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8. 17:00ㆍSpain 2013
당일날은 입장이 어렵고, 몇달전 수수료까지 내가며 인터넷예약을 해야 알함브라 (Alhambr) 궁을 볼수 있다는 걸 익히 알고있다.
그 정도 귀차니즘은 마다할 내가 아니지만 일찌감치 재껴놓은 건, 알함브라가 터키의 흔한 이슬람궁이나 캬라반사라이 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슬람 궁에 꼭 있는 중정 수로와 천장을 장식한 문양에 깃든 의미까지 다 배울수 있었던 터키여행을 먼저 한 오만함이랄까. 유럽땅에서 이슬람 문화를 볼수 있는 곳이 안달루시아 지방이라서 서양인들이 꼭 들르는 곳이지만 나에겐 이태원에서 케밥 먹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알함브라 궁이 건너보이는 알바이씬 (Albaicin) 동네에 구미가 땡겼다
치안이 위험한 달동네라는 말에 어릴적 살던 곳을 찾아가는거 같은 설레임까지 생겼다
알함브라궁 정문에서 좌측 언덕위까지 집들이 빼곡한 동네가 알바이씬 같아서 무작정 차를 그쪽으로 돌렸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완전 골목길
이 길에선 어쩔수 없이 차를 세우고 은재를 정찰병으로 먼저 보냈다,
" 아빠, 차가 갈수는 있어. 저쪽에 차 한대 있어 "
차라리 못 간다고 보고하길 바랬는데 TT
은재 태우고 양벽을 스치듯이 지나갔다,
조금 더 가니, 막힌 길이긴 하지만 오른편에 차를 돌릴 정도의 공간은 있었다,
그 위로 알함브라궁전이 보였지만 그걸 감상할 여유가 없다.
수십미터 더 골목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눈에 봐도 우리 차 같은 승합차가 비집고 갈 길이 아니였다,
이런 길은 더 가 본들 출구없는 외통수 길이 뻔하다.
점수 안나도 좋아. 빽 (back) !
뒤로 후진하는 내내 차안에 난리가 났다. 그 달동네 경사진 골목길을 후진으로 다시 나온다는건 어지간한 베스트 드라이버도 후달리는 일. 초보같으면 공황에 빠졌을 상황이다. 온 가족이 한 눈 한 귀가 되어 양쪽 옆도 봐주고 앞도 봐주고 뒤에 차가 안 오나 봐주며 천천히 일보전진 이보후진을 반복해가며 차를 뺐다. 아까봐 둔 차를 돌릴 정도 여유가 있는 곳에서는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순간 차가 뒤로 밀려 모두 시껍했다, 그때는 구경만 하고 있는 내 왼발이 미웠고, 덩치는 어른만한데 운전면허 자격이 안되는 경재가 야속했다,
무사히 차를 돌려 이제는 전진으로 왔던 길을 나가는데...더 큰 강적을 만났다.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가, 우리 차가 기다려주는거 뻔히 알면서도 하나도 서두르는 기색없이 자기 볼일만 보고 있다
가만보니 고장났는지 아예 애를 태운채 몇 분을 저러고 있는데, 자기 애만 중요하지 타들어가는 내 애는 우짜라능
언제 쓰나미가 몰려올지 모르는 후꾸시마같은 이 곳을 빨리 벗어나야 할텐데...
골목 거의 다 나와 차 한대랑 맞닥트린것 빼고는 무사히 큰 길로 나올 수 있었다,
만약에 좁은길에 끼어버리고 앞뒤로 차라도 나타났으면...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알바이씬 근처는 얼씬도 못하고 동굴거주지로 유명한 사끄로몬테 (Sacromonte)로 방향을 잡았다,
사끄로몬테는 알바이씬보다 더 높은 지역이라 전망이 좋을거 같았다,
여기도 점점 길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집들에 막혀 알함브라궁이 보이지 않아 계속 가다보니
오히려 알함브라 궁 바로 아래로 나왔다
경재는 또 ' 차 안에 있겠다' 고 해서 우리만 공원쪽으로 산책 나갔다
알함브라궁전은 내부도 아름답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도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알바이씬과 사끄로몬테가 덩달아 뜨는 이유다
성 아래를 흐르는 똘캉. Darro 강에서는 동네 젊은 남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청년 실업율이 걱정이야
『 스페인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였던 프란시스코 타레가 (Francisco Tarrega)는 그의 제자인 한 여인을 짝사랑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에 실의에 빠진 타레가가 여행을 떠나게 되고 어느날 저녁 늦게 이곳 알함브라 궁전에 도착해 달빛이 내려 앉은 궁전에 떨어지는 분수의 물줄기를 듣고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뚝뚝 떨어지는 저 눈물방울 같은 트레몰로는 바로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
경재가 걱정되서 사진만 몇 장 찍고 금방 돌아왔다,
점심을 먹이려고 아까 봐 둔 언덕위 식당에 찾아갔는데 이번에도 경재는 차 안에서 잔다는 것이다. 열까지 난다고 ...
할 수 없이 우리만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여직원이 ' 조금있다 점심 시간이 끝난다 ' 했다고 현주가 얘기 해줘서 얼른 음식을 시켰다.
남은 음식은 동네 참새들 차지
짱이 쌜러드 7.5 €
현주가 Eggplant 를 시켰는데 굵은 프랜치후라이처럼 생긴 음식이 나왔다.
먹어보니 가지였다. 가격도 저렴 (6 €) 하고 맛도 괜찮고 양도 많았다.
근데 왜 저런 이름이 붙었을까 ?
나중에 한국와서 찾아보니. 서양식 가지는 달걀 모양이었다
은재 양고기 12 €
마빡에 파리가 붙어도 먹는걸 멈출 수가 없을 정도로 맛있는 양고기
나만 포식할수 없지 파리도 마이 묵어라,
나 돼지고기볶음 13.2 €
점심시간이 끝나가자 여직원들이 주변을 정리하는데, 그 무거운 파라솔을 불끈불끈 드는 모습을 보고 현주가 감탄을 했다.
여직원들이 참 활기차고 친절하다.
은재에게 잘 나온 사진을 보여주며
" 이거 줄테니까 너 폰으로 찍은거 아빠랑 바꾸자 "
귀국해 며칠이 지나도 은재가 그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길래, 사진 줘야 이번달 용돈 송금한다고 했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 폰을 가지고 나왔다
역시 유명관광지라고 빵값을 별도로 받긴 했지만 총 45.9 € (68,850 원)
Bar Aliatar (plaza de aliatar 4)
' 음식이 맛있다 ' 는 내용을 폰으로 번역해 들려주며 나왔다
아빠가 애를 업고 엄마는 가방매고 뒤따라 가고...
애 머리가 아빠 등뒤에서 대책없이 꺾이고 있었다.
차를 빼서 나오며 알함브라 궁과 그라나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쩡이 사진은 프레임이 좀 독특했다. 지금도 남들은 다 먼 전경을 바라보는데, 짱이의 시선은 계속 담벼락에 머물고 있었다
예술가 기질일거야, 결코 근시때문은 아닐거야 !
은재와 나는 씸플하고 단순해서 배만 부르면 행복해진다.
현주는 배가 부르면 두통이 사라진다. 경재는 배가 부르면 비로소 배가 나온다.
비싼 돈 들여 그라나다까지 와서 좋다는 곳은 안 가고, 부녀지간에 눈싸움만 하고 있다.
그런 눈싸움은 한국에서 해도 되는데,,,
그런데 한국에서의 일상에선 그런 것조차 할 짬이 안 났다. 그 사이 애들은 훌쩍 커버리고 나는 벌써 늙어 버렸다
일단 해외로 데리고 나오면 도망도 못가고, 질리게 함께 있을수 있으니까 그게 내 여행의 숨은 의도다
차로 돌아왔더니, 경재가 깨서 " 목적지까지 얼마나 걸려 ? " 묻는다.
숙소 찾으러 좀 갈수도 있다고 했더니 괜찮다곤 하는데 표정을 보니 괜찮은게 아니였다
아무래도 가까운 숙소를 빨리 알아봐야 할거 같다,
저 위에 순백의 동네가 사끄로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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