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9. 12:00ㆍLife is live !
옷은 비록 기워 입었지만 마음만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던 그 시절
따뜻하고 행복했던 그 때의 느낌을 더듬어본다
국민학교때 4년간 살았던 오산 남촌을 다시 찾아갔다. 더 늦기전에...
천만다행으로 동네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개발의 거센 파도속에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는 섬처럼 ...
원래는 이 동네도 재개발 예정지였는데 건설경기가 고꾸라지자 주민들이 사업을 취소시켰다.
1974년, 나 8살때
건널목에서 이 곳 남촌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을때 싫다고 떼를 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TV 있는 집을 찾아다니며 아톰 만화를 보는 재미에 한참 빠져 있어서...
그래도 결과적으로 이삿짐을 싼건 아마도 TV를 사준다는 꾀임에 빠졌던 것이 분명하다
<클릭하면 확대됨>
남촌집 방바닥은 장판대신에 니스칠한 누런종이가 깔려있었다
신기할새도 없이 그 냄새때문에 이사하자마자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동네 한가운데에 조그만 성당이 있었다.
지금도 내 머리속에 이 세상에 가장 깨끗한 색은 성당 앞 하얀 성모상이었는데
그 성모상도 성당도 공중으로 흔적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공용주차장이 되버렸다.
티코 한대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 동네에도 자가용은 이제 필수제가 되버렸다
간신히 빈 자리를 찾아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장갑을 벗어놓고 맨손에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가출한 들고양이들이 추운 겨울에 쓰레기통을 뒤지다 나랑 딱 마주쳤다
서로에게 적의가 없다는걸 알자 곧바로 개무시.
각자 가던 길로,..
옛날엔 너른 밭에서 동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그만 골목입구를 찾아야 했다.
저 공주슈퍼자리에 예전에도 구멍가게가 있었다
내 또래의 뚱뚱한 사내애가 그 가게집 아들이었는데 나랑 별로 친하진 않았지,
그냥 그 애가 질투나게 부러워서...
지금도 장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색바랜 간판만 옛 기억을 재생시켜주고 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넓은 광장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학교에 들어갔고 1학기때 반에서 십몇등을 하다가 2학기 들어 4등을 한적이 잇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는데 동네 아줌마가 뜸금없이
" 너 이번에 4 등했다며 ? "
자랑하듯 대답했던 꼬맹이가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또 하나의 구멍가게가 나오고
그 가게가 보이는 곳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어두운 골목속으로 불쑥 들어갔다
골목이 이렇게 깊었었나 ?
재활용 플라스틱병이 쌓여있고 리어카로 가려놓았다
요즘의 이 동네 사정을 눈치 챈거 같아 급 우울해졌다
요 집에서 골목은 물고기배처럼 휘어지고 더 좁아진다.
두 집 처마에 가려 어두워진 저 골목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 도둑질 하지 마라 ' 는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엄마에게 그 꾸지람을 듣던 며칠전
학교 앞 문방구에서 문수에게 물건 훔쳐오라고 시켰다가 걸려 벌 서던걸
옆집 명심이년이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다녀서 엄마까지 알게 되신거였다.
그 쪽팔린 기억 때문에 골목이 더 우울해 보였다
세월은
콘크리트 담벼락에 모래가 드러날 정도로 거세게 지나갔다.
모퉁이를 돌면 바로 내가 살던 집이 나타난다.
우리집 담과 앞집 벽 사이에 길고 좁은 공간이 있었지
개구진 성격에 그 안이 궁금해 몸을 납작하게 세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역시 숨겨진 보물은 없었다. 부서진 장난감과 연탄재밖엔...
지금은 그 틈마저 벽으로 가려 놓았구나
내부가 궁금해 발돋음을 해서 들여다 보았다
적갈색 페인트가 칠해진 마루는 조립식 판넬로 막아서 단열을 해 놓은게 얼핏 보였다
개집을 얹어놓은 자리가 예전엔 화장실이었다
옛날에는 왜 학교에선 큰거를 못 봤는지...
학교에서부터 마려운걸, 다리를 꼬아가며 참고 집까지 잘 왔는데
대문을 여는 순간 긴장도 풀리고 괄약근도 풀려버렸지
X 싼 바지로 화장실에 앉아 애타게 엄마를 불렀던...
그 쪽팔린 기억때문에 화장실이 더 냄새나 보였다
손바닥만한 마당은
개와 염소와 오리에 토끼까지...작은 창경원이었지.
오리에게 먹인다고
아버지랑 언니 동생들이랑 막대기 들고 개구리 잡으러 갔던 신나는 기억이
갑자기 개가 시끄럽게 짖어대는 바람에 혼비백산 날라갔다
몇 년전에 현주랑 이 골목을 찾아 온 적이 있엇는데 그때도 개 짖는 소리에 놀랐던 기억이 났다
개소리를 봐서는 그 개가 이 개인듯
창성이 어머님이 아직도 이집에 사신다는데 괜히 나와 보실까봐 얼른 도망쳤다
여긴 원래 하천부지였다고 한다.
이 골목에 크기와 모양이 똑같은 집 세채가 쪼르르 있었다.
바로 뒷집은 오래전부터 빈 집으로 방치된 듯
세번째 집은 예전 기와집이 헐리고 신식 양옥이 되었다.
지금은 계단이지만 예전엔 비탈 흙길이었지
그 위에 뚝길도 참 높아보였는데
태풍이 와
강한 맞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뚝 아래로 뛰어 내려가며 놀던 그날은 언제였을까 ?
둑 아레에 있던 고물상은 지금 그 주인이 떠나지 않고 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다시 돌아 동네안으로 들어갔다
동네주민인 듯한 아저씨가 리어카를 끌고 고물을 주우러 나가고
잠시후 젊은 아줌마가 휴대폰을 얼굴에 대고 나를 본체만체 무심히 지나간다
옛집 골목을 나와 구멍가게쪽으로 더 들어갔다
부여에서 올라온 덕겸이 재겸이 아저씨가
기반잡는다고 오산에서 한동안 살았던 집도 보이고
맞은편 뚝으로 올라가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마당이 깊고 여름에도 서늘했었던 이집은 무당집이었는데
지금은 쓰레기같은 잡동사니만 잔뜩 쌓여있다.
왼편 문수네 집은
신발 벗어놓을 정도의 마당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세대주택이 요새처럼 들어차 있고
그 당시에도 이 쪽에서 뚝길로 올라가는건 계단이었다.
이 동네는 계단에 난간하나 만들어주지 못할 정도로 소외되었는가...
내가 골목을 어슬렁거리자 외출했다 들어오던 앞집 사람들이 힐끗 처다본다
빤히 아는 동네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은 금방 눈에 띈다
다시 돌아나와 다른 골목길르 씩씩하게 들어선다
예전에 이 동네에 살때도 이쪽 까진 자주 와보지 않았다
숙이언니가 신혼살림을 차렸던 집은 지금 담장만 남기고 다 혈려버렸다
골목 끝까지 가봤는데 어설프게 막아놓은 막다른 길이다.
예전에는 뚝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을텐데 지금은 소방도로 때문에 이 골목이 끊어진 듯
쪽창안쪽에서 음식을 기름에 튀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일이 새해라 여기 저기 음식을 준비하나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고소하다.
방해될까 살금살금 돌아나왔다.
어느 집 벽 안쪽에서 도마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사람이 살거 같지 않은 골목길에서 온기를 느끼며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오른편 골목길 끝집이 순동언니 친구네 집
그 집은 따뜻한 구들방 아랫목으로 기억된다.
겨울에 이불속에 발 담그고 놀던 생각에 저절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담 너머 마당에서
아줌마와 아저씨가 음식 만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데
" 엄마, 누가 저기서 사진짝어 ! " 하는 여자애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촬이라도 한것처럼 당황스러운데 이내
" 모닥풀 피운 걸 찍는다니 ~ ? " 하는 인자한 아줌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나와서 물어보면
" 제가 예전에 이 동네 살았거덩요... '
라고 말해야 하나 궁리하며 얼른 골목을 지나왔다. 길이 미끄러워 기다시피...
이 골목으로 열심히 국민학교를 걸어다녔구나...
다시 둑으로 올라와 계성제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아버지와 청춘을 같이 했던 그 회사는 벌써 망해서 공장건물만 잡초 덤불속에 거대한 맘모스등처럼 엎어져 있었다.
3학년 겨울까지 거기 살다가
다리 수술해 달라고 졸라서 서울 한양대학병원에서 몇달 있다 나와보니
집이 군청뒤로 이사해 버렸다.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남촌을 떠난 것이 지금까지 미련으로 남았었는데 오늘 그 숙제를 풀고 간다
◈ ◈ ◈
수원 집에 돌아왔다
짱이가 연휴 첫날이라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느긋하게 TV를 보며 앉아있다
짱이에게 오늘 이 집은 훗날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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