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쌍무지개의 약속

2015. 1. 26. 17:00Tunisia 2015

 

 

 

 

튀니지와서 처음 타보는 시내버스. 사실 한국에서도 타본 기억이 별로 없긴 하지만...

할아버지와 손자도 태우고 장보러 나온 아줌마도 내려주고 그렇게 젠두바를 벗어나 평화로운 교외를 달린다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며 왼편엔 돌산, 오른편으론 너른 평야를 끼고 이름모를 종점을 향해 가는데 차창으로 로마유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라 ?  여긴거 같은데 ...

 

동행 아줌마를 찾으니 미동도 없이 등만 보인채 앉아 있다. 그래서 나도 안심하고 있었는데, 동네에서 버스가 서자 내가 방심한 틈에 우르르 내려버렸다. 나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

차장아저씨에게 여기가 블라레기아 맞냐고 하니 그렇다고 해서 허둥지둥 내렸다.

 

"  젠두바 시내 나가는 버스는 맞은편에서 타요 ? " 차장에게 물어보았다. 

"  50분에 와 " 하며 동문서답, 우문현답을 했다,

동네 초딩놈들이 " 제키총, 제키 총 " 놀리며 지나간다,

 

초록의 대지, 졸졸 흐르는 시냇물, 여기는 봄날이다. 바람은 아주 쎄서 눈에 모래가 들어간채 풍선인형처럼 휘청거렸다,

 

 

 

유적지 팬스를 지나간다. 철문이 잠겨 있고 그 안으론 양치기 두명이 수천년 유적지 위에 걸터누워 햇볕을 쪼이고 있다.

 

길에서 샘이 솟을 정도로 여긴 물이 지천인 축복받은 땅이다

 

담을 넘을까 하다가 나이를 생각해 고정하시고 계속 걸어갔다,

멀리 관광버스가 두대 보여 입구인줄 알고 갔는데 역시 그냥 담이다. 아까 타고 온 시내버스가 다시 돌아나와 길에서 할머니를 태워간다

정류장이 아니여도 다행히 버스가 태워주나보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렇게 타고 가면 편하겠구나 ! 

 

계속가도 입구가 안 보여 지나가는 남학생에게 물어보니 대답은 " 계속 가 " 란다

 

 

모스크가 마을과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동네 청년들과 할아버지가 기도를 드리기 위해 사원안으로 속속 들어갔다. 신앙생활은 아주 잘 지키는거 같다.

 

 

 

드디어 출입문에 도착.

맞은편은 역시 Musee.

 

입구에 7 dinar 사진 1 dinar 써 있긴한데 표받는 사람이 없다.

 

쭈삣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블라레기아 (bullaregia)는 고대 누미디아 왕국의 수도였다가 기원후 1세기에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 이후 로마인들의 여름별장으로 애용되나보니 화려한 건축문화를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지하층에 모자이크로 치장한 방들을 많이 만들어 놓아 지하궁전도시라고 불리운다.

 

관람객이 거의 안 보이는데

유적지 안에서 낯선 남자를 만나면 경계심이 발동해 자리를 얼른 피했다

 

 

 

 

지하로 내려가보고 싶은데 물이 괴어 질척거리거나 문이 잠겨 있고 어두컴컴해 엄두가 안났다

 

 

 

로마유적도 볼거리지만 뒤산의 웅장한 기상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지상엔 아무 구조물이 남아 있지 않는데 지하엔 이렇게 모자이크 바닥이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물론 더 멋있고 중요한 가치가 있는 건 다 떼어내 수도 튀니스 보르도박물관에 전시해 놓았지만, 여기 남겨진 모자이크만으로도 당시의 사치스러운 상류문화를 발견하기에 충분했다. 이 중요한 유적이 비와 먼지에 고스란히 방치되어 있는것이 안타깝다.

 

 

잡초가 지멋대로 자란 들판을 지나 성당 유적지에 다다를 즈음 멀리서 한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찌나 보려고 나도 계속 이동했는데 그 남자의 발걸움은 오직 나에게로만 향해 있었다. 불안하다, 입장료 달라고 오는건가 ?

가까이 다가온 그 남자의 행색을 보니 더 겁이 났다. 제복이나 양복이 아닌 그냥 추위만 피하기 위한 노숙자 복장이었다.

그가 꺼낸 말은 "  저쪽에 볼만한 것이 있으니 거기 가보자 " 는 것이었다.

"  No French ! " 단칼에 짜르고 입을 다물었더니 다행히 그냥 돌아갔다

 

 

그렇게 오래된 시대에 이렇게 해놓고 살았다는게 믿기 힘들 정도로 놀랍다

 

수천년 풍파에도 변색하나 없이 이렇게 남아있는걸 손으로 만져보니 감동적이었다,

 

 

 

유적지 들판 한가운데에 높이 4m 이상되는 흙무덤을 쌓아놓고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사방을 조망하고 있었다.

가끔 휘슬을 불어대는데 여기 관리인인지, 양치기인지 궁금했다,

 

고대도시 대로를 따라 걷는다

 

 

 

또다시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소나기같은 비를 뿌려댔다. 비 피할 처마하나 없어 고스란히 맞아야했다,

 

 

여길 언제 다시 오겠나싶어 원형극장까지 걸어갔다.

신발은 이미 다 젖어 양말까지 습기가 베어 들었다.

 

극장 문옆에 정교하게 조각된 석상

 

 

무대위 바닥 모자이크

 

 

 

 

 

 

극장을 둘러보고 뒤쪽으로 돌아가니 마을 청년 네댓명이 불량스럽게 모여 있었다.

괜히 시비라도 걸까봐 출구쪽으로 향했다.

큰길에서 시내버스가 마을로 들어가는게 보였다. 얼른 나가면 돌아나오는 차를 잡을 수 있을거 같아 걸음이 빨라졌다,

 

 

 

규모가 꽤 큰 건축물인걸 보니 신전이었나보다

 

어찌어찌 정문까지 다시 나왔다. 버스가 돌아 나오기만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마을 아낙 둘이 내 행색을 보고

"  택시 타 ! " 라고 소리쳤다

"  버스는요 ? "

"  택시 타 ! " 그게 정답일 수도 있겠다 싶다

 

맞은편 관리실에서 아저씨 둘이 나와 문을 걸어 잠갔다,

5시까지 아니였나 ? 지금 4시 38분인데 너무 빨리 닫는거 아냐 ? 만약 내가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대로 지하궁전에서 하루 잘 뻔했다,

 

아저씨에게 젠두바까지 택시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주었다, 젊은 택시기사에게 ' 젠두바 루아지 터미널 가자 ' 니까 방향이 다르다고 그냥 가버렸다. 별로 택시 타고 싶은 맘이 없었는데 오히려 천만다행이다.

아저씨도 퇴근하고 나만 남았다.

' 50분 까지만 기다려보자 ' 하는데 비가 더 거세져 외투가 방수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처량맞은 순간, 무지개가 떴다,

 

' 이제 비가 그치고 버스가 올꺼야 ' 약속이라도 하듯 무지개가 더 선명해졌다

 

한 청년이 걸어오길래 " 등뒤에 무지개 떴어 ! " 신나서 알려 줬는데 그냥 베시시 웃으며 지나갔다.

 

무지개 아래로 이상하게 비는 계속 내렸다. 펄럭이는 깃발도 젖었다.

" ... 이기 ~ 무지개가 뻥카 치는거 아냐 ? " 하고 의심이 드는 순간 믿어 달란듯이 쌍무지개가 떴다.

 

쌍무지개를 본 이상, 이젠 비 따위 안그쳐도 아무 상관 없다. 쌍무지개를 봤는데 !

소들이 담장을 따라 풀 뜯으러 올라오고... 한국에 애들에게 보여주려고 쌍무지개를 찍었다.

지금껏 살며 쌍무지개를 딱 두번 보았다. 그 두번째가 바로 오늘이다. 40 여년동안 쌍무지개는 수없이 떴을텐데 난 딱 두번밖에 못 봤다니... 우찌 그리 살았는지.

 

쌍무지개 터널 아래로 거짓말처럼 버스가 나타났다.

더 드라마틱한 건 내가 손을 흔들었는데 버스가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황당해서 멍하게 작아지는 버스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판타스틱한 일이 벌어졌다. 100 여 m 나 가버린 버스가 멈추더니 그 큰 덩치로 후진을 하는게 아닌가.

절라 뛰었다. 돈 몇백원 아낄려고 그런게 아니라 이 세상엔 돈액수로 이해할 수 없는 그런게 있다. 너무 고마워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여주려고 뛰었다.

그런데 후진 잘 하던 버스가 멈췄다. 왜지 ? 왜 멈추지 ? 맘이 변했나 ? 승객들이 항의했나 ?

그순간 갓길에 세워진 빤스만한 도로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후진하다가 그게 걸릴까봐 멈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더 절라 뛰었다. 그래봤자 큰 차이도 없지만 여튼 무아지경으로 뛰었다. 버스기사가 센스있게 뒷문을 열어줬다. 철인3종 최종 결승점을 통과하듯 버스에 몸을 던져 올라탔다.

 

뒷자리에 학생들이 타고 있길래 " 젠두바 가는 차 맞아 ? " 하니 맞단다.

기사가 차를 출발시키며 손가락으로 날 오라고 까딱까딱했다. 대뜸 프랑스말 할줄 아냐고 묻길래 못한다고 하고 ' 젠두바 ' 라고 목적지를 말하자 표를 끊어준다. 0.42 dinar (252 원)

 

빈 의자로 돌아와 앉아 가는데 그리 행복한거다, 나를 위해 기다려준 기사와 이해해준 승객들, 절약된 교통비 등

나같은 여행자만 있으면 튀니지 경제에 큰 도움은 안 될듯 싶다

 

" 것봐 !  뻥카아니지 ? "

라는 듯 무지개가 차창밖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며 차를 따라왔다

 

시내로 들어왔다,

종점인 루아지 터미널까지 가서 로터리로 다시 걸어나와야 하나 ?  고민하는데

 

로터리에서 차가 서고 아저씨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나도 뒷문으로 내렸다,

무사히 땅을 디딘 다음 백미러에 대고 기사에게 고맙다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지만 따뜻한 석양빛이 건물벽을 환하게 비추고 있고 거리는 한결 낭만적으로 보였다

갈때 눈여겨 봐뒀던 Grill 집을 향해 도로를 건너갔다  

 

샤와르마를 하나 주문했더니 요리사가 전기톱 같은걸로 케밥 고기를 썰었다.

내가 신기해 하자 사진 찍으라며 고기를 게속 잘라댔다. 그거 다 나 넣어주는 건가 ?

 

식당안으로 들어가 음료수 하나 꺼내 식탁에 앉아 있으니 따뜻한 샤와르마를 말아서 가져왔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중 가장 두툼하고 내용물도 충실했다. 여길 찍어서 찾아오길 잘 한거 같다

대신 하리사가 덜 들어가 약간 심심했다. 외국인이라고 매울까봐 덜 넣었나 ?  

 

다른 테이블에선 파스타와 치킨을 먹고 있다. 수비틀라에서 먹었던 저녁세트 메뉴다,

또다른 테이블에선 아이들이 바게트를 뜯어 오짜에 찍어 먹고 있다, 모두 맛있어 보였다

 

껄렁껄렁한 동네 건달들이 들어오며 나에게 모라고 말을 던지는데 못 알아 들어 무시했다.

안으로 들어가 앉더니 잠시후 " 니하오 ? 니하오 ? "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처다보니 또 뭐라고 말하길래 ' 프랑스말 몰라. 잉글리시 ! ' 했더니 덩치 큰 놈이 영어로

"  내가 개가 있는데,  먹을래 ? '

이 나라와서 처음으로 야마가 팍 돌아

"  니나 처먹어 이 새까 !  " 라고 한국말로 욕을 해줬다. 여차하면 티타늄스틱 끝으로 안구를 적출할 틈을 노리며 !

 

그 이후론 나에게 아무말도 안 걸고 지들끼리 수군대며 밥을 처 넣었다,

그놈들 머리위 TV에선 소지섭이 출연하는 한국 드라마가 아랍더빙 한글자막으로 방송되고 있었다

 

입구 계산대에 10 diinar 지폐를 냈더니 뭐 먹었는지 확인하고 와서 6.5 를 잔돈으로 주는거다.

신경이 날카로와져 있는 상태라 비싸게 느껴져서 샤와르마 얼마냐고 물었다. 2,5 라고 한다. 음료수도 약간씩 비쌌다.

뭐 허름한 간이 식당보다는 좀 더 비싸겠지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음료포함 저녁 3.5 dinar (2,100 원)

 

식당을 나와 옆 카페로 들어가자 젊은애가 ' 환영한다 ' 고 생글생글 웃으며 반긴다

 

"  민트티 ! "

"  없어요 "

"  커피 ! "

"  커피 어떤거 ?   에스프래소요 ? "

"  카페오레, 밀크 ! "

"  큰거 , 작은거 ? "

"  큰거 ! "

0.5 동전 하나를 줬더니 더 달라고 한다. 손바닥에 동전을 꺼내 보이자 0.1 짜리 하나만 집어갔다

"  설탕 ? "

"  됐어, 저리로 갖다 줘 "

하고 구석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  프랜드 !  프랜드 ~ " 하며 찐한 커피 한잔을 가져왔다.  0.6 dinar (360 원)

 

나름 인테리어를 깔끔하게 뺐는데 탁자와 담배연기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오늘 시내버스표

 

카페에 Wi-Fi 가 안 잡힌다.

방금전 식당에서의 기분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담배 한모금이 절실해졌다

프랜드를 불러 1 dinar 주고 까치담배 하나 가져오라고 했더니 바리스타에게 담배를 얻어 왔다.  0.2 dinar (120 원)

라이타 빌려줘 ~ 하는데, 아까부터 내 옆 테이블에 혼자 앉아 나 담배 시키는걸 재밌다는 듯 처다보던 남자가 얼른 자기 라이터를 꺼낸다

대마초 씹듯 담배에 혼을 팔다가 그 남자와 다시 눈이 마주쳐 서로 웃고 말았다.     

 

잠시후 그 남자도 바리스타에게 까치담배를 하나 사가지고 와서 자기 탁자에 앉아 담배를 빨았다,

진짜 대마초인줄 알고 ㅋㅋ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나오며 Bar 위에 올려져 있는 식수컵을 하나 들어 원샷해 버렸다

 

거리가 벌써 어두워졌다

가랑비는 지겹게 내리고, 길은 질척거리고 지뢰같은 물웅덩이에, 차들은 로터리를 정신없이 돌리고 있다

과일좀 사갖고 들어가려는데 과일가게가 안 보인다. 호텔 건너편 어두운 거리에 노점상 불빛이 몇개 보여서 혹시나 파나 싶어 그리로 건너갔다

과일가게가 아니고 구멍가게다. 쥬스와 요구르트를 사고 5 dinar 를 냈더니 0.65 dinar 를 거슬러 주는거다.

위험한 찻길 건너오느라 아무리 정신이 없기로서니 물가개념도 상실하진 않았다. 그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주인남자와 번갈아 처다보자 1 dinar 동전 3개를 내준다. 그래 이제야 계산이 맞네. 근데 이기~ 어디서 고전 수법을 쓰고 있어.  

 

호텔 앞으로 와서 차들이 위험하게 달리는 도로를 무사히 건너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 와 깨끗히 양치를 하고 히터 앞에서 족발을 따뜻하게 데웠다,

밤 8시가 되자 아렛층 Bistro 에서 함성소리가 터졌다. 무슨 경기가 열리나보다

 

토주르에서 산 볼펜도 벌써 닳아간다.

메모 노트도 수스에서 산걸로 바꾸고

카메라 메모리 카드도 바꿔끼고

돈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손발톱은 어느새 길게 자라있었다,

 

오늘 지출   :   티         0.4

                    택시      0.6

                    조식      2.7

                    루아지   3.7

                    슥박     25

                    버스-1    0.53

                    버스-2    0.42

                    석식       3.5

                    커피       0.6

                    담배       0.2

                    군것질    1.35            거기에 0.1 분실       합 39.1 dinar (23,46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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