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새벽에만 만날 수 있는 친구들

2014. 7. 27. 05:00Britain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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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눈을 떴는데 주변이 환해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5시다.

 

곤히 자던 현주도 내가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시나브로 깨어났다.

걱정스러워 물어보니 ' 많이 불편하지 않고 잠을 잘 잤다 ' 고 해서 좀 안심이 되었다.

 

새벽 6시에 주유소가 영업을 개시한다. 

그 전에 얼른 여기를 떠야 한다.

 

동쪽 하늘에 여명이 붉게 피어 올랐다

네비가 안되니 무작정 여명속으로 뛰어 들었다. 

어젯밤엔 그렇게 무서웠던 길도 환할때 보니 사람이 살고 있고 깨끗한 동네였다

 

 

작은 마을에 들어 왔는데 인적은 없고,

동네건달처럼 갈매기들만 깍깍거리며 새벽을 휘젖고 있었다,

 

 

라운드 어바웃을 돌다가 공중화장실을 발견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의 집 같았다

빨간 벽돌집 왼편이 여자화장실, 불 켜지고 음침한 입구가 남자 화장실 

 

라운드어바웃을 360도 다시 돌아 화장실 뒷골목에 차를 세웠다

 

 

현주가 먼저 세면도구를 챙겨 가더니... 잠시 후 후다닥 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추운 새벽에 찬물로 세수한데다 화장실이 무서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다음엔 내가 칫솔과 비누와 수건을 챙겨 나왔다.

어두컴컵한 화장실 내부는 지린내가 나고 칙칙했다. 수도꼭지가 누를 때만 잠깐 물이 나오는 방식이라 한손으로 세수하느라 불편했지만 그것도 감지덕지 했다. 양치까지 다 하고 치로 돌아왔다.

 

네비를 고쳐 보려고 Wi-Fi 를 잡아 보는데... 현주가 다급하게 그러나 나즈막히 외쳤다

" 여우다 ! "

얼핏보면 동네 개처럼 보였는데, 과연 여우 한마리가 무심코 걸어나오다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첨 보는 동양인을 경계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몸을 돌려 사라졌다.

 

몇 분후 이번엔 나무울타리 사이에서 쏙 !  모습을 드러냈다

 

길을 건너려다 말고 우리와 또 눈이 마주치자 한 두 발짝 나왔다가

 

뒷걸음질로 몸을 숨겨버렸다

 

영국엔 여우가 많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함께 살아간다. 영국인들은 정성껏 가꾼 정원을 망친다고 불평하지만 자기네 정원에 여우가 와서 살면 은근히 자랑스러워한다. 예로부터 여우가 가축이나 농사를 망쳐서 여우사냥을 많이 했고 17세기부터는 아예 영국의 민속 스포츠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동물보호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여우사냥을 금지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남성 클럽이나 지방귀족들은 아직도 말을 타고 수십마리의 폭스하운드(여우사냥견)을 이끌고 여우사냥을 즐긴다.

 

이 동네 이름이 뭐지 ? .

WHEATSHEAF INN 이라고 쓴 Bar 를 보며 Wheatsheaf 라는 곳인가 ? 생각했다.

 

귀국후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리틀커먼 (Little Common) 이란 마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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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여우도 만났으니,

동네 사람들이 께기 전에  마을을 떠난다.

 

 

 

숲길을 빠져 나오자 제법 큰 도시인 헤이스팅스 (Hastings)가 보였다

 

헤이스팅스가 뉴질랜드에도 있다.

네이피어와 쌍둥이 도시인데 영국인들은 호주, 뉴질랜드로 이주할 때 향수병을 달래려고 정든 지명도 가져다 심었다.

1996년 뉴질랜드 네이피어 여행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클릭 !

 

고민하다 ' 영국의 태양이 쎄 봤자지 ' 하며, 썬글라스를 안 챙겨 왔는데

아침 햇살이 운전을 못 할 정도로 눈부셔서 현주걸 얻어 썼다.

 

 

 

 

도시에서 젤 부지런한 사람은 ... 청소부들

 

 

 

 

 

 

이 새벽 공원벤치에 사람이 보였다, 그것도 동양인 가족 3명이 ... 

당신들도 우리처럼 노숙한겨 ?

 

 

 

헤이스팅스의 구시가지가 시작되었다,

 

한 식당 창가에 ' Wi-Fi를 여기서 하라 ' 는 글이 적혀 있어 차를 세우고 잡아 봤는데 ... 안 된다

 

 

 

언덕위에 헤이스팅스城이 보였다

1066년 프랑스가 여기에 처 들어와 영국군을 물리치고 잉글랜드를 정복하게 된다. 그리고 윌리엄 1세로 즉위하여 건설한 성이다.

그 이후 영국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길 옆에 공원 같은게 보여 들어갔는데 사유지여서 얼른 돌아나왔다

 

 

도시를 벗어나 변두리 주택가로 접어들자 길 옆 풀밭 여기저기서 토끼들이 나와 놀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 사진을 찍고 싶어도 차 소리에 놀라 도망갔다, 

새벽에 나온 덕분에 토끼랑 여우를 만날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 ?

 

이른 아침부터 벼룩시장을 준비하는 상인들.

현주가 눈을 반짝이며, 들어가 보고 싶어 하는데 아직 장사준비가 안됐다.

 

 

숲이 울창한 언덕위에 아름다운 윈첼시 (Winchelsea)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여길 찾아온 이유는 현주때문이다. 현주가 윌리엄 터너를 좋아하고, 윌리엄 터너는 이 마을을 좋아해서 그의 많은 작품에 배경이 되었다.

 

 

터너 작품의 포인트가 되는 East gate  (아래에서 올려다 본 방향)

 

터너 그림속의 East gate (언덕에서 내려다 본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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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만 남은 성곽을 지나자 곧바로 내리막길로 동네를 벗어났다. 외곽도로였다.

다시 차를 돌려 마을로 올라갔다.

 

 

 

 

 

 

마을 한가운데에 오래된 교회

 

 

 

똑같은게 하나 없이 모든 집들이 각자 개성대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골목과 잘 어울리는 클래식 카들.

 

 

 

현주는 이 동네 수국이 우리집 것보다 더 화사하다고 욕심을 냈다

 

만약 한낮에 외국인이 좁은 골목길을 차로 쑤시고 다니며 기웃거렸다면 동네 사람들이 싫어 했을게 뻔한데 

이것도 노숙한 덕분에 새벽이라 가능한 거라고 현주랑 낄낄댔다

 

유서깊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마을이라 상업적으로 변하거나 비대해 질 수도 있었는데, 옛 모습을 유지 보존하려고 애쓰는 노력이 엿보였

For sale 이란 푯말을 내걸은 집들을 보니 돈 많으면 한 채 사고 싶은 맘이 불쑥 불쑥 솟구쳤

 

마을을 떠나기 아쉬워 한적한 시골길로 차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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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변에서는 터너의 그림에서 본 황금색 전원풍경을 실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터너의 그림에 나타나는 17세기 이 마을의 모습.

East gate 와 내리막길이 그대로고 그 뒤로 지금은 없어진 성곽이 뚜렷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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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면 이 주변 들판과 언덕이 참 황량했던 걸 알수 있다

 

 

 

조그만 농수로에 Private Waters 란 푯말이 붙어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져 흘러 들어와 흘러 나가는 물을 개인거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가 ?

 

목가적인 풍경을 보고 현주가 외쳤다

호밀밭의 파수꾼이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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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 살럿 브론테

 

인생은 정말이지 현자들 말처럼

그렇게 어두운 꿈은 아니랍니다.

가끔 아침에 조금 내리는 비는

화창한 날을 예고하지요

때로는 우울한 먹구름이 끼지만

머지않아 지나가 버립니다

소나기가 내려서 장미를 피운다면

아, 소나기 내리는 걸 왜 슬퍼하죠 ?

 

 

 

Life - Charlotte Bronte

 

Life, believe, is not a dream

So dark as sages say;

Oft a little morning rain

Foretells a pleasant day

Sometimes there are clouds of gloom

But these are transient all;

If the shower will make the roses bloom

Oh, Why lament its fal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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