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4. 10:00ㆍPhilippines 2013
오늘이 몇일인지 무슨 요일인지
계절은 겨울인지 여름인지 우기인지
내가 지금 달력 어디쯤에 있는건지 알수 없는 , 굳이 알 필요도 없는 하루가 또 시작됐다.
오늘 아침메뉴는 고기다진것과 계란말이다
이것으로 파라다이스 리조트의 화려한 음식잔치는 끝이 났다.
도착 첫 밥상부터 예사롭지 않은 맛과 메뉴에 감탄하여 그 이후로 유심히 살펴보고 기록해왔다.
저 열악한 주방과 까만 필리피노들의 손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메뉴와 깊은 한국의 맛을 창조해 낸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약간은 지루한 리조트의 일상과 하루 세끼를 다 한곳에서 해결해야 하는 딜레마를 사뿐히 날려버린 식단이었다
내가 이렇게 다음 끼니에 설레여보긴 국민학교때 두어달 병원 밥때만 기다리던 이후로 첨이다.
간만에 느껴본 모태식욕,
지금껏 살아오며 우리 엄마한테도 내 마누라한테도 못 받아본 버라이어티 디너 쇼 !
남은 인생 다 살아 본들 이런 밥상 또 받아볼 수 있을까 ? 기대는 하덜덜말자.
외국나가서 먹는 한국음식에 대해 지금껏 경험으로 나름 결론을 내보면
음식재료의 신토불이는 이제 공염불이 된거 같다.
지금 한국에서 구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한국음식은 여러 이유로 그 본래 재료맛을 잃어버린게 아닌가 싶다. 한우도 김치도 모두 옛맛이 아니다. 오히려 외국 땅에서 구해 만든 한국음식이 더 푸짐하고 깨끗하며 맛도 있다.
MSG 만 보더라도 오리지날 미원은 다 동남아로 쫒겨났고 지금 한국에 있는건 다시다와 연두 미림등 이도저도 아닌 박쥐같은 맛만 남아있잖은가. 역시 한국의 맛은 오리지널 미원이 팍팍 들어가야 ㅋㅋ
운형이는 운영진.
운영진의 주요 임무는 돈걷기.
다이빙도 없는 모처럼의 한가한 아침을 즐기지도 못한채 산수와 베껴쓰기 숙제하는 4학년 4반 하운형 어린이
방에 가서 짐을 싹 챙겨 나왔다
그 사이에
넓은 테이블주변으로 채무자들이 빙 둘러 앉아 채권자의 계산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첨 보는 굳은 표정과 진지한 분위기가 낯설다
거기에 끼어 앉았다간 Sabang beach 에서의 즐거운 추억들이 크게 훼손될거 같아 내꺼 먼저 계산해 달라고 설레발을 쳤다.
340 US $ 얼른 주고 잔돈도 안 받고 도망치듯 먼저 나왔다
우리에겐 그래도 오늘이 떠나는 날이라는 뽀인뜨라도 되지만
똑같은 날이 무한 반복되는 주민들의 삶
얼마전 사방비치의 깨끗함이 유지되는 것에 의문점이 들었다고 했는데 그 해답을 우연찮게 골목길에서 발견했다
바로 이 페인트 덕지덕지 붙은 쓰레기통 두개였다. 얘네들이 Sabang 을 Clean 하게 Keep 하는 주역이었다
사거리에 먼저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며 땀을 훔치고 있으니까 나를 보는 필리피노의 눈빛이 달라짐을 느낄수 있었다
보아하니 매상 올려줄 인간 같지는 않고 ... 좀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랄까 ?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더니 한 사내가 공사장 안쪽에서 플라스틱 의자를 하나 가져와 앉으라고 한다.
며칠 있는 동안 이 동네 필리피노 몇명과 이야기를 나눠보며 서로간에 오해와 선입견이 있음을 어렴풋하게 알수 있었다,
돈 좀 있는 한국인 관광객과 까무잡잡한 필리피노는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굳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거 같다.
Sabang 에 살고 있는 그들은 뜨내기인 우리가 도와줘야하고, 교화시켜야 하고, 속지 않아아 하고, 땀 냄새 풀풀 나는 그런 사람들이 절대 아니다.
그냥 친구다. 친구. Friend !
몇번 골목에서 봤다고 친한 척하는 동네 아줌마
잠시후 일행이 사거리에 모두 도착했다
금전관계 청산의 후유증이 아직도 얼굴에 남아 있는거 같다.
지프니 하나를 전세내어 뒷자리에 무릎을 맞대고 차곡차곡 들어 앉았다. 오늘 자주 낯설다,
이번 여행중 가장 열악한 교통수단이다.
버킷시트로도 모자랄 판에 의지할 곳 없는 민짜 의자에 쪼르르 앉아 커브를 틀때마다 몸은 획획 낚아채이고
비포장도로나 진배없는 요철 길은 정수리를 천장에 사정없이 박아버렸다.
한국에서 비싼 돈 내고 4D 영화를 보았는데 이 리얼 4D 는 돈을 준대도 다시 타고 싶지 않았다.
터프한 운희형도 지프니속에선 한마리 원숭이.
그렇게 고행길은 사방뒷산을 넘어 푸에르토 갈레라를 지나서도 한참동안 계속됐다
일행들이 더는 못 참아 모두 차밖으로 뛰어내리려고 할때쯤
속도를 줄인 지프니가 이제 정글속으로 들어간다.
실탄사격장을 찾아 숲속 깊숙히 흙탕길을 달렸다
아주 죽여라 죽여 !
내가 내리자마자 너부터 쏴주리라 !
미움도 원망도 사라질때쯤 사격장에 도착했다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일행간에, 운전수와의, 운영진과의 모든 인간관계는 한치의 애증도 없어야 한다.
서로가 믿는 가운데 총을 잡아야 한다
일행들은 다 들어갔는데
왠지 운희형이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두려움에 몸을 떨며 담배 하나를 심각하게 빨고 있다.
내가 봐도 감정정리할 시간이 필요할꺼다
' 아~ 그러니까 평소에 좀 잘 하지. 지희누나가 아주 이 시간만 버르고 있더구만 '
사격장 안은 분위기부터 살벌한게...전운이 감돌았다.
막 필리핀 반군에서 튀어 나온 듯한 사내가 권총을 분해조립하고 있었다.
우측 견갑골에 해골문신을 보니 얼굴을 굳이 안봐도 될거 같다.
그의 앞에는 두명의 사형수가 잠시 후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듯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총을 고르고 총알을 구매하는건 FM대로 정확히 진행됐다
HID 출신이라는 운형이도 그 유두리 없음에 질릴 정도였다
실탄하나 애누리 없이 철저하게 다 받은 인간계산기.
총 빌리는 것도 비싸지만 총알 하나당 약 천원꼴이라서 총 금액이 꽤 됐다,
이럴때 요긴한게 점수제 게임
1~8등 까지 액수 정하는데 또 몇 시간이 걸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돈 !돈 !돈 ! 이구만
드디어...사격장.
갑자기 고막을 찢어발길듯한 굉음이 터졌다.
가볍게 놀러 온다는 생각에 총소리를 깜빡 잊었다. 얼른 귀마개를 찾아 양 귀를 덮었다.
총을 쏠 때마다 탄피가 우아하게 우측 45 ˚ 각도로 공중으로 날라갔다.
이 탄피 하나만 갖고 인천공항에 입국하면 헬기랑 장갑자가 마중나온다며 ?
먼저 초보들만 연습으로 몇발 쏴보고
다음에 정식 게임으로 들어가 과녁을 놓고 10발씩 쏘는 걸로 진행됐다
난생 처음 차디차고 묵직한 진짜 권총을 쥐어봤다
고백컨데 괴로웠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 정도였다.
손목이 꺽일 정도의 총의 반동도 낯설었고, 발사되는 순간의 폭발음도 두려웠다
그 중 가장 무서웠던건 몇 발을 쏴도 구멍하나 없이 깨끗한 과녁이었다
큰 누님은 자기 몫을 다 쏘고난 후에
자기는 과녁을 맞추는건지 몰랐다고, 직원이 옆을 쏘라고 해서 다른 곳을 쐈다고 항변했다.
우리 모두 그녀의 사격실력을 알기에 농담으로 여겼고 떼 쓰는 거라 의심했다.
귀국후 사진을 정밀 분석하던 중 기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녀의 자세와 총구의 방향은 과녁과 정확히 13 ˚ 틀어져 있었다.
그 상태로 과녁에 구멍이 났다면...그건 실력으로 인정해야 되는 건가,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안 생겼다
김실장이 사격후 담배 불을 붙이는 걸로 봐서 몇 등인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타겟을 받아보니 가까스로 6점을 맞춰 족보는 올렸다
착잡한 심정이라며 담배를 하나 얻어 한 모금 빤 다음에 10점 영역 그것도 한 가운데에 담배불을 살짝 댔다.
종이만 누렇게 탔다
그걸 가지고 필리피노 채점관에게 가져갔더니 웃으며 16 이란 숫자를 종이 위에 휘갈겨 써줬다
그런데 어짜피 칠 사기면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총알이 맞고 튕겨져 나갔을리는 만무하니 아예 담배불로 지져서 구멍을 내버렸다.
화약 열기에 종이도 좀 탄 것처럼 내가 봐도 꽤 그럴싸했다.
과녁을 흔들며 신나게 운형이에게 달려갔더니
" 담배빵 인정해도 6등, 안해도 6등 ! " 이라며 이 초보사기꾼을 놀려댔다
2,000 peso (51,160 원) 를 강탈당하고 과녁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요행을 바랬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본전생각이 나더니 갑자기 게임의 본질이 의심됐다
내가 만점과녁을 맞췄다고 치고 16점이어도 6등이면 내 위에 5명은 얼마나 총을 잘 쏜거야 ?
면면을 보니 강냉이 줏어먹듯 군대에서 총알을 깠던 사람들이었다
나는 군대 못간 신의 아들이고 내 뒤로 7등 8등은 곱게만 자란 양가집 규수들이었다.
애시당초 게임을 할 필요도 없는 승률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냥 HID → UDT → 전방 → 후방 → 방위 → 면제 → 갱년기 여사 → 골다공증 여사 순으로 걷으면 되는거였다.
그냥 걷으면 불만이 나오니까 게임이라는 허울을 씌운 것이다. 집행부의 농간에 놀아난거지 5등부터는
이제와 어쩌랴, 총알은 다 떨어지고 ...
어깨 축 늘어트리고 나가는데 모두 단체사진을 찍자고 한다.
아까 사격장 옆에 담에서 찍으면 잘 나올거 같아서 모두 그 앞에 쭈욱 섰다.
권총 두자루만 좀 어떻게 사정해 빌려서 두 여사분 쥐어주고 찍으면 그림이 될거 같았다.
그런데 왠걸
AK소총, 기관총까지 여기 보유하고 있는 모든 화력을 다 가져와 빌려 주었다.
여직원이 사진을 찍어주며 더 신났다
연신 " Change ! Change ! " 하는데 우리는 그럴때마다 점점 포즈들이 망가지고 있었다.
자기 머리에 총 겨누고 젤 신난 운형이
정작 총쏘는 것보다 사진찍는게 훨씬 재밌었다. 실컷 웃고 났더니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버렸다
거기 직원들이 그렇게 잘 해준건 운형이가 팁으로 50 peso 씩 준 덕분이란걸 나중에 알았다.
그 아가씨의 한달 월급은 3000 peso 였다.
지프니 운전수가 싸이의 젠틀맨을 신나게 틀고 푸에르토 갈레라 시내를 통과했다
Sabang beach 에 도착했다
점심은 작은 누님이 스테이크로 쏘겠다고 선언하셨다. 권총 못 쏜 한을 스테이크 쏘는 걸로 푸시려나보다.
해변가에 한 식당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다.
왜 그러나 가봤더니 파키아오의 권투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 Manny Pacquiao (마니 파키아오) 1978년생으로 필리핀 복싱영웅, 8개급 챔피언, 2010년에 하원의원에도 당선됐다
마땅한 곳이 없어 전전하다가 4번째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이라 전망도 좋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나랑 운희형은 아이스카페라떼를 시켰는데 완전 맹물이었다
싱겁다고 커피를 투샷으로 해달라니 가져가서 주방앞에서 인스탄트 커피가루를 한 스푼 타는 것이었다
메뉴판에는 이탈리아식이니 에스프레소니 써 놓더니 커피믹스 하나에 물 가득 탄거였다,
음식은 맛있는데 장정들 몇이 먹기엔 양이 좀 적었다능...
식사 다 마치고 일행들은 짐 챙겨 나온다고 리조트로 돌아가고 나는 여기서 뱃시간을 기다리기로 햇다.
그냥 앉아 있기 뭐해서 쥬스 한잔 시켜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시간 맞춰 부두가로 가다 아침에 만난 동네아줌마를 또 만났다.
방카나 레포츠 소개시켜주고 수수료 받는 걸로 생활하는데 나이가 드니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했다
11월 부터 성수기라니까 이제 손님 많을 거라고 위로해 주고 헤어졌다
우리의 짐을 이고 가는 직원들이 저 멀리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 : 하 운형
케츄얼한 옷차림과 짧은 머리에 캡을 눌러 쓴 첫 인상은 날렵한 30대로 보였다.
여행내내 하는 짓은 완전 개구쟁이 20대 였다.
그런데 나중에 44살이란 말을 듣고 갑자기 더 애정이 생기는 것에 나도 놀랐다. 같이 늙어가는 친구를 얻은 기분이어서 그랬을까 ?
출국 전날 둘이 앉아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인생을 직접 부딪쳐 해결하고 몸으로 터득하며 배운 사람에게 풍기는 내공이 강하게 느껴졌다. 말과 글로만 인생을 알아온 내가 더 운형이에게 배워야 할거 같다.
외강내유라고 할까, 겉으로는 강한 인상이지만 내면에는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였다
나에게 사진을 한장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베르데 해변을 뒷배경으로 바위위에 ' JJY ♡ ' 라는 이니셜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니셜에 맞는 산호를 열심히 찾아 어떻게 놓으면 더 예쁠가 궁리했을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그 사진을 보고 여친이 좋아했다는데 그런 선물에 감동먹지 않을 여자가 있을까 ?
운형이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이번 여행이 부드럽게 진행되고 일행들이 편하게 써비스 받을 수 있었던 숨은 노하우.
운형이가 사의적절하게 활용한 팁이었다.
비록 적은 돈이었지만 여행의 윤활유였고 청량제였다. 그 사려깊음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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