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을 찾아 떠나다 "

2010. 12. 7. 13:33독서

 

 

 

 

 



                      저자 채승우씨는 오랜기간 조선일보 사진기자생활을 하며 큰 보도사진상을 받기도 했으나

                  갈수록 사진에 대해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6개월간 유럽으로 ‘사진을 찾으러 여행’ 을 떠난

                  다.  프랑스와 독일 영국 터키등 낯선곳을 다니는 그의 눈에 비친건 관광지가 아니라 사진

                  전시장이고 그가 쓴 글은 여느 여행기가 아니라 사진의 역사와 개념글이였다

                     요즘처럼 사진이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끈 시대가 없었다. 더 깊이 사진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갈증을 해소해주는 청량제다.

 

                 오르세에서 사진의 탄생을 보다. 오르세미술관은 2월 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14년까지 19세기 프랑스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이전 작품들은 루브르, 그 이후 작품들은 퐁피두로 이어진다. 오르세는 인상주의 그림들로 유명하다.사진과 인상주의 회화는 정확히 같은 시기,같은 공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사진은 회화가 오랫동안 이루어낸 구성과 소재를 그대로 따라할수 있어서 예술매체가 처음 만들어진 것 치고는 표현이 아주 풍부했다. 회화입장에서는 사진이 출현하자 ‘이제 회화는 죽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드가나 로트렉은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릴 정도로 인상주의 회화와 사진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던 듯하다. 19세기의 파리에서는 어떤일이 벌어진 걸까 ?

                 회화와 사진이 만나던 순간,19세기 파리. 지금이나 그때나, 사진은 대중문화와 어울렸다. 얼마 안가 전혀 훈련되지 않은 사진가들이 저마다 예술가를 자처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사진을 옹호하던 예술가들마저 등을 돌린다. 들라쿠르아의 말 ‘화가가 추구하는 것은 정확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이 재현하는 것과의 차이, 그 차이가 보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준다’ 미술사학자 아놀드 하루저는 “회화가 자신만의 것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회화는 사진과 건강한 경쟁을 주고받았고,다음 단계의 예술로 성장하여 20세기초, 회화는 말 그대로 춤을 추고 있는 듯 빠르게 자유로워진다. 사진은 사진 고유의 것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

                 포토저널리즘이 축제가 되는 도시,페르피낭. 크고 작은 전쟁을 겪으며 포토저널리즘의 황금기를 구가하다 1972년 저널지 「라이프」의 폐간은 잡지의 시대가 끝나고 TV 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이후 저널리즘 사진은 다양한 변화를 모색해야 했다. 올해 축제의 주제가 ‘포토 저널리즘,저널리즘,혹은 뉴스의 위기,사진은 아직도 뉴스와 정보를 전달하는가 ?’였다. 세상 살아기는 일이 다 그렇듯 사진의 길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고흐의 마을,아를에서 열린 사진 축제. 고흐의 그림이전, 아카데미 화가들로 대표되는 기성화가들의 그림들은 아주 정교해서 평론가들도차 돋보기 안경을 댈 정도였다. 세상을 그리되 작가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태도였는데 고흐의 두터운 물감,그 위에 남은 붓질의 흔적은 이야기가 그림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 자체에 있음을 표현했다. 그의 그림은 20세기 초 독일 화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고 ‘표현주의’라는 이름으로 꽃피운다. 이러한 개념예술은 현대에 와서 더욱 세가 커지는데 사진가 김홍희 선생은 개념예술에 대하여 ‘중세예술은 신을 표현했고, 근대예술은 자연을 표현했다. 현대예술은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다. 그것이 개념예술이고, 개념예술은 머리로 즐기는 것이다‘ 라고 설명했다

                 함부르크의 잡지, 박물관 그리고 사진. 독일의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출신의 사진가들이 만들어낸 흐름은 대단했다. 세계현대사진을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 그 학교 교수부부인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부부의 공장사진 시리즈가 그 시작이다. 언제나 정면이고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지극히 냉정한 시각으로 건축물 기록사진처럼 공장 건물들을 찍어나갔다. 이런 형태를 ‘유형학적 사진’이라고 불리었으며 개념예술의 측면을 지닌다. 사진은 읽어야 하는 대상이 되어갔다.

                 세계최대의 사진영상장비전 쾰른 포토키나. 캐논은 EOS-5D markⅡ를 처음 발표했는데 카메라의 동영상 화질이 아주 훌륭했다. 가난한 비디오아티스트들은 심지어 비디오카메라 대신 이 DSLR 카메라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기도 할 정도였다. 한 비디오작가는 “캐논은 자신들이 뭘 만들었는지 모르는거 같아” 라고 말했다. 세계의 신문사들은 계속 경제위기에 시달려왔는데, 어느 신문사의 구조조정 해고기준은 비디오를 다룰수 있는지의 여부였다고 한다. 인터넷서비스를 위해 동영상의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케논 막투가 한 역할을 알수 있었다.

                 사진을 그리는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 퀼른의 루드비히 미술관의 팝아트수집은 매우 유명하데, 미국의 팝아트가 당시 소비사회에 대한 예술적 저항으로 받아들여지고 사람들의 열광을 얻은 곳은 미국보다 서독이었다. 루드비히 미술관에 엔디 워홀, 로이 리히텐쉬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들이 있다. 리히터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진을 통해서 본다는 말로 대중사진의 의미를 역설했다

                 우리는 소통할수 있을까 ? 현대예술에서 소통이란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이 교류하여 일치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닿아있는 상태를 말한다. 완전하게 소통할수 있다고 말할수록 오해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뜻이다. 현대 예술은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함을 전제한 채로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저널리즘 사진이야말로 ‘사실을 가장 정확히 보여줄수 있는 것은 사진기록뿐이다’ 와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버텨왔지만 이젠 그런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에는 좀 쑥쓰러운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전시라는 이름의 게임을 즐기다. 도시마다 전시스타일의 특징이 있었다. 런던의 전시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예요. 다음은 뭘까요 ?’ 라고 말하는 자상한 선생님이라면, 파리의 전시는 많은 작품들을 늘어놓고 ‘네가 의미를 찾아봐라’ 하고 말하는 듯했다. 베들린의 전시는 강렬했다. 전시 안에서 기획자는 기발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지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한 전시의 이야기가 전혀 다른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와 일치한다. 전시와 전시가 뒤섞인다.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수수께끼처럼 말을 걸어오는 곳이다.

                 예술가의 서명, 사진가의 서명. 전,근대까지 작가는 창조자였고 작품의 출발점이였다. 하지만 현대 예술에서 작가의 그런 역할은 사라졌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현대 예술의 감상은 작가가 만들어놓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저마다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자기 작품안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예술가들이 참 힘들어 보인다. 현대 예술에서는 분명 사진이 많이 사용되는데, 기 이유중 하나는 사진이 다른 어느 매체보다도 저자의 자취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게 작가는 사라지고 있었다.

                 도시, 사진가의 눈으로 보기. 1930년 이전에 새로운 독일사진들이 나타난다. 바우하우스의 사진과 신즉물주의 사진,노동자 사진이 포함된다. 실험적인 사진가들은 그때까지 유행하던, 회화를 흉내내는 감성적인 사진에 반대하여 아름다움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말 미술가들이 미술만의 영역을 찾기 위해 떠난 것처럼,이 시기의 사진가들은 사진만의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신즉물주의 사진의 대표로 알레르트 렝거-패츠를 들수 있다.

                 이미지들의 전쟁, 전쟁과 사진. 사진들은 전쟁터에서 자신이 속한 편에 따라 다른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사진의 말하기 방법은 같았다. 들춰내서 보여주기. 양편사진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보여주기 방법이 맞다면,그들이 각각 말하려 한 정반대의 것이 둘다 옳은 것이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진다. 양쪽 모두가 실패했다. 이제 사진이 뭔가를 보여주는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전시는 말하고 있었다.

                 매그넘 워크숍에서 만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진은 뺄셈’ 이라거나 ‘덜어낼수록 좋다’ 는 투의 이이기들이 있다. 한 장의 사진안을 정밀하게 구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사진을 찍는 문제만이 아니라. 찍은 사진들 중에서 좋은것을 선택하고 보여주는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쉽지 않다. 많은 사진가들이 자신의 사진을 버리는 데 실패한다. 전문가들도 비슷하다.

                 감당할만한 영국의 미술시장. 프리즈페어가 열리고 1주일후 런던에서는 ‘감당할만한 아트페어’가 열렸는데 3천 파운드 대략 660만원이하의 현대미술을 판매한다. 보통사람들을 위한 미술시장인 셈이다. 런던뿐 아니라 파리의 미술품시장도 비슷하다. 이들의 미술시장은 역사가 깊을뿐 아니라, 넓고 두꺼운 소비층을 가지고 있다. 예술을 향유하고 누리는 층이 두터운 것이다. 보통 가정의 거실에 걸려있는 유화액자, 사진액자가 이를 말해준다.

                 테이트갤러리 이야기. 미술관마다 성격이다르고 그 미술관의 성격에 따라 전시방법이 바뀐다. 근대미술관들은 작품이 예술사를 따라 질서있게 걸려있다. 지나치리만큼 설명을 하여 마치 미술교과서 같다. 근대에는 세상에 질서가 있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이성으로 세상을 이해할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비해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은 포스트모던한 미술관이다. 정해진 의미가 없고 관객들이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가야 한다는 뜻이다.어디서부터 어디로 돌아봐야 할지 햇갈인다. 테이트모던은 오르세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기획전시들은 갈길을 안내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술을 이해하는데 ‘관점’ 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강하게 드러낸다. 관점이 있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술은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런던에서 만날 수 있는 또다른 매력. 런던의 좋은 점은 박물관과 갤러리가 기본적으로 무료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런던에 있고 그들이 무료공연을 열기도 한다. 영국의 국민총소득중에 문화관광이 20% 이상을 차지하며 예술작품 하나를 몇 억에 파는 나라였으니 가능하리라. 또한 4시 조금 넘으면 거리에 퇴근분위기가 조성되므로 그 이후 남은 시간에 공연장도 미술관도 갈수 있는 것 아닐까 ?

                 드가의 수수께끼. 드가는 사진을 보고 그린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선으로 찍을수 있는 사진을 흉내낸 것이다. 또한 세상을 잘라내는 프레임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강하게 드러냈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처음에는 평론가들과 대중에게 구박을 당하다가 빠르게 인정받고 성공할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진의 대중화에 있다고 할수 있다. 대중이 인상주의 회화를 쉽게 이해할수 있었던 이유는 그 회화의 방법이 화가들만의 것이 아니라 시대의 경험과 관련있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가을의 파리, 사진에 덮이다. 사실주의 회화의 겉모습이 사실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주의가 미움을 산 이유는 기성세대가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다. 혁명을 소재로 삼고 창부들을 그리기도 했다. 동시대의 예술(Contemporary art)을 보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우리에게는 그런 어리석음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을 거다. 패션사진은 상업사진으로 분류되어 예술이라고 여겨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순수예술 미술관 ‘프티 팔레’ 의 벽에 나란히 자리잡을 정도로 현대사진 예술의 중요한 한 갈래다

                 파리에서 일본사진을 보다. 19세기말 파리에는 일본 미술품만 취급하는 화상이 있을 정도였다. 일본판화가 보여주는 일상적인 소재들, 밝은 색체가 만들어내는 평면성,과감할 정도로 단순한 구성을 때마침 새로운 것을 찾던 화가들의 눈에 띄었다, 그것들은 단지 새로울 뿐 아니라, 그 시기 변화의 흐름에 맞아 떨어졌다. 사진이 발명된 1839년으로부터 9년만에 일본으로 사진이 전해졌다. 사진의 역사는 일본의 근현대사회와 치열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했다. 스스로 살아서 컸다. 일본사진을 보면 일본색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한국처럼 외국의 유행사조가 불쑥불쑥 들어오는 흐름에 ‘성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다.

                 파리의 산책자, 거리의 사진가들. 이미 많은 문화이론가들이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했듯이, 사진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시건과 장소만이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유명해질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진 이미지를 남기지 못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 장소나 사건들이 많다. 다행히 파리는 화려한 사진 이미지덕을 보고 있는 도시다. 사람들이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아름다운 사진과 영화속에 파리를 담았기 때문이다.

                 파리, 초현실주의의 수도, 초현실주의의 역사를 말하자면 다다이즘에서 뿌리를 찾아야 하다. 다다운동은 기존의 자본주의 문화,이성중심주의 문화에 대한 반동이었다, 다다이즘은 우리말로 허무주의라고 번역되는데, 어떤지 느낌이 담기지 않는다. ‘다다’ 라는 단어는 소나 말을 몰때 쓰는 ‘워~워~’ 같은, 의미없는 소리에서 따온 것이다. 다다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을 위한 예술’ 에 반대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 전쟁은 사진가들에게 일거리를 주었지만,전쟁이 끝나가면서 그들은 살아갈 방법을 생각해야했다. 브레송의 친구이자 전쟁사진가인 로버트 카파는 앞으로는 사진가가 직접 사진을 관리해야 한다며 에이전시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그들은 뉴욕현대미술관 레스토랑에 모여 회의를 했고, 에이전시지만 동호인 모임같은 체계를 갖기로 한다. 그렇게 1947년 '매그넘‘이 탄생했다. 그는 1952년 유명한 사진집 「결정적 순간」을 내고 1970년 사진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리고 그토록 원했던 데셍에 몰두하지만 그다지 뛰어나지는 못했다. 2004년 세상을 떠난다.

                 니코스 이코노모풀로스를 만나다. 매그넘의 정통파인 니크스를 만나러 터키로 갔다. 그는 매그넘의 젊은 사진가들을 비판했는데 사진적이지 못하다라고 애매모호한 이유를 댔다. 그는 “사진은 보는 방법이다. 스타일은 마음에서 나온다” 며 스타일은 바꿀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스타일이 바뀐다면 그건 흉내일 뿐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나중에 어느 글에서 본 ‘사진은 일상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드러낼수 있는 일종의 초현실주의적 지각력을 가지고 있다’ 는 말로 니코스의 생각을 엿볼수 있었다.

                 뒤셀도르프파와 사진적인 아름다움. 파리의 뒤셀도르프파 전시가 보여준 대담하고도 독특한 관점, 이들의 사진이 아름답다고 말할수 있었던 것은, 즉물성 안에서 한 이야기다. 그것은 고흐의 해바라기와 자화상이 보여준 아름다움에 가깝다. 더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다면 ‘사진적인 아름다움’ 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만의, 사진 고유의, 사진적인 아름다움.

                 만드는 사진이 말을 걸어오다. 현대사진의 촬영기법중 장면을 연출하여 만드는 사진을 ‘staged photo' 하고 부른다. 관습적인 저널리즘 사진을 보는것보다 수수께끼 같은 사진을 보며 모호한 이야기속에서 보는 이에게 사진의 의미를 열어 놓는다. 상상력으로 나머지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한다, 사진은 궁금증이 된다.

                 영화의 나라에서 만난 사진. 영화화 사진을 같이하는 작가들의 사진은 이미지의 놀이에 더 충실하다는 느낌이었다. 사진들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게임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영화가 메시지만 전달하는 매체는 아니다. 하지만 한 작가가 만든 사진과 동영상을 비교해보면, 줄거리를 전달하는 역할은 사진보다 동영상 쪽에 주어져 있음이 분명하다. 사진은 ‘사진적’인 말하기에 충실하고 있었다. 국립대인 파리 8대학엔 2007년부터 사진과가 조형예술과로 통합되어 없어졌지만 사진이란 시각예술을 사용하는 다양한 매체중의 하나일 뿐이다. 지금처럼 매체가 다양한 시대에 반드시 사진이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의 철학자들과 현대사진.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시각적 환경을 통해서 자아를 구성한다. 휴가를 가서 비슷한 장소와 비슷한 사진을 찍는다. 영화 혹은 광고에서 본 이미지를 내 것으로 만들었을때 비로소 거기를 다녀왔다고 생각한다. 나의 휴가는 영화와 사진의 미미지들로 구성된다. 사람들의 보기,보여주기, 또 그들을 둘러싼 시각적 환경을 말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것일수 있다. 현대 예술이 시작적 환경을 다루는 일에 비중을 두는 것이 그 이유다.  ‘ 모든 세상은 이미지의 진열장일 뿐이다’  -보들레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