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난 옥스퍼드가 싫어요. 이과니까 !

2014. 8. 3. 16:00Brita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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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온더워터 마을을 떠날 즈음엔  

날이 더 좋아져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화창해졌다 

 

지금 여기는 8월초 한여름이지만

한국으로 치면 초가을 정도의 날씨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즉흥적으로 왼편 샛길로 차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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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여미터 들판을 가로질러 조그만 마을에 다다랐다

갈림길에서 오른편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게 보였다. 왠지 여유로워 보이는 풍경...

방해 될까봐 살짝 사진을 찍고 반대편으로 향했다,  

 

차안으로 날아든 홀씨

 

동네 골목 안에서 조용한 그늘을 찾아냈다.

주차하고 먹을 걸 다 꺼내 와 신문지를 깔고 조촐한 피크닉 상을 차렸다.

아이들하고 여행을 다니면 비상식량이 한 보따리였을 텐데 둘이 매끼를 잘 먹고 다녀 차 안에 먹을게 별로 없다

 

메뉴는

아까 베이커리온더워터에서 산 cornish pasty 와 파이 한조각. 탄산수와 물과 인천공항에서 얻은 물휴지.

 

 

영국의 파이와 빵들은 한입 베어물자마자 감탄이 나오진 않는다. 별 특별한 맛이 없다,

그런데 금방 질리지도 않는다는거.

우리가 맨밥만 퍼 먹으며 맛있다고 너스레를 떨지 않듯이 예네들에겐 이런게 쌀밥 같은 의미인가보다.

 

 

혹시나 동네 사람들이 걸인이라고 쫓아낼까봐. 두리번 거리며 점심을 먹는다

 

우리 앞집 위층벽엔 도리아식으로 깎은 명판이 붙어 있었는데 ' 1850 ' 숫자만 달랑 새겨져 있다. 저 집이 그리 오래 된거야 ?

옆집 미류나무 숲속에선 참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몰려 다니며 재잘대고 있었다

 

뒤로 여자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래서 돌아보니 휴대폰 통화를 하는 아줌마였다,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계속 혼잣말로 떠들며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다 먹고 입가심까지 한 후에도 

한동안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쐬었다

 

마을을 떠나며 보니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고, Church Westcote 란 마을 이름표만 덩그런히 서 있었다.

 

시골 아무 동네나 예고 없이 불쑥 방문해도 참 깨끗하다

신기할 정도로 폐비닐 하나, 녹슨 농기계 하나 안 보인다.   

 

 

 

 

 

드디이 옥스퍼드 (Oxford)에 도착했다.

고속도로와 램프와 많은 차들과... 코츠월즈 시골길만 다니다가 오래간만에 대도시를 맞닥트리자 정신이 없다

급기야 중앙선을 착각해 좌회전 교차로에서 반대차선으로 넘어가 버렸다.

맞은편 차와 뒷차가 놀라서 빵빵거려 주는 바람에 후다닥 내 차선으로 복귀하자 핸들을 쥔 손이 축축해졌다

 

 

 

옥스퍼드를 제대로 보려면 저 투어버스가 최선이라는걸 그땐 미처 몰랐다

 

 

 

도시를 빙 돌아 남쪽 방향에서 번화가로 진입했다

크라이스트 교회의 돔 타워가 중앙에 보인다

 

근데 이상하네...  시내에 차들이 없다. 일요일이라 그런가 ?

 

뭔 축제라도 있는 것처럼 거리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극동아시아인들도 많이 보이고 단체 관광객들도 보이고...

 

수업 강의실을 찾아 캠퍼스를 분주히 오가는 학생들처럼 보이고 ... 

 

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Carfax tower

 

 

‘ 옥스퍼드는 도시 안에 대학이 있고,

  케임브리지는 대학 안에 도시가 있다 ’

 

1000년경 옥스퍼드는 이미 상업적으로 번성한 도시였고. 케임브리지는 대학이 생긴 뒤 도시가 대학 사이사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말대로 옥스퍼드는 케임브릿지에 비해 더 크고 번잡했다,

 

 

큰 길을 따라 세워진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다 유명한 칼리지들이다,

 

 

 

자전거를 탄 여학생이 팔로 깜빡이를 넣고 있다

옥스브리지 (옥스퍼드 + 케임브리지) 에서는 처음에 남학생만 받았다.

두 대학이 원래 신학교였는데 여성을 학생으로 안 받아 들인 이유는 여성 성직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 성직자인 수녀는 수녀원에서 교육시켰기에 일반 대학교에서 여학생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거리 끝에서 만난 모들린 칼리지 (Magdalen) 1458년 창설

 

한적한 골목에 차를 세우고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매칭시켜 보려고 노력했지만

여기가 어디쯤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옥스퍼드대학교는 인문사회 카톨릭적이며 체제보호형 성격이 강하고

케임브리지대학교는 자연과학 청교도적이며 혁명적 성격이 진하다고 한다

그래서 옥스퍼드는 인문학이 강하고 캠브리지는 뉴턴, 다윈, 케인즈 같은 학자를 배출한 과학과 경제학이 장점이다.

난 여기 옥스퍼드보다 케임브리지가 더 편안했는데 그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뿌리가 고 2때까지 뻗어 있었다.

나는 이과생이다.

 

 

펀트 (Punt) 선착장을 찾기 위해 다시 차를 돌려 번화가로 들어간다.

 

그러다가 넓은 길 한편에 조그만 이 간판을 봤다

' 하이 스트리트 오전 7:30 부터 오후 6:30분까지 차량진입금지 !  카메라 단속 !! '

 

아까 들어올땐 거리구경 하느라 이 표지판을 못 봤었다.

그래서 거리가 그렇게 텅 비어 있었던 거구... 단속 카메라에 찍혔을 거란 생각에 그때부터 기분이 팍 잡쳤다. 

저거 해석할 실력이 안된다고 변명할까 ?   설마 일요일에도 단속할래나 ?

※ 귀국 며칠후 영국정부는 £84 (151.200원)짜리 벌금을 두개나 내 신용카드에서 강제로 빼 갔다.

 

맨붕 상태로 얼른 변두리로 내뺐다.

 

 

 

 

 

시내를 등지고 한참 달렸는데도 여전히 옥스퍼드다. 단지 주택들만 많이 보일뿐 .

옥스퍼드가 상당히 큰 도시였다

 

공원옆에 차를 세우고 현주가 잠깐 산책을 하는 동안

나는 또 네비와 가이드북을 별 소득없이 뒤적거렸다

 

 

장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남자를 불러 세웟다. 어찌나 열심히 걷는지 미안할 정도였다.

선착장을 물어보자 Magdalen 다리쪽에 있다고 알려줫다. 가이드북엔 Folly 다리쪽에 있다고 적혀 있는데 ...

 

 

 

남자가 알려준 곳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역시 주차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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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끝에서 차를 세웠다.

조그만 집들 앞에 붙은 간판을 보니 대학교때 차취방 생각이 났다

 

 

고1 때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출간된 영영사전을 사면서 이 도시와 첫 인연을 맺었지만 

오늘부로 미련없이 옥스퍼드를 떠난다. 뒤도 안 돌아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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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인 - 에밀리 디킨슨

 

난 무명인입니다 ! 당신은요 ?

당신도 무명인이신가요 ?

그럼 우리 둘이 똑같네요 !

쉿 ! 말하지 마세요

쫓겨날 테니까 말이예요

 

얼마나 끔찍할까요, 유명인이 된다는 건 !

얼마나 요란할까요, 개구리처럼

긴긴 6월 내내

찬양하는 늪을 향해

개골개골 자기 이름을 외쳐대는 것은.

 

 

 

I'm Nobody - Emily Dickinson

 

I'm Nobody ! Who are you ?

Are you--Nobody--too ?

Then there's a pair of us !

Don't tell !

They'd banish us--you know !

 

How dreary--to be--Somebody !

How public--like a frog--

To tell your name--

the livelong June--

To an admiring bo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