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도장 10개

2010. 4. 23. 12:29Life is live !

 

 

  

             <아래글은 수원시한의사회 회보에 싣은 글입니다>

 


 

                 1993년 대학졸업후 취직자리를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말로만 듣던 동대문제기동 한약골목, 셀수 없이 많은 한의원 간판아래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풍경, 길가에 가마니채 쌓아놓은 초재와 가게안에 진열된

            각종 진귀한 약재들...약간의 흥분감과 행복감을 느끼며 낡은 한의원 건물 2층 다방에서

            첫 면접을 보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청주에 자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관리라는

            불법 형태의 진료였지요. 두달쯤 됐을때 대학교 선배라고 모르는 분이 전화가 옵니다.

                ‘관리한의원이 들통나면 너가 해를 입을수 있으니 그만 두라’ 는 요지의 충고.

            내심 불안했었는데 그 말 듣고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짐싸들고 집으로 올라왔습니다.

            첫 일자리를 자의반 타의반 잃은게 속상하긴 했지만 선배님이 밉지는 않더군요


                한달 후 수원에 겁없이 오픈준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개설신고를 하기전에 고참한의원

            10군데를 돌아다니며 도장을 받아와야 된다고 합니다.  명단을 보며 위치를 확인해보니

            남문부터 돌면 되겠더군요. 경*한의원에 들어갔습니다.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이러이러해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그대로 퇴짜를 맞았습니다.

                ‘여기는 다른곳 도장 다 받고 마지막으로 오라’ 고 합니다. 갑자기 머리위로 火가 치솟더군요.

            그 당시 자가용도 없었고 오픈준비도 바쁜데 역전,북문,남문 수원시내를 다 훝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적잖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투덜거리며 몇군데를 돌아다니게 되는데 대기실에 앉아

            원장님을 기다리며 원내 분위기도 느끼고 원장님 말씀도 듣고 간호원들도 겪어보게 됩니다.

               어느덧 10개의 빨간 도장이 찍힌 종이를 들고 있는 난, 이틀전의 내가 아니였습니다.

            그 많은 고참한의원의 장단점을 고스란히 내 한의원에 적용시켜 수원에서 50번째로

            정자동에 고방한의원을 오픈하게 됩니다.

                며칠후 수원시한의사회 월례회가 상공회의소 지하 레스토랑에서 열린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처음 모임이니 한번 가봅니다.가서 분위기 이상하면 담부턴 안가면 되지.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시더군요. 근데.. 어라 ? 낯설지가 않습니다. 그전에 도장받으러 다니며

            인사드린 분들입니다. 몇 년된 회원처럼 금방 웃고 떠들며 동화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런 제도가 흐지부지 없어졌단 예기를 들었습니다. 근처에 오픈해도 서로 인사도

            오가지 않습니다. 하긴 예전 선배 학력고사 점수가 낮다느니,지금의 후배들의 어려움이 선배들이

            잘못해서 그렇다느니 말이 나오는 정도니 인사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하지요.

               지금은 한의사모임에 나가면 선배님보다는 후배들이 훨씬 많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여

            더 많이 배우고 의지하고 싶은데, 오히려 부족한 내가 선배역활을 하려니 좌불안석입니다.

            왁자지껄한 자리에 앉아도 머릿속에는 小史를 쓰며 잊혀져간 선배님들 생각만 납니다.

            모두 잘 계시는지, 가끔 모임에 얼굴이라도 보여주시지...  건강하십시오 !         

 

 

 

 

    2006년부터 수원 팔달구 인계동에 다빈치한의원』이름으로 이전 진료하고 있습니다 

                                                      (☏ 031-225-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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