올렸다. 레이가 리아를 책임지고 집까지 데려다 주면 된다.


레이는 18세에 입대하여 전쟁터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다. 그 당시 타운에는 퇴역군인들이 대학교 진학하는데 도움을 주는 학교가 있었는데 이저벨이 영어와 문학을 가르쳤다, 이저벨은 서른살의 유부녀로 학생들이 '어떤놈들은 행운을 독차지한다'고 수근댈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레이와 이저벨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저벨은 이혼했고 어렸을때부터 그녀와의 결혼을 꿈궜던 남편에게 충격을 주었다.

레이는 그녀에 비해 그 과정이 비교적 수월했는데, 그에게는 이렇다 할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가족도 그가 그보다 한참 더 나은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이제 자신들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앞으로 그의 인생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햇다. 그들은 레이에게서 그게 아니라거나 그러지 말라는 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기대는 어긋났다. 난 아무래도 좋아요. 그가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둘이 새 출발을 시작하자마자 이저벨은 심막염에 걸려 학교를 그만 두었고 레이는 생계를 위해 메이벌리에서 경찰로 근무하게 되었다,

레이는 집에서 반쯤 은둔자처럼 사는 이저벨에게 가끔 라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라이가 말이 별로 없고 영화에 대해서도 별 반응이 없어 그녀가 이미 어떤 면에서는 가족들로부터 그녀 자신을 차단시킨 것 같다고, 그녀는 그저 딱 필요한 만큼만 마음을 썼다고 ... 그러나 이저벨은 레이가 라이에 대해 말한 것 이상의 것들을 알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은 무렵, 리아가 실종됐다, 주변에 친구도 없고 그녀가 부업으로 목사관에서 다림질을 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날 목사관에 리아가 보낸 편지가 배달되었는데 목사의 아들과 결혼한다는 내용이었다, 신랑은 외지에서 재즈밴드 섹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이었다.

레이는 리아가 행방불명되어 있는 동안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로 고적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의 삶에도 또다른 면이 있다는 사실과 자기에게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 기분 나빴다,


리아는 아이 둘을 낳고 메이벌리 목사관에서 살았다, 어느날 레이는 우체국에서 리아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리아는 처음 듣는 목소리로 그를 반겼고, 그녀가 다 커서 사실상 아줌마가 되었는데도 그가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놀란 것처럼 반응했다,

레이가 집에 돌아와 이저벨에게 리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자 이저벨이 약간 심통을 냈다,


이저벨의 병이 심해져 전문의가 있는 큰 도시 병원으로 옮겼다. 레이는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봤지만 병세는 더 악화되었고 레이는 집 세간을 다 정리한 후 병원 근처로 이사하고 아예 병원에 잡역부로 일하며 간호했다. 한편 마을에서는 새로운 목사가 리아와 간통해 이혼하려 하고, 리아 시부모들도 아이들을 빼았고 리아를 쫓아냈다는 소문이 돌았다


4년이 지나자 레이의 병간호는 점점 소홀해졌고 이저벨의 건강은 악화되어갔다, 어느날 우연히 병원 부속실에서 리아를 만난다, 리아는 레이가 이 병원에 있다는 말을 들은지 꽤 되었고 그래서 자기가 이 병원에 있다는 걸 레이도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병원 레크리에이션을 지도하고 있었다, 리아가 레이에게 혼자 저녁을 해 먹냐고 물은 후 말했다

"  내가 가끔 저녁을 차려줄께요. 괜찮은 생각이죠 ? "


이저벨이 죽었다.

상실 전문가 라이에 비해 그는 초보지만 지금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홀로 계단을 올라가다 그녀의 이름이 떠올랐다. 

리아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그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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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네째밤

자갈



나는 타운에 옛집에서 이사 와 자갈 채석장 옆에 있는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엄마가 닐과 바람이 나 아빠와 이혼하는 바람에 카로언니, 블리치라는 이름의 개와 엄마와 닐과 함께 살고 있다, 


타운엔 전문 배우들이 여름에만 공연하는 극장이 있었다. 배우로 오해를 살 만큼 예쁘고 젊었던 어머니는 극장 기금을 모으기 위해 분주했고 자원해서 좌석 안내원으로 일했다, 일거리를 찾아 흘러 듣어온 닐을 거기서 만난 것이다. 아버지는 보험설계사라 많이 돌아다녀야 했다.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아버지가 울면서 온종일 집안 여기저기 어머니를 쫓아다닌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고. 어머니가 한 말을 차마 믿지 못해서. 하지만 어머니는 이버지의 마음을 달래주기는커녕 아버지를 더 힘들게 하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가 닐의 아이라고 했다,

닐은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

어떤 일이 일어나든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모든 것이 선물이야 주는 만큼 받는 거지


키로는 학교를 전학하지 않고 시내로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고 블리치는 늘 길가에서 카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어머니가 차가 없어서 유치원에 가지 못했고 카로가 집에 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카로 언니는 블리치를 몰래 숨겨 스쿨버스를 타고 가서 옛집에 두고 돌아오는 장난을 두번이나 처서 어머니 의심을 받았다.

카로가 블리치를 거기 데려다놓은 것은 뭔가를 알아보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카로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애를 태웠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주면 좋아했다. 뭔가 유쾌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며 집안 분위기를 들뜨게 하는 걸 좋아했다.


우편물을 가지러 좁은 시골길을 가던 나와 엄마는 늑대를 보고 닐에게 총을 사달라고 하지만 닐은 사주지 않았다

눈 녹은 물과 비로 채석장에 물이 차오르자 카로는 그 안에 들어가서 놀아도 되는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주말에 집에서 줄담배를 피우던 닐은 카로가 한 대만 피우게 해달라고 조르자 한번 피우게 해서 내가 어머니에게 일렀다.

어머니는 깜짝 놀랐지만 큰 소동은 없었다.

"  그 사람이 애들을 당장 데려가면 어쩌려고... 다시는 그러지 마 "


텔레비전을 끄자 어머니는 가로와 내게 밖에 나가 놀면서 신선한 공기를 쐬라고 했다. 우리는 개를 데려갔다

채석장 물웅덩이에 개가 빠지자 카로가 구하러 들어갔다가 익사한다, 나는 어머니를 부르러 트레일러로 갔지만 그 이후 일들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일로 심리상담가에게 상담을 받았다

어머니는 물에 뛰어들지 않았다. 충격으로 산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 남동생 브렌트는 장례식이 끝나고 달수를 완전히 채워 태어났다

장례식날 아버지가 쿠바여행에서 사귄 친구 조시가 날 돌봐주었고 내 새어머니, 즉 아버지의 두번째 아내가 되었다. 어머니가 새 집으로 이사해 자리를 잡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조시와 함께 지냈다.


어머니는 극장으로 돌아가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해서 나중에 관리자가 되었다, 닐은 카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이 애초에 없다며 집을 나간 후 브랜트를 한번도 보지 않았다, 사실 브랜트는 닐보다는 아버지를 훨씬 많이 닮았다, 아버지도 브랜트를 나에게 하듯 대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런 일이 없었음 조시를 만나지 못했을 테고 두 사람은 지금처럼 행복하지 못했을 테니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닐이 연락을 해와 고심끝에 만났다, 닐은 카로 사건에 대해 회상하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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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다섯째밤

안식처



197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청년들의 머리는 예전보다 더 길었지만 허리까지 내려오지는 않았고 자유분방함이나 반항심이 유난했던 것 같지도 않다.

부모님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아프리카 가나로 떠나며 열세살인 나는 쓰레기처럼 이모집에 버려졌다. 식탁 기도가 익숙치 않은 나는 재스퍼 이모부의 잔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거침없이 이야기 하는데 어머니의 언니인 이모는 이모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이 집은 이모부의 집이며 뭐든지 그의 마음대로고 모든 일에 그의 승낙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지배 체제가 아주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달았다.

이모집은 경건할 정도로 정돈된 안식처를 유지하고 있어서, 진지하지만 환경은 어수선했던 우리집에 대한 애착이 점점 희미해졌다

"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남편을 위해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


재스퍼 이모부는 마을 병원건물의 실세였고 신뢰를 받는 의사였지만 밖에서는 전혀 권위적이지 않았다. 이모부에게 모나라는 누나가 있었고 그녀는 어렸을때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이모부랑 다른 방식으로 키워져서 훗날 토론토에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이모부는 누나의 클래식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 이모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냐 ' 는 나의 물음에 이모는 걱정이 조금 더 담긴 불안한 웃음만 지었다.


모나와 동료들의 연주회가 있던 날, 이모는 옆집 부부를 초대한 저녁파티에 모나 일행을 모셔 연주회를 듣는 깜짝 이벤트를 열었다. 물론 이모부가 모임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시간에 ... 그러나 연주음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늦게 돌아온 이모부의 등장에 분위기가 썰렁해진다. 이모부는 아무 말없이 부엌에 가서 음식을 담아와 퍼 먹으며 돌아가는 사람들 들으라는 듯 나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  자 말해보렴... 네 부모님도 이런 걸 좋아하니 ? 그러니까 이런 음악을 ? 이런 연주회 같은 걸 ? 하루가 지나가기 전에 다 잊어버릴 걸 듣느라 두 시간이나 엉덩이를 뭉게는 데 돈을 쓰냔 말이야. 그런 위선을 떠는데 돈을 쓰느냐고 ? 네 부모님이 그러는 걸 봤어 ? "


그 일 이후 이모의 삶은 고달파졌다, 하지만 발렌타인데이에 이모부가 펜턴트 선물을 주자 비로소 용서를 받았다는 안도의 미소를 짓고 돌아서서 눈물을 몇 방울 떨구기까지 했다,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았다.

내가 재스퍼 이모부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예전처럼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모나가 죽었다, 이모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제스퍼 이모부의 옆구리에서 가시가 제거 되었으니 그녀는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장례식날 이모부는 가정부를 데리고 늦게 나타나 가정부에게 피아노연주를 시키고 조문객들을 일으켜 세워 찬송가를 부르게 했디. 그러다 입장하는 성가대 틈에 끼어 오도가도 못한채 큰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이모부 얼굴에 깃든 실망의 그림자를 보며 이모는 처음으로, 그게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그러려고 해도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  기도합시다 " 목사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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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여섯째밤

자존심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 나중에는 좋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어린 시절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기 시작해-바지에 실수를 하는 것만큼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쉬지 않고 계속 파나간다. 그리고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으면 심지어 더 크게 판다.


타운엔 내 또래의 오나이다라는 여자애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은행가여서 사립학교를 다니며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기를 당해 변두리 작은 마을로 좌천되자 오나이다가 매일 아버지를 태우고 출퇴근을 도와줬다, 사람들이 그녀 주위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둘 정도로 그녀는 어딘가 좀 다른데가 있었다. 그녀는 기품이 넘쳤고 흔쾌히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고 체격이 좋고 생기가 넘쳤고 피부와 머리칼은 눈부셨다, 그런데 내가 감히 그녀의 순진함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자 타운에 남자들은 다 군대를 갔는데 난 언청이라 면제 받았다. 수술도 받았고 내 특이한 발음을 사람들이 알아듣는데는 문제가 없지만 난 그것을 빌미로 백화점 부기일을 하며 고향에 머물렀다,

늘 이런저런 것에 면제되는 데 이골이 나서, 다른 많은 것들처럼 그것도 그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걸까 ?


오나이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집을 혼자 책임저야 했다. 어느날 길에서 만난 그녀가 나에게 집을 파는 문제로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럴 상대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부렸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내 집까지 따라왔다, 할수 없이 몇가지 조언을 진지하게 해주었는데 나중에 그녀는 내 말을 싹 무시하고 첫 구매자에게 헐값으로 팔아버렸다, 구매자가 그 집을 헐고 아파트를 올리자 그녀는 충격에 휩싸여 사기꾼으로 고소하니 뭐니 흥분했지만 결국 그 아파트 꼭대기 층으로 이사했다.

그녀가 집값을 할인받지 않았고 심지어 그런 요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은 뼌했다. 그녀는 주인에 대한 악감정은 어느새 다 털어내고...


그때 이후로 그녀는 집과 관련된 결정을 이야기하려고 우리집에 찾아왔고 고민이 해결된 뒤에도 TV를 함께 보려고 계속 찾아왔다,  나는 요리를 했고 그녀는 디저트를 사왔다. TV가 끝난 10시 이후에 나는 그녀를 차로 데려다 주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시련이어서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편하고 여유로웠다,

내 학창시절은 내가-내 얼굴이-어떻게 보이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익숙해지다가 다 가버린 것 같다.

오나이다는 주변 환경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아직 안정이 안되어 묘한 망설임과 가벼움이 느껴졌다,


어느날 내가 열병으로 쓰러지자 오니이다가 집에 안가고 극진히 병간호를 해줬다. 거의 회복되었을때 그녀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요지는 그녀가 내 집에 들아와 살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 말에 기분이 나빴고 화가 났고 놀랐고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에게 '이 집이 팔렸다' 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말했다 "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나봐요. 나는 늦장을 부리며 자꾸 생각하는 걸 미뤄요. 늘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 하는 것 같아요 "


나는 살 집을 찾아 타운을 돌아다니다 오나이다 아파트 1층으로 결정했다, 타운에서 만난 사람들이 편하게 아는체를 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그때 오나이다 생각이 났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과 상류층의 자신감은 어느덧 사라지고 나이가 들어 날씬하지 않았고 내 병간호 하느라 수척해지고 지쳤을 것이다. 내가 선택할 자격이 있다면 내 키를 고려해 작은 여자를 골랐을 것이다.


내가 짐을 꾸리는데 오나이다가 찾아왔다, 뒷마당에서 스컹크를 발견한 오나이다 표정이 황홀해졌다,

나는 그녀가 또다른 말을 해서 그 순간을 망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우리 둘 다 그러지 않았다,

우리는 그 순간 한없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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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일주일째밤

코리



젊은 건축가 하워드는 타운에 교회탑을 재건하는 일을 맡고 있다, 어느날 부잣집 초대를 받은 식사자리에서 그집의 딸 코리를 만난다.

그녀는 버릇없는 응석받이처럼 보였는데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다,


코리가 이집트에 여행가서 엽서를 보내자 하워드도 답장을 하기 시작했고 공연히 교회 첨탑을 살펴본다는 명목으로 그녀가 사는 타운까지 차를 몰고 갔다. 코리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후부터는 그녀의 집에 자주 들락거리며 집안일을 도와줬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잠자리를 하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은 처녀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그녀는 그가 잠자리를 같이한 두번째 여자였고 첫번째는 그의 아내였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정부 릴리언조차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서 큰 집에 코리 혼자 살게 되었다

코리는 그녀의 결정에 찬성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더 나은 삶을 꾸릴 수 있게 타자를 배우라며 돈도 주었다

하워드가 키치너 시내에 새로운 재력가의 집 만찬에 초대를 받아 아내를 데리고 참석한 자리에서 코리의 가정부였던 릴리언이 그 집에서 일 하고 있는 걸 보았다. 릴리언 또한 코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남자가 진짜 아내를 데리고 온 것을 알아보았다.


릴리언이 하워드에게 금전을 요구하는 협박편지를 보내왔다,

그의 아내가 이런 정보에 흥미를 보일까 ?

그녀는 영리하게도 그의 직장 주소를 알아냈고. 그의 직장으로 그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집주소 또한 알고 있었다,


그가 마침내 코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 코리가 대꾸했다. " 정말로 그애가 그렇게 이야기한 거 맞아 ? "

"  정말이라니까 "

그는 그 편지 때문에 기분이 더러워져서 즉시 편지를 태워버렸다고 했다,


코리가 그 돈을 자기가 주겠다고, 별거 아니라고 하자

안 돼. 당신에게 그런 짓을 시킬 수는 없지. 안돼 이건 신호야. 우리가 그만 멈춰야 한다는 신호. 그의 목소리에서.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그런 것이 느껴졌다고 그녀는 확신했다. 죄에 대한 그 모든 케케묵은 논의. 죄악

코리가 고집을 피우자 하워드의 얼굴이 정말로 밝아지며 코리가 현찰을 주면 자기가 사서함에 넣겠다고 했다

그는 사업 거래를 하듯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며 정중해 보이기까지 한 작별인사를 건냈을 뿐 여전히 코리를 만지지는 않았다


코리는 아버지가 죽은 후 구두공장을 큰 회사에 넘기고 그 자리에 박물관을 지으려다 실패한다. 하워드가 그때 그의 가족을 데리고 유럽여행을 가지 않고 계약서를 검토해 주었다면 그녀가 많은 수고를 덜 수 있었을 거라고 아쉬워했다,

이후 코리는 도서관에 근무하게 되었고 하워드는 토론토로 이사해서 그녀의 집에 찾아오는 횟수가 줄었다, 둘은 종종 여행을 떠났고 남들이 장애인 여자와 불륜일거란 의심을 안 할 거라고 생각했다,


릴리언이 갑자기 죽었다, 도서관 옆 교화에서 장례식이 치워졌다

가족과 함께 2주간 무스코카에 산장에 놀러간 하워드에게 코리는 그 소식을 전하려는 편지를 쓰려다 주저한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코리는 뭔가를 깨달았다. 자는 동안 깨달았다, 릴리언에게 보내는 그녀의 돈이 하워드의 비상금, 가족여행 경비, 자식들, 청구서등에 쓰였다는 것을...


코리는 아주 짤막한 편지를 보냈다

"  릴리언이 죽었어. 어제 묻혔어 "

그녀가 썼던 편지보다 더 길지도 않은 답장이 곧바로 왔다

"  이제 다 잘됐군. 기뻐. 곧 만나 "

그렇게 그들은 그냥 내버려둔다. 달리 무언가를 해보기에는 너무 늦었다. 더 좋지 않은 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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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여덟째밤

기차



전쟁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완행열차. 잭슨은 기차가 느리게 움직일때 무작정 뛰어 내려 정처없이 걸어간다.

벨은 젖소를 키우며 외딴집에 혼자 살고 있는데 잭슨을 발견하고 집에 들여 식사를 제공한다. 벨의 집은 낡고 수리가 필요한 상태였고 가진 재산이라곤 헛간에 마차 하나뿐이였다. 작은 체구의 메노파 남자 여섯명이 검은색 모자를 쓰고 검은색 옷을 입고 마차를 타고 지나간다, 잭슨이 음식을 다 먹고 돈을 내려고 하자 그녀는 손사레를 치며 돈을 밀어내더니 한가지 부탁이 있다고 했다. 떠나기 전에 여물통을 고쳐주면 좋겠다고.

여물통을 새로 만들어주고 저녁까지 얻어 먹은 잭슨은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거의 아쉬운 마음까지 들었다, 벨이 일주일 뒤 여기로 오면 잼을 실컷 먹게 해주겠다고 한다.


신문사에 글을 투고하며 먹고 사는 아빠는 여름 별장으로 이 집을 구입했다가 엄마가 아픈 바람에 일년 내내 살아도 괜찮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벨은 겨울동안엔 토론토의 사립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여름날 저녁 아빠가 산책길에 기차에 치여 돌아가신 후 삶의 방식이 바뀌어 버렸다. 그녀는 농사일과 엄마 병간호에 집안일까지 직접 해야 했고 메노파 신자들이 더는 농장 일을 할 수 없는 말도 키우라고 주고 마구를 채워 말 타는 법도 알려주었다. 로빈이라는 학교 옛친구가 그녀를 만나러 왔다가 사는 모습을 보고 기막혀서 토론토로 돌아가자고 하지만 그녀는 엄마 병간호를 위해 남아 있겠다고 한다

로빈은 벨에게, 너는 지금 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를 두려워하는 건 바로 너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후 잭슨은 그 집에 기거하며 방과 거실을 정돈하고 지붕을 고처준다. 그러나 마음속엔 크리스마스 즈음엔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을 한다

가을에 잭슨은 메노파 농장에서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고 메노파 부모들은 잭슨을 사윗감으로 눈독 들였다, 16살이나 연상인 벨과도 평행선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살아갔다, 그녀는 그런 여자였고 그는 그런 남자였다


벨과 잭슨이 물건을 사러 가끔 타운으로 나오면 사람들이 메노파신자로, 오누이로 착각할 정도로 변해갔다, 잭슨은 그 말에 발끈했지만 부부같다는 말보다는 나았다, 젝슨에겐 더 이상 군인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는데 벨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그대로 멈춘 어른 아이 같았다.


1962년 여름, 그들은 새로 산 중고차를 타고 토론토로 갔다. 그녀의 종양수술을 위해서 였다

모든 사람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된 뒤로 사람들은 의사에게 달려가 병원과 수술로 이루어진 한 편의 긴 드라마를 찍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봤자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골칫거리가 되는 기간만 연장시킬 뿐이라면서.

수술 전날 벨은 잭슨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고 조르다 포기하며 말한다

"  네가 그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 생활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을 거야 "

"  여기서 나가면 유언장을 써야겠어... 전부 네가 가져. 네가 들인 노력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거야 "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후 벨은 잭슨에게 비밀을 털어 놓는다

벨이 샤워중에 아버지가 욕실로 들어와 자기의 벗은 몸을 보고 갔고 다음날 설겆이 하는 벨을 성추행했다고, 그리고 밖으로 나가 기차에 몸을 던진 거라고...산책하다 사고 난 것이 아니라고.

나는 커가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그 모양이었으니 아빠도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거야. 내 잘못도 아니고. 아빠 잘못도 아니야

"  이제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 같아. 내가 그 비극을 느끼지 않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 비극을 밖으로 꺼내놓았으니까 ..."


다음날 잭슨은 토론토 시내를 정처없이 산책하다 우연찮게 5층 짜리 아파트 관리인으로 취직하게 된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3년후 잭슨은 신문기사에서 벨의 부고를 보게 된다. 그녀는 토론토에서 친구 로빈과 함께 살다가 죽을때까지 편안하고 씩씩하게 버텼을 것이라고 잭슨은 상상했다,


어느날 잭슨은, 집세를 떼먹고 도망간 딸을 찾으러 온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일린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집주인은 잭슨에게 그 여자일을 처리해주라고 눈짓을 하지만 잭슨은 숨어서 거칠게 머리를 저었다. 그녀는 딸의 밀린 집세를 치루고 가버렸다. 잭슨은 그녀를 만나보고 싶었고 안 본 것을 후회했지만 집주인에게 그녀의 모습을 묻지는 않았다,


1940년 수줍음 많은 잭슨과 목사의 딸 일린은 학교에서 서로 서먹서먹하게 지내다가 잭슨이 군대를 가기전에 급격히 가까워진다.

일린이 잭슨의 가방을 챙기러 그의 집에 갔다가 잭슨의 새엄마에게, 어렸을때 잭슨을 성추행했다는 일갈을 듣게 된다.

입대 전날 둘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만 서로 서툴러 실패한다. 입대후 편지왕래가 있었고 제대하는 날 만날 약속을 하고도 잭슨은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잭슨이 열차에서 뛰어내린 날이다

그때 그에게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이 날짜를 착각한 거라고 말할까 ? 그는 그녀가 거짓말을 잘 꾸며낼 거리고 믿기로 했다, 어쨋거나 그녀는 기지가 있는 여자였다,


잭슨은 일런이 다시 이 곳을 찾아 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전 계모의 성추행 기억을 가두고 잠가버렸듯 이번 추억도 그렇게 하기로 한다. 3일후 잭슨은 업무 인계를 해주고 은행에서 돈을 다 찾은 후 메노파들이 살고 있는 그 타운행 저녁기차를 탄다. 마을의 서늘한 아침공기를 맡자 기운이 솟았고 제개소가 있는 타운에는 틀림없이 일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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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아홉째밤

호수가 보이는 풍경



낸시는 처방전을 받으려 의사를 찾아갔지만 요일을 헷갈려 만나지 못한다. 사실 낸시는 자신의 정신이 살짝 나간 건 아닌지 의사에게 상담하고 싶었다, 의사가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인의 정신이 나갔다고요 ? ' 하는 반응을 듣고 싶었다.

다음날 의사 조수가 처방전이 나왔다고 전화를 해주며 정신 문제에 대한 전문가의 검사를 받는 날짜도 잡아주었다. 낸시는 정신이 아니라 단지 기억력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정신이 나간 노인 환자를 검사한다는 그 전문의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병원이 여기서 20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데 당일 못 찾으면 지각할까봐 오늘 미리 답사해 놓기로 한다.

남편이 같이 가면 좋겠지만 그가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안다. 그는 밤 시간의 절반은 스포츠를 보고 절반은 집핑을 하는 경제학자인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은퇴했다고 말하라고 한다


병원이 있다는 하이먼 마을은 인구 1553명의 작은 타운이지만 제법 큰 규모의 시장과 세탁소, 약국들이 있어 자신이 그곳에 살기에 알맞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작은 개인병원을 찾았는데 명패에는 낸시가 찾는 의사이름이 없었다. 주머니에 종이쪽지에 적힌 건 남편누나의 구두사이즈였다는 걸 알아내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명판을 아직 바꾸지 않았는지, 다 퇴근했는지, 이동진료를 하러 나갔는지 추측을 해보다 찾고 있는 의사이름을 슬그머니 잊혀버렸다,


낸시가 마을 중심가로 걸어나오자 또 다시 의사이름이 떠올랐다.

이런 일이 다 그렇듯 긴장히자 않아야 더 잘 떠오르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두 에어컨을 켜고 집안에 들어가 있는 거리를 걸으며 한 세기전에 사람들과 마을풍경을 상상한다. 장례식장을 지나처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뒤로 달리는 모습을 본다, 동네 노인들에게 의사를 찾고 있다고 말을 걸다가 또 의사의 이름을 잊어버린다. 

"  놀라지 마세요. 주소만 알면 돼요. 당신들이 혹시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

소년이 심술궂게 그들 셋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기습적으로 한 바뀌 획 돈다.


마을 공터에서 개인 꽃밭을 가꾸는 남자를 만난다.

"  그 의사를 찾지 못하는 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겠지요. 당신은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지금보다 과거에 더 잘 이해 된 적이 있나요 ? "

남자는 낸시에게 마을 밖 요양원에 가면 그 의사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알려준다, 낸시는 백미러로 그 남자와 동네 청년들이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그녀의 어리벙벙한 태도나 어리석음에 대해 뭐라고 농담을 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저 그녀의 나이에 대해. 그렇게 친절하던 남자가 그녀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녀는 요양원 안으로 들어왔다가 갇혀버린다. 소리를 지르려고 입을 벌리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고 온 몸이 부들거리고 숨을 들이쉴 수가 앖다, 한참 진정된 후 '샌디' 라는 이름표를 단 의사가 와서 말을 건다,

"  꿈을 꾸셨나봐요 "

"  별거 아니예요. 남편이 살아 있고 내가 아직 운전을 하던 시절로 돌아갔어요 "

"  차는 좋은 차였어요 ? "

"  볼보 "

"  봐요... 아직 쌩쌩하시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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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열흘째밤

돌리



71세인 나는 83세인 남편 프랭클린과 그해 가을 죽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례식을 하지 않을 것이며 미리 마련해둔 장지에 매장하는 계획까지 세워서 이제 남겨진 혹은 운에 맡겨진 문제는 실제로 죽는 것뿐이었다. 숲을 드라이브하며 자살할 장소까지 물색해 놓았다

우리에겐 더이상 중요한 문제도 없고, 다루어야 할 문제도 없다고.

그는 우리가 방금 다투었는데 뭘 더 바라느냐고 말했다.


그는 말 조련사이고 시인이다. 과묵한 그를 고향에서 유명하게 만든 건 외설적인 시였다. 그가 자기 입으로도 상당히 외설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오랫동안 가르치다가 지금은 은퇴하여 캐나다 소설가들의 전기를 쓰고 있다.

나는 그 일이 좋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교실에서 여러 해를 보낸 뒤라 그런지 절제되고 조용한 분위기도 좋았다, 하지만 내게도 그저 느긋하게 쉬고 싶고 말벗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온다. 이를테면 오후 네시처럼


따분한 오후에 그웬이란 화장품 외판원이 문앞에 나타났다. 막 떠나려고 마음을 먹은 그웬에게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고 안으로 들어오라는 말이 아마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았다. 재털이부터 찾았다. 책 이야기를 하다 그웬의 남편이 작년에 죽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프랭클린에게 그웬의 이야기를 해 주었고 며칠후 그웬이 로션을 갖다주러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도 커피를 내밀고 편하게 대화를 나웠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처럼 많이 배웠지만 편한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약간 우쭐해졌지만 어떤 학생이 나에게 반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신중해졌다. 그러다 곧 내가 그런 우월감을 느낄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저 창피했다.

날이 어두워져 그웬이 돌아가려는데 차 시동이 안 걸렸다. 마침 귀가한 프랭클린이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그도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가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보려고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그웬은 가장이라는 남자의 존재때문에 다시 안으로 들어가기를 꺼려해서 나와 함께 밖에서 기다렸다, 정비소도 문을 닫아 그웬이 그날 이 집에서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부탁전화를 걸었고 남편이 집안으로 들어오다 둘이 갑자기 동시에 얼어붙은 듯 동작을 멈췄다,

"  어쩜 세상에 " 그웬이 말했다

"  이럴 수가 " 프랭클린이 말했다.  " 나야 나 "

둘은 내가 예상치 않은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 프랭크 "  " 둘리 " 그웬 돌린이라는 이름은 돌리라는 애칭으로도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은 평소로 되돌아오려고 노력했지만 엄청나게 초자연적인 일이라고 느꼈다,

둘은 젊은 시절 두 주간의 불같은 사랑을 나눈 사이였고 그 추억이 남편의 외설스런 시의 소재가 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난 나에게 어제 저녁의 평온함과 즐거움이 모두 사라졌다

두 사람이 내 기분을 알아차린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상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귀에 거슬리는 조롱처럼 들렸다. 두 사람은 오로지 그들에 대한 생각뿐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차를 고처리 나갔다

프랭클린이 내게 잘 있으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는데 그가 평소 하던 행동이 아니였다. 나는 그들을 쫓아가 죽도록 두들겨 패고 싶었다


나는 차를 끌고 집을 나와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시내 모텔에 방을 잡고 산책을 하다 옛날 교사시절 유부남 교사와 섹스를 즐겼던 오두막을 발견했다

그의 아내는 전업주부, 당연히 자식들도 있었다. 그들이 삶이 유린될 것이다. 그녀가 알면 안된다. 그녀의 심장을 찢어놓을 테니까. 나는 조금도 상관하지 않았다. 찢어질 테면 찢어지라지

나는 레스토랑에서 나이를 실감하며 쓸쓸하게 저녁을 먹고 모텔로 돌아와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후회감을 느끼며 부리나케 집으로 돓아왔는데 주차장에 그웬의 차가 세워져 있었다, 남편이 밖으로 나오고 있다, 내가 다가가자 남편이 " 기다려 " 라며 나를 멈춰 세웠다,

기다린다. 물론. 그녀가 거기 있으니까

"  다시 차에 타 " 그가 말했다, "  여기서는 이야기 할수 없어, 너무 추워 "


그는 울고 있는 나에게, 그웬에게 새 차를 사줘 떠나보내고 이 고물차는 자기가 샀다고 하며 달래주었다,

"  우리는 싸울 어력이 없어 " 그가 말했고 나는 우리가 얼마나 늙었는지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가 시킨 대로 할 것이다

그가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나는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존경스러울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가 함께했던 삶 전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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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열한번째밤

시선


내가 다섯살때 남동생이 태어났고 다음해엔 여동생이 태어났다, 엄마는 그것이 내가 바라던 일이었고 내 선물이라고 늘 이야기 하지만 나도 몰랐던 생각이었고 어머니가 꾸며낸 것이다. 그러나 권위적인 어머니에게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나에 대한 머어니의 생각이 내 생각과 얼마나 많이 다를 수 있는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집안 분위기탓에 가정부로 들어온 세이디에게 쉽게 의지하게 되었다, 이제는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만큼 똑똑해졌다, 세이디는 우리 마을 라디오 방송 DJ를 하는 유명인이었다, 방송에서 그녀는 슬픈 노래를 불렀지만 우리집에서 일할때는 활력이 넘쳤다, 세이디 또한 이 집에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나 밖에 없었다, 내안에 점점 반항심이 생기자 나는 타운 친구들을 한명도 사귀지 않았고 세이디를 더 많이 따랐다,

어머니는 학교에 다니게 되면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나에 대한 뭔가가 좀더 나아지거나 세이디와 관련된 뭔가가 더 나아지거나.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세이디는 내게 노래를 몇 곡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노래에 그리 재능이 없었다,

열여섯, 어쩌면 열여덟이나 스물쯤 되었을 세이티는 주말마다 타운 댄스홀에서 혼자 춤을 추었다,


어느날 나는 엄마차를 타고 진입로도 없고 보행로도 없는 단아한 집에 갔는데 거기는 세이디 집이었다.

세이디가 주말에 타운 댄스홀에서 춤을 추고 들어오다 차에 받혀 죽었고 오늘 엄마가 문상을 온 것이었다.

"  남자친구도 없이 여자 혼자 걸어서 춤을 추러 가다니요 "

화를 자초한 거라고, 그 친절한 여자가 더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집에서 어머니는 세이디와 그녀를 친 차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타운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나는 시체를 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강제로 나를 관앞에 데려갔다

"  이리 오렴 "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게는 증오심이 담긴 것처럼, 승리감에 젖은 것처럼 들렸다,


나는 죽은 세이디가 속눈썹 사이로 밖을 바라볼 수 있을 만큼만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때 놀라지 않았고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그 장면은 곧장 내가 세이디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 속으로 섞여 들어갔고, 어째서인지 나 혼자서만 경험한 그 모든 특별한 순간들 속으로도 섞여 들어갔다,

나는 그 일을 그렇게 쉽게 믿었다, 어느날 아마 십대였을 때, 마음속에 어두운 구명을 간직한 내가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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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열두번째밤



여동생 캐서린과 나는 이층침대를 놓고 한방에서 같이 잤다.

처음에는 자유, 낯선 느낌으로 그랬는데 점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자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때 내가 바라던 것은 이미 잠이 아니였다, 나는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 있었고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내가 바라는 것이었다,

무언가가 내게 어떤 행동을 하라고 계속 다그쳤다, 그 생각을 쫓아버리려 할수록 더 자주 떠올랐다.

그건 사랑하는 동생의 목을 조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광기도 아니고 그저 골려주고 싶은 마음, 슬그머니 들고 일어나는 부추김이었다. 그러지 않기 위한 방법은 그 방에서 그 집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밤마다 집주변을 배회하고 다녔고 새벽에서야 방에 들어와 아침까지 늦잠을 잤다,

처음에는 집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았지만 펌프 손잡이나 빨랫줄 아래 단에 부딪히지 않을 만큼 내 시력을 믿게 되자 이곳저곳 더 멀리 나가 보았다


어느 밤 -내가 일어나서 돌아다닌 지 스무번째 밤인지, 열두번째 밤인지 아니면 어덟번째나 아홉번째 밤인지 모르겠다- 바로 앞에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는데 뒤돌아서기엔 이미 늦은 듯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멀리 타운을 바라보며 현관 계단에 앉아 있었다,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냐고 물어서 ' 목을 조를까봐서요 ' 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 사람들은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한단다' 라며 당황한 기색이나 화들짝 놀라는 반응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걱정할 거 없다는 아버지의 말은 내게 효과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되돌아왔다.


요즘에는 부모 노릇을 오래 하다보면 실수인 줄 아는 실수뿐 아니라 딱히 실수인 줄 모르는 그런 실수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내심 얼마간 초라해지고 이따금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가 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에 정식 병명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증상이 멈추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가 지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여자를 사랑했다는 것을.

어찌됐건 그때부터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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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ro 와 보낸 열세번째밤

목소리들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가족 전체가 작은 학교 건물이나 커다란 거실이 있는 농가에 춤을 추러 갔다,

농장 처녀의 삶에서 벗어나 교사가 된 어머니는 바라던 지위도 얻지 못했고 타운에서 사귀고 싶은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돈도 충분치 않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현실의 삶을 짊어지고 사느라 나에게 신경도 많이 쓰지 못했다,.


사교적인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모든 말이 분명하고 단호하고 주위를 끄는 것이어야 했다,

뭐든 특별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는 걸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어머니를 따라 춤추러 가고 싶어 안달이 나는 열살이 되었다,

우리가 사는 길에 있는 단아한 집에서 댄스파티가 있는 날, 어머니는 검은색 벨벳 드레스로 치장을 하고 갔다, 어머니도 예뻤지만 한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어머니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그 여자의 드레스에 비하면 어머니의 드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그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이 나이 들었는데도 세련될 수 있다고는, 뚱뚱하면서도 우아할 수 있다고는, 뻔뻔하지만 기품이 넘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녀는 타운에서 유명한 매춘부였다는걸 나중에 알았다,

사람들이 춤을 추는 거실을 흘끔거리던 어머니는 그 매춘부를 알아보고 내가 유난히 싫어하던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집에 가자고 재촉했다.

어머니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던 기대, 동네에서 기분좋고 품위 있는 춤을 즐기려던 기대. 그 기대가 송두리째 무너졌다며


주변 포트 앨버트 공군기지에 청년들도 댄스파티 소식을 듣고 와 있었다, 매춘부 허치슨 부인은 데리고 있던 젊은 여자인 패기를 데리고 왔다, 내가 옷을 가지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공군 청년이 패기의 허벅지를 만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 청년들은 잉글랜드 출신이었고 독일군과 싸우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내게 그토록 온화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그 억양이 영국 어딘가의 억양이 아니였을까 생각한다.

나는 살면서 남자가 여자를 대할 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여자가 아주 훌륭하고 소중한 존재여서 어떤 불친절한 행동이나 말이 그 여자 근처에만 가도 위법행위나 죄가 된다는 듯한 그런 목소리를


나는 패기의 얼굴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많이 떠올렸다, 그녀를 위로하는 청년들에게 감탄했다. 그런 축복을 받는다면 얼마나 근사할지, 그럴 가치가 없는 패기가 그런 행운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춥고 어두운 내 침실에서 그들이 나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들의 손이 내 가는 허복지를 축복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나도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날들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내 에로틱한 환상속에 머물러 있는 사이. 그들은 떠나버렸다. 그들 중 몇몇이 대부분이 영원히 떠나버렸다,



<인용사진>



Munro 와 보낸 마지막날밤

디어 라이프



어렸을때 나는 타운에서 떨어진 길끝 집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나를 타운에 있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아버지를 부추겨 타운에 낡은 가축우리를 구입했다. 타운에 세금을 내야 그쪽 학교에 다닐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다이앤이란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어느날 그 친구네 놀러가서 하일랜드 플링이란 춤을 배우고 있을때 어머니가 날 찾으러 왔다,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나에게 그 집에 다시 가지 말라고 헸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다아앤의 어머니가 매춘부였고 매춘부들이 잘 걸리는 병에 걸려 주었다고 한다. 어쩌다 마주친 다이앤의 할머니는 다이앤이 토론토에 일자리를 찾아 갔다고 했다


부모에게 꽤 괜찮은 농장을 물려 받은 아버지는 타운 끝에 땅을 사들여 여우 여섯마리를 키우며 나중에 밍크까지 키워 성공하려는 희망에 부풀었다. 돈이 조금 벌리자 아버지는 모은 돈을 그 사업에 쏟아 부었고 어머니는 저축한 교사월급을 투자했다,

아버지는 모피 사업에 너무 늦게 뛰어 들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근근히 생활하다가 결국 가축우리를 허물고 주물공장에 경비로 취직했다.

사춘기가 되어 어머니에게 자꾸 말대꾸를 하게 되고 어머니는 어김없이 마구간으로 달려가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다.,

그러면 아버지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허리띠로 나를 때렸다


내가 사는 길 언덕위에 집 한채가 있는데 어머니는 그 집에 예전에 살았던 미친 노부인 이야기를 종종 해주었다, 주문한 버터가 빠졌다고 식료품 배달 청년을 손도끼로 위협했다는 것이다. 노부인인 네터필드 부인도 젊었을때는 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 가을날 내가 집밖 유모차에 뉘여져 있었을때 엄마가 창밖으로 네터필드 부인이 우리집으로 성큼성큼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불길한 생각이 들어 나를 얼른 집안으로 들고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그 여자는 천천히 집 주변을 걸어 다녔고 모든 아래층 창문 앞에서 어김없이 걸음을 멈추었다. 물론 그때는 여름이라 덧창을 닫아두지 않았다. 그녀는 유리창마다 얼굴을 바짝 붙였다,

어머니는 처음엔 네터필드 노부인이 그냥 들여다 보기만 했다고 하다가 나중엔 조바심을 내고 문을 흔들고 꽝꽝 쳤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노부인의 안부를 묻자

"  사람들이 데려갔지. 그랬을거야. 혼자 외롭게 죽지는 않았어 "


나는 결혼해 벤쿠버로 이사한 후에도 타운에서 발행하는 주간지를 구독했는데 어느날 네터필드라는 이름의 여자가 올린 시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시 내용을 보니 내가 살던 집을 묘사한 것이었다,

노년에 나는 흥미를 느껴 기록을 뒤져 봤는데 시를 쓴 사람은 미친 노부인의 딸이었고 우리집이 예전엔 네터필드 가족이 살던 곳이라는 걸 알아냈다. 노부인을 데려간 사람은 시를 썼던 그 딸이었고 노부인이 우리집에 들이닥쳐 유모차를 들추며 찾으려고 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다 커서 떠나버린 그 시인 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에도 그리고 장례식에도 나는 집에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를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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