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선소

2006. 3. 26. 16:18국내여행

 

 

 

지금은 여수에 편입되었지만 예전엔 여천이라 불리던 바닷가

근처를 자주 지나다녀도, 한번도 눈에 안 띄었는데 눈길을 끄는 지형이 있었다. 

안사람에게 물어보니 '선소' 라고 ...

   " 들렸다 갈거 ? " 냐는 말에 선뜻 우측 마을길로 차를 몬다.

 

아래 지도에 빨간 타원형부분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든 듯한 지형

 

 

 

 

2006년 3월 26일.        

남도는 볕이 따뜻했다.

더 나이 들어서는 여수에 내려가 살고 싶은 맘이 저절로 드는 햇살 !

가난한 마을 공터앞에 달랑 역사유적지 푯말하나 서 있다. 

별로 특이할 것도 없어 보이고 입장료나 번듯한 정문 하나 없는 조그만 정원 크기 공원이다.

그러나 사실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곳이였다

 

 

그날 짱이가 나무위에 올라가 놀던 기억이 참 좋았는지

그 이후로 가끔 다시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입구가 열려있는 원형의 수영장 같은 느낌. 

물도 지저분하고 조그맣다.  그 뒤로 기와얹은 옛건물이 두어개 보인다.  

 

 

원형의 끝부분.

이 곳에서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한다. 즉 선소는 조선소의 의미다.

근데 입구가 저렇게 작으면 배도 크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천쪽의 바다는 광양만쪽에 비해 상당히 깨끗하다.

녹색 장화신은 아저씨 , 때깔 괜찮다~  매생이랑 잘 어울리네

 

 

시내 바로 옆 야산밑에 있어서 더 눈에 안 띄었나보다.

 

 

막내는 아직도 나무위에서 놀고 있다

 

노란 개나리와

 

붉은 동백꽃

 

연두빛 새잎.  바라보고만 있어도 세상 스트레스가 다 증발해버린 느낌.

 

조선소 부속건물이 다 복원되어 예전의 웅대한 모습을 볼수있기를 기대하며...

 

계선주라고 불리는 것인데. 예전 배나 거복선을 묶어두던 기둥이다.

해안 벅수라는 설도 있고.

 

 

뒤쪽으로 돌아가면 돌산이 막고 있고 그 앞에 가막만이 보인다.

 

 

3년이 흐른

2009년 10월 11일. 가을   

 

이 선소(船所) 마을은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었으며 

성조대왕 1470년쯤 고지도에 보면 이곳 선소는 순천부(順川府) 산하직속 선소로 명시되어 있다한다.

3 년이 지나도 하나 변한게 없는데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는 얼마나 변했을까 ?

 

수퍼도 정겹고

 

 

수퍼옆 핑크빛 소파에 나란히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남녀.

많은 말을 하고싶게끔 만드는 컬트적인 묘한 분위기다.

 

 

3 년전 짱이가 올라탔던 나무가 그 새 더 자란거 같다.

 

 

나무 무등타고 싶다해서 기껏 데려왔더니 나무를 거들떠도 안보고 가는 짱이.

   ' 나무야 너무 서운타 마라... 애가 좀 무거워져서 가지 부러질라 '

 

 

살랑살랑 들어오는 남도바람에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든다.

사람도 거의 안 다니고 조용해서 차창에 다리 올리고 자는 맛이 꿀맛

 

 

 

이 선소하면 빠질수 없는 인물이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라대용 장군으로 하여금 거북선을 건조(建造)케하여

임진왜란을 결정적인 승리로 이끌게 했던 조선소

 

지도상으로 보면 가막만의 최북단에 여천 선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선소의 해상입구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천연의 방패를 이루고 있어 외해(外海)에서 보면 선소만(船所灣)이 전혀 보이지

않을 뿐아니라 바다인지 호수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해면이 조용한 전략적인 중요한 위치다

선소에 들어서면 누구나 수군요새임을 느낄 수 있고 선소의 중심부에는 직경 40m(면적 1.338㎡)

정도의 굴강(屈江)(거북선을 건조하고 수선한 곳)이 있는데, 이는 선박의 노반장 또는 대피소로 쓰여진 곳이다.

 

여수 시내에 전라좌수영 옛 건물이 있다.

이 전라좌수영의 5관 5포에는 순천 도호부(부사.), 광양현(현감), 낙안군(군수), 보성군(군수),

흥양현(현감)의 5관과 방답, 사도(첨사) 그리고 발포, 녹도, 여도진(만호)가 있었다.

   전라좌수영의 전함 수는 25척었고, 해군 수는 4000명에 지나지 않았는데

   경상우수영은 .전라좌수영보다 3배나 많은 병력이 있었다 한다. 

   전라우수영은 전함 30척, 해군  5000명 이구,

   경상좌수영은 전함 75척, 해군 12000명 이었다.

 

이렇듯 가장 작은 규모의 전라좌수영이 임란 기간에도 한번도 왜군에 점령된 적이 없었는데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원균이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을 말아 먹은 이후 일시적으로 왜군에게

점령당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다

 

  

 


 

 

 

아랫 사진들은 2003년 6월 방문한  평택 해군2 함대내 사진이다.

요즘 백령도 초계함 침물로 해군의 위상이 말이 아닌데...역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너무 잘 꾸며놔 부대인지 공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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