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Supertree 아래에서 아바타를 보다

2017. 1. 31. 23:00Singapore 2017





은재는 내가 알려준 길을 까 먹어 안내창구에서 다시 물어 가고 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나중에 보니 내가 알려준 방향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와 이상하게 더 멀어지는 구조였다.


쇼핑몰에서 이 엘리베이터를 타면 가든스바이더베이와 연결된 고가 통로로 갈 수 있다.











웅장하고 럭셔리한 마리나베이 호텔 로비 위를 지나가


찻길 위 고가육교를 건너 드디어 공원을 만나게 된다 



저 멀리에 영롱하게 빛나는 Supertree 숲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온다




낮에는 좀 심심한 슈퍼트리가 밤이 되자 시시각각 색이 변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낯설지 않다 했더니 영화 Avatar의 한 장면과 비슷했다.

이 공원은 2012년에 개장했고 영화는 2010년에 개봉했지만 누가 누구를 따라 했다 할 수 없는게 공원 설계공모가 그 전에 벌써 끝났기 때문이다.

<인용사진>


사람들이 야외 돌바닥 위에 찜질방처럼 벌러덩 누워있다, 저러면 더 잘 보인다나 ? 



말을 잊은채 천상의 공연을 감상하는 현주와 짱이


밤이 깊어져 공원 다른 곳은 못 가보고 발걸움을 돌렸다 





<인용사진>





한편 나는, 싱가포르에서 아직 못 이룬 맛있는 한끼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임대료 비싼 1층에선 객단가가 높은 명품만 팔고 있었지 상대적으로 푼돈인 음식같은 걸 만들어 파는 곳은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다시 인포메이션 창구로 내려갔다. 그새 안내직원이 바뀌어 있었다, 9시가 넘은 이 시간에도 문 연 식당들은 꽤 있었는데 대부분이 지하 3층 구석에 박혀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식구들을 기다렸다가 늦은 밤 식당을 찾아갈 생각을 하니 식욕이 사라져 버렸다,


1층으로 올라와 가족들을 만나기로 한 현관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한 명품 매장 앞에서 중년부부가 행인들은 아량곳없이 대리석 바닥에 철퍼덕 앉아 다리를 쭈욱 뻗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두명 다 허연 맨발로 !  그 앞을 지나가며 얼핏 보니 햇볕에 그을려 거칠고 검붉은 얼굴의 전형적인 촌부 모습이었다. 그사람들이나 나나 이 공간에 참 안 어울리는 인간군상이란 생각이 들자 미끄러운 바닥에 지팡이를 똑딱거리며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실내엔 앉을 의자 하나 없고 나도 그 촌부처럼 양말 벗는건 시간문제일거 같아 건물 밖 화단으로 나갔다. 큰 원형화단 둘레 대리석위에 앉아 있는데 한무리의 중국인 가족이 우르르 몰려 오더니 한 아줌마가 내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는게 아닌가. 불쾌해서 고개를 돌려보니 사이가 한뼘도 안되는 거 같았다. 경박한 중국어 사성이 듣기 싫어 옆으로 자리를 옯겼다.

잠깐 그 아줌마가 일어나서 어딜 갔더오더니 또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계속 옮기다가 화단 한바퀴 돌 기세다,


이번엔 또 동네 혼성 애들 네댓명이 어디선가 나타나 내 주변을 돌며 소리를 지르며 술레잡기는 하고 있다,

여기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그 고급 리조트인지, 연탄 때던 시절의 동네앞 공터 모습인지 분간이 안됐다,


검은 하늘에 신기루처럼 빌딩들이 솟아있고 거대한 배모양 수영장에서는 사람들이 칵테일을 즐기고 있고 빈 택시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쇼핑몰 앞에 줄 서 있고 이 늦은 시간까지 진입하려는 차들과 통과하는 차들이 뒤엉킨 넓은 대로를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내달린다.

누구라도 이 한복판에 앉아 있으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 자본과 욕망의 한계가 모호해짐을 느낀다,


싱가포르에 온지 삼일 지났을 뿐인데 더 이상 가보고 싶은 곳도 없고, 깊은 맛도 없고, 다시 오고 싶은 맘도 없고... 딱 3분 카레다. 

<인용사진>




10시 못되어 가족들이 무사히 도착했다.

육교위에서 은재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는데 난 주변 중국인들을 흘겨 보느라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오늘 많이 걷고 낮잠도 못 잤더니 밥이고 뭐고 피곤해서 그냥 호텔로 들어가고만 싶다

아쉬워 하는 식구들을 설득해 택시정류장을 찾아갔다,

화려한 카지노 출입구 앞엔 택시를 타려는 사람들 줄이 길었지만 택시들이 3개 차선을 다 점령해 들어와 금방금방 줄어 들었다, 택시 스탠드 철재 난간위에서 놀던 뚱뚱한 사내녀석이 내가 돌진해 오는 모습을 보고 얼른 비켜났다,,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은재랑 짱이가 또 유니버설 스튜디오 이야기를 하는데 현주랑 나는 낄 수 없어 흐믓하게 바라만 봤다,


저 Hard Rock cafe는 결국 못 가보고 여행이 끝나간다.



호텔 앞에서 은재에게 돈과 카드를 주며 간단하게 저녁거리를 사오라고 보내고 우린 방으로 들어왔다.

20분...30분...벌써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애들이 안 와서 현주가 걱정되어 마중 나갔다


은재랑 짱이는 ION까지 가서 지하식당가에서 먹거리를 사고 있는데 폐점 방송도 없이 점포들이 하나 둘 문을 닫더란다

출구를 찾아 미로속을 헤매다 직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서툰 영어로 뭐라 설명하는데 지나가던 다른 여직원이 "  한국분이세요 ? "

먼 타국에서 서로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도 나오고 '어디서 왔냐' ' 일이 힘들겠다' 는 등 나올 생각은 안하고 수다에 빠져 버렸다.


드디어 50 분쯤에 은재 짱이가 무사히 들어왔는데 현주랑 길이 엇갈려 버렸다.

은재는 또 엄머 찾아 나가고 ... 한침만에 은재랑 함게 온 현주에게

" 호텔 안에서 기다리지 어디까지 간거야 ?  애들보다 니가 더 걱정이야~ " 하며 핀잔을 했다.

저녁거리는 이것저것 골고루 사왔는데 성질을 냈더니 아무 맛도 모르겠다.

대충 먹고 1시쯤 바닥에 수건을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