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이트의 카우치, 스콧의 엉덩이, 브론테의 무덤 "

2015. 6. 13. 14:13독서

 

 

 

 

 

 

현주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프로이트 생가를 가보려고 했는데 마침 좋은 책을 발견했다. Freud's couch 라...

 

책을 끝까지 다 읽고도 이렇게 정리가 안되긴 또 첨이다.

선입견으로 갖고 있던 책의 주제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현학적인 설명과 추상적인 단어들에 압도 당하고 문법에 안 맞는 문장에선 번역을 탓했다.

맨 뒤에 역자후기를 읽고서야 비로소 감이 잡혔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어떤 방식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지, 이 책이 왜 중요한지... 과외수업을 받아야 정규 교과서가 이해 된 꼴이다.

 

나름대로 이해한 걸 풀어보자면 ...

저자 Simon Goldhill은 영국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대학 킹스칼리지 그리스문학 교수이자 고전연구소 소장에 케임브리지 예술·사회과학·인문학 연구센터 대표이며 영미권 유명 방송인이다. 깊이 있는 인문적 사유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로 독자들과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스타 지식인이라고 겉표지 안쪽에 친절하게도 설명을 가장한 엄포를 놓고 있다. 담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길에서 멀치기 킹스칼리지를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나로서는 얼마나 번접 못할 인간인지 충분히 기가 죽었다, 왜 모든 저자들은 나보다 잘 난 것일까, 이젠 못난 사람들의 책들이 트랜드가 되는 시대가 올때쯤 되지 않았나 ?

저자는 '무언가 박토리아 시대에 관한 것을 하라'는 편집자의 제안에 빅토리아 시대의 작가 5인의 집과 박물관을 빅토리아 시대 순례 안내책을 따라 빅토리아 시대의 수단인 기차와 마차등으로 답사를 하게 된다. 골드힐교수는 문학기행이 처음 등장했던 19세기의 방식을 좇음으로써 문학기행의 원형을 찾고자 했다. 작가 5인의 사상과 저서를 알아가는 여행과 함께 문학기행의 기원 자체를 느껴보는 여행을 겸하고 있는 것이다.

 

    월터 스콧의 애버츠퍼드

    워즈워스의 호수지방 도브 코티지와 라이덜 마운트

    브론테자매의 하워스 목사관 집

    셰익스피어의 스트랫퍼드 생가

    프로이트의 런던 햄스테드 생가.

저자는 작가들과 그들의 물건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이 책의 제목에 쓰인 프로이트가 상담할때 썼던 환자들 소파와 스콧의 엉덩이 자국이 눌린 의자, 브론테의 헤진 스타킹과 묘지... 그런걸 보러 가느니 그들이 쓴 책을 읽는게 낫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책 자체이지 작가의 집이나 그의 물건은 부차적이고 비본질적이라고 해 놓고 나중에 가선 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모종의 충족감을 맛보았다고 실토한다. 그가 반대하고 거리를 두려는 것은 문학기행 일반이 아니라 그릇되거나 빗나간 문학기행 또는 장삿속에 오염된 문학기행이었던 것이다. 나의 다음 여행지에서 만나게 될 무하와 에곤 실레, 드보르작, 모짜르트 등 예술가들의 흔적을 좀 더 본질적으로 보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거 같다.

 

여행기를 쓰면서 저자가 자신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노출한 것은 아닌지 하는 두려움과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고 고백한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독자가 대상 또는 주제에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 구실을 한다는 역자의 말에 공감이 됐다

 

 

<Lion Hunting in Scotland>

...요즘 아이들이 유명해지고 싶어 하면서도 무엇으로 유명해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노라고 개탄하는 기사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등장하지만, 그런 기사를 싣는 잡지와 신문들이 스스로 개탄해 마지않는 것과 깊은 공모 관계에 있지 않은 척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빅토이라 시대 사람들이 작가들의 집을 순례했던 까닭을 이해하는 데에 한 가지 장애물이 있다면 우리가 여행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못한다는 것, 천천히 심장에서 흘러나온 시구들이 우리의 눈을 이끌도록 내버려 두지 못한다는 것, 그 말들이 비롯된 근원을 향해 걷지 못하며 거기에서 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 우울해졌다...

...나에게 스콧의 존재는 서재 의자에 엉덩이 자국이나 홀에 전시된 접힌 바지에서가 아니라 그가 한데 모아 놓은 물건들을 통해 표출되는 그의 사람됨에서, 자신을 공적인 인물로 보여주는 박물관에서 더 분명해 보였다.

 

<Panting Up the Endless Alp of Life>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특히 그가 자연속의 어린아이를 지나치게 이상화했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 어떤 시인도 그가 지녔던 정도의 힘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정도의 다양한 직업군과 이상을 그만큼의 진정 어린 참여로 끌어내는 것을 우리 당대의 문화에서는 달리 찾기도 어렵다. 현대 사회의 접착제는 그때에 비해서는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한결 밀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도브 코티지는 오지 한가운데 있다. 워즈워스와 누이는 어느 겨울날 언덕 지대를 넘어 수 마일을 걸어서 이곳에 처음 도착했다. 오두막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불을 피운 위층에서는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거실로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가장 가까이 사는 친구들도 10마일이나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대형 마트에라도 들어간 듯 다소 애처로운 모습으로 박물관 안을 터벅터벅 걸었다. 박물관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서 동료가 " 술이나 마시러 가지 ! " 라고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내와 함께 박물관에 가는 것의 장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집중력 지속 시간을 알고 있으며 둘 다 케이크를 좋아했다. 친한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는 법이다...

 

<Seething in Yorkshire>

...빅토리아 시대 삶의 표면으 그린 책은 많았다. 하지만 <제인 에어>로 해서 우리는 비로소 문을 통과해 집 안으로, 커튼 뒤로, 그리고 여주인공의 정신과 마음속으로 안내를 받게 되었다...

...선반 꼭대기에서 <콘힐 매거진>을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발견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브론테 가 사람들이 당대의 잡지를 탐욕스럽게 읽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브론테 학회의 양장본 회지들이 놓여 있는데, 내 생각에는 어디 다른 곳에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샬럿의 침실 한가운데에는 정면이 유리로 된 장식장 하나가 있는데 그 안에는 샬럿의 옷가지 몇 개가 들어 있다. 드레스 한 벌, 신발 한 켤레, 그리고 허벅지 부근에 구멍이 나고 색이 바랜 크림색 스타킹 하나가 그것이었다. 병적으로 수줍음을 탔던 샬럿만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 여성 그 누구라도 자신의 낡은 속옷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바랄 사람이 과연 있을까 ? ...

 

<Oh for a Muse of Fire>

...그러나 스트랫퍼드의 운명에 정말로 책임이 있는 것은 다시 한번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이었다. 셰익스피어는 조용히 스트랫퍼드로 은퇴했으며, 자산 소유자로서의 삶을 살다가 숨을 거두었다. 그는 그곳 교회에 묻혔다.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시인 구역'에 묻힌 것이 아니다. 그의 사망 당시 그것은 국가 전체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때와 같은 엄청난 슬픔의 분출 같은 것은 없었다.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 뒤 150년 동안 그의 희곡들은 부침을 겪었다. 그때그때 관객의 기호에 맞추어 다시 쓰이기도 했는데, 대개는 주로 공연되던 몇몇 비극들의 결말을 개탄스럽게도 해피엔딩에 가깝게 바꾸는 식이었다, 그 작품들을 쓴 셰익스피어 자신은 그다지 관심을 끄는 인물이 아니었고, 스트랫퍼도는 거의 지도에도 등재되지 않았다...

...지역민들뿐만 아니라 런던과 이웃 도시들에서도 구경꾼들이 몰려왔다. 늘 그렇듯 계속해서 비가 내렸고, 도로는 진창으로 바뀌었다. 여관은 예약 손님이 넘쳐났고 물가는 하늘높이 치솟았다. 낯선 사람이 시간을 물어보자 노골적으로 1실링을 요구하고는, 분까지 알려주는 대가로 몇 패니를 추가로 요구하는 꾀 많은 지역민도 있었다...

...문제는 셰익스피어의 삶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 겨우 종이 한 장에 담길 정도뿐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를 다룬 수많은 전기들에는 "~이었음에 틀림없다" " 아마도" "분명코" 처럼 사실들의 빈틈을 메꾸느라 동원된 구절들로 가득하다...

 

<Freud, Actually>

...프로이트는 지난 세기에 가장 열심히 연구되는 주제의 하나임과 동시에 가장 덜 읽히는 저자 중 한 사람-그러나 인지도는 가장 높은-이기도 했다. 우리 문화에서 이처럼 기묘하면서도 우상에 가까운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달리 떠올릴 수가 없다. 물론 마르크스와 다윈이 근접한 2위에 해당한다...

...물건의 수는 2천 개가 넘었다. 수집을 시작한 뒤로 프로이트는 대체로 한 주에 한 점씩을 구입했으며, 물건을 사고 다루고 묘사하고 어루만지면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프로이트가 수집에 관한 열정을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은 놀라울 정도로 기묘하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이 물건들을 빈에서 가지고 나오는 것이 왜 자신에게 그토록 중요했는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이는데, 이 역시 기이하다...

...그렇지만 프로이트의 집은 이 책의 궤도에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모종의 주제를 지닌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상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는 국민적 정체성, 진짜 영국적인 자아에 목소리를 주기 위해 발명되었다. 황무지에 자리잡은 하워스의 목사관은 내면적 자아-억눌리고 제한된 사교 세계에서 여성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열정과 감수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의 물리적 표현이 되었다. 호반 풍경 속 워즈워스의 오두막들은 기억과 자기 탐구, 우정을 통한 자아로의 여행-낭만주의적 영혼-을 재발견하는 노정으로 여겨진다. 스콧의 집은 그의 귀족적 자기 투사의 구현으로 건축되었다. 그의 소설과 시가, 독자들이 상상의 작업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 허구의 세계를 창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풍경사진 "  (0) 2015.07.02
" 마이클 베이르트의 디자인에세이 "  (0) 2015.06.26
" Just go 오스트리아 "  (0) 2015.06.11
" 프렌즈 동유럽 "  (0) 2015.06.09
" 무하 : 세기말의 보헤미안 "  (0) 2015.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