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9. 14:00ㆍSingapore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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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한적한 자동차 전용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린다
스쳐가는 이국의 풍경을 놓치지 않고 감상해야 하는데 정작 나는 대시보드에 자꾸 시선을 뱃기고 있다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고 귤이 굴러 브레이크 패달에 끼어 버리는 상상을 하고 있으려니 기사 뒤통수를 갈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오른손목을 왼손으로 강하게 저지한채 억지로 창밖을 내다본다
은재에게 겸연쩍게 말을 걸었다.
" 야~ 저 케이블카 봐라. 너네들 내일 유니버셜 스튜디오 갈때 저거 타겠네 ? "
돌아오는 대답이 짧았다
싱가포르 남쪽을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동쪽에 위치한 마리나베이 샌즈호텔까지 왔다
건물을 가까이서 보니 경사가 장난아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걸 머리속에서 그려낸 설계자도 미쳤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시공사도 대단하다.
마리나베이 샌즈호텔을 지나 싱가포르 강 하구를 건너
택시는 시북쪽지역 깊숙히 미끄러지듯 들어간다,
<인용사진>
붉은 신호등 앞에서 기사가 " 요주변이 캄퐁 글램이야 ! " 라고 설명해주며 목적지인 하지레인 골목길을 찾아 낮은 건물들이 밀집한 블럭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식 고층건물만 보다가 조그만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이 버글버글한 활기찬 거리를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택시에서 내리자 조금전 탈수, 탈진는 싹 사라지고 새로운 호기심에 없던 기운이 솟아났다.
캄퐁 글램 (Kampong Glam)은 원래 '배를 만드는 겔람나무가 많이 나는 어츤' 을 뜻하는 말레이시아어다,
이곳이 특색을 갖고 유명해지게 된 건 1822년 레플스경이 아랍인과 부기스인으로 구성된 무슬림들을 이 지역에 살게 배정한 이후였다. 싱가포르는 중국인 불교, 인도인 힌두교, 아랍인의 무슬림 그리고 정복자인 영국의 기독교등 여러 인종과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유지,발전하는 문화 짬뽕 사회다.
골목을 꺾어지자마자 반갑게도 구멍가게가 있었다. 너나할 것 없이 각자 도생.
난 본능적으로 냉장고로 달려 갔는데 ...
馬蹄水(마제수), 杏仁露(행인로), 洋參菊花茶(양삼국화차) ...
살구씨, 인삼, 국화등 한약재로 만든 시원한 음료수들이 냉장고 안에서 날 유혹하고 있다
가게 안으로 사라진 현주를 찾으러 들어갔다,
오뚜기 열라면, 농심라면, chicken 라면등 한국브랜드 라면이 한쪽 선반에 가득했다
좁은 통로안에서 현주가 불쑥 나타나 내가 좋아할 만한 달달한 과즙 음료수를 양손에 들고 ...
" 형, 골라봐 ! "
" 난, 구아봐 ! "
애들은 아이스크림통을 뒤쳐
하드와 콘을 득템했다,
불량스럽게 달착지근할 것 같은 하드를 보자 국민학교때 아이스께끼가 생각났다
햇볕으로부터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싱가폴의 건물과 상가 1층 대부분은 회랑으로 지어졌다
<인용사진>
I am...Haji Lane
어렵지 않게 하지레인 골목길을 찾을 수 있었다,
누워 잠든 고양이 옆에 수도계량기 같은 것을 본다.
한국에선 수도배관을 이렇게 외부로 노출시킨다는게 상상이 안되는데 이나란 동파될 걱정없으니 건축비도 적게 들어 좋겠다.
싱가포르의 높은 점포 임대료에 쫓겨난 가난한 디자이너들이 아랍동네 별볼일 없는 뒷골목을 찾아와 개성있는 의류샵을 열었다. 거기에 맞춰 악세사리점들이 한두개 생기더니, 전세계적인 중산층 관광붐을 타고 장사가 잘 되어 지금은 싱가포르 패셔니스트의 집합소가 되었다.
여행가이드북들이 하지레인을 이렇게 소개하며 꼭 가보라고 부추겼다,
낭만적인 골목길을 머리속에 그리며 바라본 하지레인은...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는 저가 수입품 가게들과 포토샵 사진에 현혹된 외국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매고 좁은 골목길을 어슬렁거리고,있었다.
싱가포르가 대단한게, 차 한대 들어오기도 힘든 보잘것 없는 이 골목을 정비하고 스토리를 입혀 그럴듯하게 광고해 전세계 사람들을 불러 들이고 돈을 쓰게 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차 뒷꽁무니를 잘라붙인 가게 앞에서 현주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갑자기 숨겨진 스피커에서 No photo ! '말이 나와서 깜짝 놀라는 현주
여자들이 샵 안에 들어가 구경하는 사이 난 인도에 철퍽 앉아 방금 산 쥬스 한통을 다 마셨다,
오전에 흘린 수분이 다시 리필되었다
여기도 20~30% 의 점포들은 문을 닫았거나 임대 푯말이 붙어 있었다
고양이 삐끼.
조그만 골목 교차로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고 주변이 화사해졌다,
벽화가 많은 포토존이었다,
개인적으론 요즘 조성되는 벽화골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주름과 검버섯을 가리기 위해 화장한 거 같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물을 보고 싶을 뿐이지 낙서같은 현대미술을 보러 온건 아니었다, 폼페이나 하회마을을 저런 벽화로 치장한다면 관광객들이 더 모여들까 ?
그래도 누군가는 오늘도 벽에 분탕질을 하고 있다.
하지레인은 이 건물 끝에서 4차선 대로를 만나며 백여 미터의 키를 마감한다
고급스러움은 가로수길, 삼청동길이 더 낫고 상품종류와 저렴한 가격을 원하면 부평지하상가로 가라. 이 걸 보러 싱가포르까지 날라오는 바보는 나 하나로 족하다.
대로를 따라 한블럭을 이동하면 이번엔 아랍거리 (Arab st) 를 만난다. 아까 택시를 타고 들어오며 한번 봤다고 친근하다
하지레인과 다음 거리인 부소라 스트리트는 보행자 전용이라 걷기가 안전한데 여긴 상대적으로 좀 횡한 느낌이다, 무심히 또 횡단보도를 건너 다음 블록으로 이동했다
나름 기대하고 있는 부소라 거리 (Bussorah st) 입구에 도착했다,
현대적인 건물과 최신형 차들 사이에 저런 깜찍한 모양의 차를 만나니 삭막한 대도시기 조금은 여유롭고 이쁘게 보인다
짱이가 사진을 대충대충 찍어준다고 은재가 투덜댄다. 그러고 보니 짱이가 아까부터 가방도 안들어 주고 별로 웃지도 않았다.
나 쉬는 동안 은재와 현주도 어느 가게앞 그늘로 들어 앉았다
멀리 부소라 스트리트 끝에 술탄 모스크가 보인다
앞서가는 애들 뒤를 따라가며 현주에게 " 나 잘 걷지 ? " 했더니 " 애들이 힘들어 하는 건 느린 아빠 걸음에 억지로 맞추느라 그런거야 " 라고 했다, 할 말이 없어졌다
<인용사진>
캄퐁글램의 상징. 술탄 모스크.
옛날 말레이왕족이 살던 곳이라 이슬람 사원이 처음 여기에 만들어졌고 주변에 아랍문화가 녹아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둥그런 모스크 지붕과 겔람나무와 상점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풍광이 이국적이고 독톡해서 대충 찍어도 화보처럼 이쁘게 나온다고 한다.
다만 붉은 석양이 황금 모스크 돔을 비추고 상점에 불이 하나둘 켜지는 저녁 무렵이면 더 분위기 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빵집에 들어가는 짱이 뒷 모습
※ 은재가 잘 찍었다고 자화자찬하는 사진
짱이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팔짝팔짝 뛰었다,
손가락만한 도마뱀이 짱이 다리로 올라갔었나보다. 동네 주민이 '안 물어. 괜찮아' 라며 일상다반사처럼 위로했다
죽은 듯이 가만히 있다가 내가 건들려니까 잽싸게 도망가는 도마뱀
한 남자가 번잡한 광장 한가운데에 어린 여자아이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행인들이 눈치를 보며 돌아가는데 이 남자는 뷰파인더만 들여다보며 뒷걸음질치다 나랑 부딪칠 뻔했다. 여자아이와 엄마가 맞춰 입은 빨간색 원피스가 유난히 후줄근해 보였다, 중국 소황제 가족인가보다.
술탄 모스크를 오른편으로 끼고 조금 걸었더니 아랍스트리트 끝, 아까 택시 내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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