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 "

2015. 11. 21. 17:36독서

 







   

 

그는 여단 본부에서는 현 상황을 마치 동화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국 파병이 워낙 성급하게 정해지고 설치되었기 때문에, 제 27여단의 병사들은 자기 부대를 '올워스(싸구려 물건을 많이 파는 백화점)여단 '또는 '신데렐라 여단'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또 어떤 병사들은 자신들이 파견되어야 할 만큼 사태가 긴급하다는 점에 빗대 자기 부대를 '닥치고 파병 여단'으로 불렀다.

 

탄노이에서 이런 소리가 나왔어요. '지금 비행하고 있는 항공기는 여러분의 지휘관과 정보 장교입니다'. 그러자 군함의 모든 포가 그 항공기를 추적했지요. 우리는 누군가가 그 비행기를 격추시키기를 바랐어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니지 않았지요 !

 

다음날 아침, 선발대는 한국의 대구에 착륙했다. 스포츠 장비를 잔뜩 가져왔던 십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  비행기에서 내리니 놀랍게도 비행장은 포탄을 얻어맞고 있었어요. 저는 가지고 왔던 골프클럽과 테니스 라켓을 도랑에 던져 버리고 눈길도 주지 않았지요 "

 

한국은 홍콩과 닮은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신영토인 홍콩에는 최신 자동차와 건축물이 있었는데, 한국은 역사책 속에서 튀어 나온 듯한 모습이었어요. 자동차 대신 소가 끄는 달구지가 있고, 포장도로는 아예 없고, 집도 다들 작고 부실하게 지어졌지요. 아아, 여기는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절저하게 잊힌 곳이예요.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가난한 나라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우리는 북한군을 초인이라 생각했어요. 밤에 아무 소리도 없이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우리는 방아쉬에 손가락을 건 채로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토끼 같은 게 뛰기만 해도 무조건 총을 쐈지요.  그런 식으로 3일밤을 지내자 우리는 완전히 지쳤어요. 그리고 대대장으로부터 '전 장교들은 밤에 반드시 수면을 취하라'는 명령이 내려왔지요

 

이때 발생한 첫 부상자는 의무하사관 빌 베일리였다, 그는 참호로 뛰어들다가 손목을 분질렀다

"  평소에 그는 무슨 병이 있건 간에 아스피린만 처방해 주었지요. 다친 베일리가 소리 질렀어요. '손목을 분질렀어 !' 그러자 누군가가 이렇게 답해 주었죠. '아스피린이나 처먹어' "

 

미군 병사들은 헬리콥터를 가리켜 '계란 거품기'라는 별칭으로 불렀는데, 이 헬리꼽터들은 매우 새롭고 낯설게 생긴 앰블런스였다. 당시의 의무후송 헬리콥터에 타는 환자들은 착륙용 썰매에 장착된 담가에 실려가야 했다. 헬리꼽터가 상승할 때마다 거기 타고 있던 의식이 흔미한 부상병들은, 자신들이 천국의 문으로 인도받는다고 생각했다.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 초반에 퇴각하면서 무수한 좌익 인사들을 학살했다, 북한인민군도 점령지에서 무수한 학살을 자행했으며, UN군에 쫓겨 퇴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 입성한 많은 한국군 병사들은 북한인민군에게 진 원한을 갚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을 탈출한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육군 제17연대가 특히 더 심했다. 그들의 가족들이 북한 치하에서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 《Time》은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안목을 주는 가장 권위 있는 잡지였지요. 38선 이북으로의 진격, 즉 북한 영토 침공이 UN이 우리에게 준 권리를 뛰어넘는 정치적 월권행위로 간주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컸습니다 "

앞으로의 작전 향방은 불확실했다. 북한인민군은 붕괴되었고, 대한민국은 해방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아직 건재해 있으며 그의 나라 또한 무사하다. 그리고 북한인민군은 재편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UN군은 38선 이북으로 진격해 북한을 끝장내 버릴 것인가 ? 혹은 그래야만 하는가 ? 서울과 도쿄, 워싱턴, 뉴욕, 런던, 캔버라 등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논의가 활발했다. 평양에서 초조해 하던 김일성과 그의 졸개들, 크레믈린의 스탈린, 그리고 아시아 중심부에 자리 잡은 대국 중국의 국가 원수이자 게릴라 전략가인 모택동은 이 논의의 결과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이승만은 한반도를 통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과거 미국은 이승만에게 무기를 주려 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침공과 UN군의 개입덕분에 이승만이 바라던 기회를 손에 넣었다, 힘의 균형은 이제 이승만 쪽이 유리하도록 넘어갔다,.

 

"  벌써 이미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수송기의 문이 갑자기 열리고, 그 안에 있던 사람이 걸어 내려오자 정해진 위치에 서 있던 잘 훈련된 사진기자들은 탑승용 계단에 카메라의 촛점을 맞췄다. 수송기에서 나은 사람, 즉 맥아더 장군은 땅에 내려와 위엄 있는 자세로 꼼짝않고 서 있었다.

그는 악수를 한 다음, 기자들에게 자신의 얼굴 정면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또 악수를 한 다음, 오른쪽 얼굴, 왼쪽 얼굴, 다시 정면을 아무 이우

없이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시 계단을 걸어 올라가 도쿄로 떠났다, 그것이 끝이었다 "

 

사타구니에 피격당한 맥도널드는 자신을 살릴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퇴동맥이 잘려 과다출혈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맥도널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챈 다음 이렇게 말했다, 그 말 속에 감상적인 자기 연민은 없었다

"  이런 씨발, 담배 한 대 줘 봐 "

누군가가 그에게 담배를 쥐어 주자 그는 앉아서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입에 불붙은 담배를 문 채로 피 흘려며 죽어갔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한국 전쟁 개입이 이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나선 역사적 선례가 아주 많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조공 관계에 있었고, 중국의 동북부를 외적으로부터 막아 주는 지리-전략적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서기 16세기와 19세기, 중국군은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군과 싸웠다. 1931년 일본은 한반도를 발전기지 삼아 만주를 침공했다. 그리고 만주는 1937년 중국을 침공하는 전진 기지가 되었다, 중국이 북한을 지원해 줘야 할 당위성은 순망치한이라는 4자 성어속에 들어 있다.

 

"  문을 열어서 개를 끌어들여라. 문을 닫고 개를 두들겨 패라 "

 

"  저는 어느 오시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북한 사람이랑 남한 사람은 구별하기 힘들어' 그러자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우린 신경 안 써.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야 "

 

이전에는 민간 자산에 대한 파괴 행위는 고의성이 없었다, UN군이 진격하면서 생긴 총포 사격이나 폭탄 폭발로 인한 부수적 피해였던 것이다. 진격하는 UN군은 마을이나 도시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우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UN군은 민간 자산을 고의로 파괴하고 있었다. 12월 2일, 미국 제8군은 후퇴하면서 마주치는 모든 식량 저장고와 교량, 배를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외에도 기관차, 객차, 신호기, 철도 시설, 석유 저장소, 크레인 등 모든 것을 적에게 넘겨주지 않고 파괴해야 했다, '그을린 대지' 즉 초토화의 시작이었다

 

극단적인 절망감에 사로집힌 어머니들은 아이를 버리기도 했다. 맨 클로우의 말이다

"  얼어붙은 강가에서 여자들이 업고 있던 아기를 깨진 얼음 구멍 속으로 던져 버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떤 여자들은 아이를 길가에 버리고 그냥 하염없이 걸어기기도 했어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 "

 

중국 제3야전군의 사령관인 송시륜 장군은 전투 전날 병사들에게 한 훈시에서, 적에게 자비심을 보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써움이 전투라기보다는 사냥에 더 가까울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그런 태도는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집약된다

"  집에 들어온 뱀을 죽이듯이, 미 해병대를 죽여라 ! "

 

다리에 총을 맞은 프레드 헤이허스트는 해병대원에 의해 오두막에 놓였다. 그리고 그 해병대원은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 오드막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등도 난로도 없었다. 그의 눈이 어둠에 적응하자, 헤이허스트는 자기 주변에 다른 부상자들이 누워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번병이 오지 않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헤이허스트는 그 사람에게 마실 것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상배방은 바로 빠져나가서 냅다 뺑소니를 쳤다, 헤이허스트는 어리둥절했다. 도망갔던 그 사람은 2명의 해병대원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손전등으로 헤이허스트의 얼굴을 비추었다, 상대방은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  여기 잘못 오신 것 같네요. 여긴 영안실이예요 ! "

 

중국군 전사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코만도는 시체를 쌓아 높이 2m의 더미를 만들었다. 미 해병대는 시체 더미가 바람을 막아 주는 쪽에 대피소를 만들었다. 그들이 바람을 피해 그 대피소에 가 있으면 꽁꽁 언 중국군 시신이 어깨 너머로 미군을 보려보고 있었다. 그 시체더미는 워낙 높이 튀어나와 있는 덕택에 아래에서도 잘 보였다,. 그 으스스한 물체는 이 고지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때 어느 영국 기자가 스미스 소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  미국 제1해병대는 후퇴 중인 건가요 ? "

그러자 스미스 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  후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 우리가 하는 일은 또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

 

이때 일부 코만도들은 마치 일본 사무라이처럼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SBS 중사인 랭턴은 이렇게 말했다

"  저는 결국 마음을 비우고, 저도 전사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물론 죽음이 기뻤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지요. 나는 중국군에게 항복할 준비는 안 되어 있었어요. 끝은 그저 끝일 따름이었지요 "

 

중국군의 공세 전, 하갈우리에는 미군이 PX(매점)를 차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엄청난 양의 보급품이 있었다. 스미스 장군은 모든 병사들에게 사탕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남쪽으로 달려가는 멍한 눈의 병사들의 입에는 투시롤(tootsie Roll) 캐러멜이나 라이프세이버스(Lifesaver) 사탕이 물려 있었다. 바람이 씽씽 부는 황무지에서 전투 후퇴를 하는 병사들의 식량이라기보다는 유치원 소풍에 더 걸맞는 음식들이었다.

 

식사를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승강구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에드 본즈의 회상이다

"  점심식사 줄 끝에 간신히 붙었다 싶으면 저녁식사를 먹어야 하는 판이었죠. 샤워는 던져 놓은 속옷이 무릎 깊이로 쌓인 빨래통에서 했고요 "

 

마지막 남은 가동차량은 기관차 한 대와, 석유를 실은 탱커 몇 대 뿐이었다. UN군은 이 열차들을 떠받치고 있던 고가교의 목재 구간에 불을 질렀다. 불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올라갔다, 불타는 기관차에서 쓸쓸한 기적 소리가 났다. 기관차는 분홍빛으로, 빨간색으로 달구어져 갔다. 그러다가 목제 고가교가 완전히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다 부서졌다,

 

디거들이 여단장님께 이렇게 묻더군요. ' 영감, 가서 게이샤 좀 따먹어 봤어요 ? ' 여단장님은 그런 말을 좋아했어요. 그러나 그때 여단 참모장이 끼어 들었어요 ' 여단장님께 대체 무슨 말버릇인가 ? ' 그 말을 들은 어느 디거가 이렇게 말했어요 ' 영감, 째 좀 땟지해 줘요 ' 놀랍게도, 여단장님은 정말로 디거들이 해 달라는 대로 해 줬어요. 여단장님은 참모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 참모장, 나는 지금 내 친구들하고 얘기하고 있단 말야 ! ' 그러면서 여단장은 참모장을 장난삼아 몇 대 때리는 시늉을 하더군요

 

장병들은 칼을 휘두르는 용사가 라벨에 그려져 있는 '화랑 부란듸'나 말 오줌으로 색을 냈다는 소문이 파다한 '올드 호크 위스키' 같은 한국산 술을 마시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대신 일본산 아사히 맥주가 나왔다,

 

 

※ 이 책을 읽는 초반엔 그런 생각을 했다.   ' 인용글들은 파란색으로, 내 의견은 검은색으로 써야겠다 ' 고...

    그리고 책을 읽는 중간중간에 내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나 700 여 페이지를 다 읽은 지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숙연해졌다,

 

    모든 것에 감사할 뿐이다.

    6.25에 참전한 UN군과 이 책의 저자 앤드루 새먼과 그리고 여기에 나를 있게 해준 그 모든 것들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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