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와인잔에 노을지다

2014. 7. 29. 21:00Brita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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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스카버러를 내려다 보고 있으니 우리가 나온 이유도 잊어버렸다

약간 속이 쓰린 걸로 봐선 뭘 먹으려고 한거 같은데 지금 이 순간이라는 블랙홀 속에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

 

오목한 해안가를 따라 샛별같은 불빛들이 하나 둘 켜지자 흘리듯이 일어나 그 곳으로 향했다.  7시

 

 

 

 

스카버러 기차역을 지나

 

시 북쪽 끝까지 올라간 다음 바다를 찾아 오른편으로 핸들을 돌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인도를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체형도 제각각인 그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은 말라뮤트 개였다. 다시 표현을 정정해야 되겠다

말라뮤트 개 4마리가 사람들을 거느리고 어디론가 몰려 가고 있었다.

 

 

길은 광장에서 로터리를 만난 후 스카버러 성 북쪽의 해안도로로 바뀌었다

바다로 돌진하던 언덕 위에는 성의 잔해와, 등허러를 따라 고급빌라들이 빼곡히 박혀 있었다,

 

 

여기서 올려다 보는 것도 이렇게 신비로운데  

저 빌라 창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얼마나 눈물 겹도록 아름다울까 ?

 

 

바다로 발기된 언덕 아래를 막 돌아나갈 무렵,

어디선가 바닷새들의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들려왔다.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보았다.

거친 절벽 틈새에 수천마리의 갈매기들이 서릿발처럼 하얗게 내려 앉아 있었다.

 

먹이를 달라고 징징대는 새끼 새들,

오늘 바다에서 겪은 일을 떠벌리는 소리들.

한 뼘 보금자리를 놓고 날개를 펼치며 싸우는 이웃들 ... 온 천지가 시끄러웠다,

 

 

 

언덕을 돌아 남쪽 해안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등대를 지나 좀 더 내려오자

 

대관람차와 놀이시설들이 번쩍거리며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아싸 ! 월미도 ~ 

 

 

방파제 안 선착장엔 비린내 나는 어선 대신 높다란 돛대를 꽂은 비싼 요트들만 가득했다.

여기는 어촌이 아니였다  

 

한두개 보이던 전자오락실이 해안가를 완전 점령해 버렸다. 모두 화려한 알다마와 LED를 번쩍거리며 성업중이었다.

영국인들이 도박을 좋아한다는건 알았지만 이 정도 일줄은, 그것도 이 아름다운 스카버러에 슬롯머신이라니...

 

 

Book Maker 라는 단어가 있다, 

좋은 뜻인거 같은데, 사실은 영국인들의 전형적인 눈속임 단어다 

마권업자나 사설도박회사를 점잖게 포현한 것을 뿐. 

 

 

 

숙소를 알아볼 때 이 그랜드 호텔이 눈길을 끌었다

웅장하고 역사깊은 건물에서 하룻밤을 자 본다는 것과 매일 저녁 공연이 열리고 바닷가와 아주 가깝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격이 저렴했다.

바로 그 가격이 저렴한 이유가 의심스러워 뒤져 보니... 결정적으로 주차장이 없었다. 아쉽게 포기

 

그랜드 호텔이 인상적인 1890년대 스카보로 풍경 

<클릭하면 확대됨>

 

 

유럽의 중세인 1253년 핸리 3세에 의해 개장된 여기 스카버러 시장은 영국내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덴마크등의 주변국가와 비잔틴 제국에서 까지도 상인들이 모여 들어 물건을 사고 파는 큰 규모였다, 한번 시장이 열리면 무려 45일 동안 계속되었고 상인과 소비자 외에도 각종 놀이나 행사를 즐기기 위한 인파까지 섞여서 대단히 붐볐다고 한다. 이후 다른 시장이 많이 생기고 세금 문제등으로 쇠락하더니 1788년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과거 영화로웠던 시절에 받은 트로피처럼 시내 곳곳에 지금도 웅장하고 멋진 조형물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언덕위 시가지에서 바닷가로 내려오는 계단

효율성만 따져 대충 지은게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을 산책하라는 듯 예술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보기만 해도 올라가보고 싶을 정도로...

 

 

 

 

노을이 지는 줄도 모르고 놀고 있는 엄마와 아이들

 

남쪽 해안끝까지 내려가 보았다

 

 

종탑과 지붕이 화려하게 장식된 대리석건물

 

1층은 Fish & chips을 파는 식당과 빵집과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테라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갔다,

 

 

' 카페라떼 ' 를 몇 번 발음해도 여직원이 못 알아듣더니 나중에 ' 아 ! 라떼 ' 라며 이해했다,

여기선 Caffe Latte 를 그냥 간단히 Latte 해 버렸다

 

지금 막 앞바다에서 촐랑대던 물고기가 끓는 기름 통에 빠진 것처럼 Fish 가 신선했다

 

Fish & Chips 에 소금, 케찹을 뿌려 먹으면 영국에 온지 며칠 안된 사람

식초병부터 잡으면 영국에 대해 뭐 좀 아는 사람.

 

바다 위에 유유히 떠 있는 요트 두척

석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창가 자리에 중년 부부가 앉아 아름다운 스카보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카보로 석양이 와인잔을 붉게 물들이며 지고 있었다.

 

식당안엔 노인분들이 여기저기 많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젤 Young 했다.

총 £13.3 (23,940원)을 동전으로 정확히 계산해 주고 나왔다

 

 

 

아까 우리가 감동 먹었던 언덕위 Sea cliff 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

그 아래로 흰 고무줄처럼 산책로가 바다로 늘어졌다.

 

 

Scarborough spa 라는 이 건물에서도 공연이 자주 열리고 있었다

 

 

 

 

식당에서 한참 있다가 나왔는데도, 노을은 더욱 붉게 서쪽 하늘을 물들여 놓았다.

 

 

 

 

어두워질수록 더 아름답고 화려해지는 조명들

모든 사람들을 연인으로 만드는 스카버러의 밤바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

애 어른 할것 없이 모두 아이스크림을 핥고 있었다

 

 

그냥 들어가기가 못내 아쉬워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왔다

 

 

하루종일 길게도 떠있던 태양이 마침내 사라져 간다

수백년간 최고 였다가 잊혀저 가는 스카버러의 운명처럼  ...

 

 

 

시내로 돌아오는 길.

무작정 주택가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발견한 TESCO express 마트

 

 

 

 

현주는 재밌어서 더 있으려는데 마트 안이 너무 춥고 또 내일 호텔도 예약해야 되서 고만 가자고 졸랐다

홍차종류와 생수, 과일을 사니 13.27 (23,886원)

오늘은 점심밥도 저녁밥도 마트도 모두 숫자가 13 이다.

 

TESCO 를 나와 감으로 숙소를 찾아간다. 기차역을 지나 단번에 B&B에 도착했다.

 

숙소엔 아까 주차한 자리가 고대로 남아있어 나를 기쁘게 했다

투숙객들이 모두 초저녁부터 안 나가고 방에서 놀고 있었나 보다,

 

오늘은 현주가 내 빨래를 해주고, 인간탈수기인 내가 널고

관처럼 좁아 터진 샤워부스 안에서 허리를 굽히자 머리와 엉덩이가 양 벽에 닿았다.  그래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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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저 휴식의 밤으로 들지 마십시오 - 딜런 M. 토머스

 

그대로 순순히 저 휴식의 밤으로 들지 마십시오

하루가 저물 때 노년은 불타며 아우성쳐야 합니다

희미해져 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죽음을 맞아 침침한 눈으로 바라보는 근엄한 이여

시력 없는 눈도 운석처럼 타오르고 기쁠 수 있는 법

희미해져 가는 빛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십시오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Dylan M. Thomas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Grave men, near death, 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