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스페인에는 OO맛 프링글즈도 있다

2013. 7. 27. 21:00Spain 2013

 

 

 

이글거리던 태양도 5시가 넘자 서서히 식어갔다

지평선너머 끝없는 밀밭위로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자 갑자기 온 대지가 활기차게 살아났다

누렇게 뜬 라만차 들판이 황금색으로 반짝거렸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酉時 (PM 5~7)다. 그때의 빛이 가장 풍부하며 부드럽다. 스페인의 유시도 사람을 이렇게 신나게 만들수 있구나.

행복할 이유가 별로 없는거 같은데 석양빛을 듬뿍 받은 깜뽀 들판속에 묻혀 있으니 그냥 저절로 행복해졌다,

 

Linares 까지 200 km. 연료게이지 1/4 .

눈앞에 아지랭이는 빠르게 달려 가도 계속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현주는 차 안에서 양산을 펴고 가는데 남자 몇이 웃통을 벗은채 자전거를 타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기름이 간당간당할 때까지 달려 주유소에 들어갔다

 

L 당 1.459 €   총 106.46 € (159,690원)

 

 

 

화장실도 가고 껌도 사고 음료수도 마실겸 좀 쉬어가기로 했다

 

 

얼굴은 지저분하게 타고 수염 까칠하고, 눈은 피곤해서 썩은 동태눈깔처럼 맹해졌는데

북유럽, 영국 프랑스등에서 스페인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은 자기 타던 차 끌고 한껏 멋부리며 올수 있어 좋겠다

 

현주가 계속 기분이 별로여서 풀어주려고 바보짓을 해도, 나만 진짜 바보되고

애들에게 " 오늘은 너희들끼리 자라. 엄마 아빠 같이 잘테니까 " 해도 먼저 차로 들어가 버렸다

 

 

은재가 신기한거 발견했다고 호들갑이다.

프링글즈 하몽맛이다.

" 엄마한테 ' 스페인에는 □□ 맛 프링글즈도 있다.' 라고 문제내야지 ! " 하며 신나서 달려갔다

 

차에 와보니 아직도 분위기가 썰렁하다. 프링글즈 하몽맛도 현주의 표정을 바꿔놓을 수 없었다.

나중에 들으니 현주가 은재한테 삐져서 " 당분간 말 걸지마라 " 고 했다능...

 

아직도 1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앞 주유소는 문닫았다. 쓸쓸하게 방치된 채. 우리 분위기랑 어찌 그리 똑같으냐.

 

 

핸들 안고 앞만 보고 있자니 갑자기 짜증이 났다.

나는 잠도 안자고 운전해야 하고, 식당도 알아봐야 하고 숙소도 알아봐야 하고, 가족들 분위기도 업시켜야 하고...모야 ~

그 감정이 운전으로 승화되었다. 

성숙한 교통문화를 준수하는 에스파냐와 EU 차량들 사이를 과속과 추월을 일삼으며 큰 덩치로 몰아부쳤다.

갑자기 눈 돌아간 남편을 말리려고 현주가 뭐라하는데 대꾸도 안하고 에어컨을 이빠이 틀어 차 안 분위기를 급냉시켰다

 

그렇게 지롤,지롤했더니 금방 리나레스 갈림길에 도착했다.

10 km를 더 가야 하는데 계속 좁은 시골길이다. 

이 정도면 어디 볼품없는 마을 아녀 ? 숙소나 제대로 있으려나 ?

 

그런데 언덕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마을이 아니라 도시였다,

우리가 빠른 샛길로 들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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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호텔을 찍고 시내로 들어가며

" 은재 상희 잘 들어 ! 여행 망치지 않게 서로에게 잘해라. 못하면 벌칙 줄거다 ! " 경고했다

나름 생각해 놓은 벌칙은 1차, 굶기고  2차는 차안에서 자기

 

골목길을 돌아 첫번째 호텔 Baviera 에 도착했다,  주택가 골목길에 있는 조그만 숙소였다. 

 

바로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갔는데 현관문이 잠겨 있다. 그냥 가려다가 예쁜 실내 조명에 이끌려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후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리길래 ' 호텔, 호텔 ' 했더니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두어평 현관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어 그냥 기다리는데 위층 계단 아래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더니 올라오라고 손짓한다.

 

겉보기랑 딴판으로 2층 호텔 로비는 인테리어가 아주 훌륭했다, 다행히 직원이 영어도 조금 했다

2인실 40 €  3인실 50 € 주차는 8 €

 

방을 둘러보니 욕조도 있고 3인실 베드가 다 싱글이여서 현주도 만족했다

 

 

"  방 맘에 든다. 주차비는 빼 달라 " 고 했더니 안된다고.

그럼 방값을 2 € 씩 빼서 38과 48로 하자고 했더니 자기 boss 에게 혼난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 뭐좀 깎아달라고 하면 다 똑같은 멘트다.

그래서 주차를 길에 해도 되냐고 했더니 No Problem

 

여권 달라고 해서 다시 차로 와 짐을 챙기는데,

그 남자가 내려와 차를 보더니 도로 표지판을 가르키며 Mon~Fri 주차불가, Sat Sun 에는 OK라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깎은 가격 86 € (129,000원) 에 쇼부보고 Wi-Fi 비번 5개 받았다. 고마워 사진 한장 찍어도 되냐고 하니 자세를 잡아준다.

생긴거랑 딴판으로 (자기 영어 못한다고 부끄러워 하던) 소심한 남자였다능.

 

애들 방을 둘러보러 갔다. 마침 은재 상희가 프런트로 간다고 하길래 ' 왜 ?  Wi-Fi 때문에 ? ' 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9:00

10시 정각에 비번 알려주겠다. 그때까지 씻고 잘 준비하라고 했다.

경재가

" 난 준비 다 됐어, 빨리 해야 빨리 자지 " 너스레를 떨길래,

- 너는 이번 여행 잘 하고 있으니 9시반에 와 !

 

 

빨래하고 씻고 프런트에서 얻은 지도보며 내일 갈 곳 궁리하고

 

현주는 인터넷하다 얼굴 팩 붙이고 잠들어 버렸다

 

몸은 피곤해도 여행기를 마저 정리하는데 위층에서 쿵쾅거리며 소란스럽다  12:00

주로 손톱에 때낀 사람들이 숙박하는 곳인가보다. 스페인에 와 처음으로 다른 방에서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꽤 먼 이동거리에 비해, 고속도로라 시간과 힘이 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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