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2002

28> 로댕미술관 - 로댕

LoBo1967 2002. 4. 17. 11:09

 

 

 

파리 7구역의 로댕박물관을 어찌어찌 찾긴 했는데 차 댈 곳이 없다.

다른 지역하고는 거리 분위기가 마이 다르다. 5m 이상되는 높은 벽이 쭉 이어져 있고 제복을 입은 경찰같은 사람들이 보초를 서는 건물들도 많이 보인다. 한국대사관도 근처에 있다고 표시된걸보니 관공서 지역인가보다. 일단 좀 쫄은 상태로 멀리 길모퉁이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왔다. 다른 곳 같으면 차댈곳 없음 그냥 포기하고 갔을텐데 그만큼 욕심이 났다.

 

 

 

박물관 입구는 건물 북쪽뒷마당이다. 마당에 들어서면 좌측에 흉칙한 색깔의 별로 아름답지 않은 포즈로 몇몇이 서있다. 

이 작품이 <칼레의 시민> 이다. 

 

 1347년.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 초기. 프랑스 칼레라는 작은 도시는 영국의 에드워드 3세의 대군을 맞아 11개월을 싸우며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하게 된다. 저항에 분노한 영국왕은 모든 칼레의 시민들을 살육하기로 했으나 신하들의 간청을 받아들여 한 가지 조건을 걸게 된다. 칼레의 시민을 대표해 6 명이 성채와 창고의 열쇠를 목에 걸고 맨발로 걸어나온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 그러나 6명은 공개 처형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때 외슈타슈 생 피에르가 앞으로 나선다. 그는 칼레시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이다. 그의 용기에 감격한 시민들이 잇달아 그의 뒤를 따른다. 영국왕비는 마침 뱃속에 아기를 잉태하고 있어 그들을 죽이면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해가 될까봐 왕에게 간청하여 그들은 풀려나게 되었다.

 

1884년 칼레시에서 그 날을 기념하는 조각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로댕에게 주문편지를 보냈다. 칼레시에서는 로댕에게 '첫번째로 나선 외슈타슈 한사람만 높은 좌대위에 세우자'고 요구했으나 로댕은 6명 모두를 낮은 좌대위에 각각 독립적으로 세우고 흔히 쓰이는 번적거리는 개선문의 사두마차나 기마상조각 월계관등을 다 떼어내고 단순하고 힘있는 조각군상을 만들게 된다. 막상 용기있게 앞으로 나갔지만 죽으러 가는 사람들의 맘은 각양각색이겠지. 슬픈 표정, 굳은 표정, 호기있는 표정, 분노한 표정등등...그러한 모습을 담으려는 시도와 정확한 표현이 바로 예술이지 않나 싶다 


그옆에 로댕의 역작 <지옥문> 이 있다. 저 사람 키와 비교하면 얼마나 큰 작품인지 가늠이 기능할듯.

파리시는 빈터에 공예미술관을 설립하면서 현관이 될 거대한 청동문의 제작을 계약. 주제는 로댕이 알아서 하라고 일임한다. 몇년후 계획이 취소되자 로댕은 7년동안 받았던 돈을 다 돌려주고 <지옥문>은 완전히 로댕의 것이 된다. 


지옥문은 높이 7.57m, 너비 4m나 되는 부조의 청동문인데 186명의 인물들이 지옥의 형벌을 받으며 고뇌하고 몸부림치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예전 이탈리아 피렌체여행때 본 <천국문>을 떠올리며 평생을 제작에 몰두하게 되는데 <생각하는 사람> <키스> <다나이드> <우골리노> <세 망령> <아담> <이브> 등은 지옥문에서 나온 작품이며, 로댕의 1880년 이후의 작품은 직접, 간접적으로 모두 지옥문과 관련이 있다. 그 각각의 부분으로 들어가 보자




<세 그림자> 다.

세 악령이라고도 불리는데  지옥문 맨위를 보면 조그많게 보인다. 단테가 지옥의 입구에서 본 우리 내면의 추악한 실체, 곧 세마리 상징적인 짐승을 표현한 것이다. 3 명이 가리키는 곳은 절망의 늪이다.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근데 3 명의 모양이 어찌 닮지 않나 ? 사실 로댕은 하나의 인물상을 세 개 찍어서 나란히 붙여 놓았다고 한다. 로댕이 장난도 칠줄 아네 !


 

아이들에게 생각하는 사람 흉내를 내보라니까 벌써 왼손 오른손이 틀려지네. 아무려면 어때 ? 

자세까지 생각하며 생각하려니 넘 복잡하단 생각이 드는군, 

로댕이 죽으며 유언을 남긴다. 자신의 묘지위에 <생각하는 사람> 을 세워달라고...그럼 저게 무덤 ?

1906 년 판테옹앞에 새워졌던 이 동상을 1917 년 여기로 옮겨온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처음 <지옥문>을 구상하면서 작품에 들어 갈 부분 작품들을 한 작품, 한 작품씩 제작해 나간다. 이 작품도 그중 일부인데 <지옥문>의 중앙위에 있는 인물로 지옥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 세계를 긴장감있게 표현했다.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잠긴 사람의 형상은 특히 르네상스 미술에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미켈란젤로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한다. 

이 사람이 역사적 인물인데 누군지 혹시 아시는분 ?    단테다.

1300 여년. 지옥을 여행한 이야기를 묶어서 '신곡'을 썼는데 로댕은 이 '신곡'을 끼고 살 정도로 좋아했다고.         

 


키스(입맞춤) -1886년
<지옥문> 오른쪽 아래에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는 순간의 두 연인을 재현하였는데, '신곡'  에 나오는 'Paolo and  Francesca' 로 13세기, 젊고 잘 생긴 시동생 파올로에 반한 형수 프란체스카의 불륜 이야기를 나타낸 것인데, 로댕자신도 그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게 표현하여,  원래 <지옥문> 을 위하여 제작한 것을 , 나중에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아 그냥 떼어내 살롱전에만 출품했다.  이 작품이 1887년 파리와 브뤼셀에서 <입맞춤>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되자, 비평가들은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곧바로 연상시키는 의상이나 장면의 요소가 아무것도 없는데에 놀라움을 표했다 한다.

그 당시 작가 Léon Riotor는 이렇게 말한다

" 이것은 두 사람 사랑의 전략이, 그 무기를 던지고 뜨거운 숨결과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바뀌는 순간을 잡아낸 것이며, 힘과 우아함이 마침내 서로 진압되어 서로간의 포기를 입술로 인정하는 순간을 잡은 것이다."  라고...... 뭔 말인진 모르겠는데 멋있는 말인거 같아 인용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파올로의 손이 올라간 프란체스카 허벅지부분만 보면 약간 예술성은 떨어져 보인다

문뜩 2007년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에서 본 ' Pluto and Proserpina'  조각상이 생각난다

아래 사진에 손가락으로 눌린 허벅지부분을 주의깊게 보자. 환상이다 ! 


Pluto and Proserpina

<인용사진>


부분확대

             

 

포즈는 19금이긴 한데 여튼 예술이란 명목하에 아이들 눈을 가리진 않았다.

두사람이 근친의 의미로는 지옥불에 들어가기에 충분하지만, 사실 따지고 들면 지옥문에 실릴 사람은 파올로의 형 잔초토다. 추남인 형이 첫선을 보는 자리에 자기동생을 대신 보낸게 화근 아니겠는가 ?



<영원한 우상>  -1889년
로댕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파리에 온 릴케는 이 작품을 보고 
" 매혹된 힘이 솟았다가는 꺼지고 꺼졌다가는 다시 솟아오른다. 젊은 여자가 무릎으로 서서 아름다운 육체를 뒤로 젖히고 있다........아무도 감히 여기에 어떤 뜻을 부여하지 못하였다. 이것은 수천가지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라고 평할 정도로 이 작품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을 띠지 못하였다
<영원한 우상>의 두 연인들 둘레에는 보이지 않는 굴레가 씌워져 있는 듯한데, 남성은 사랑하는 여성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에 입맞춤하려 하고 있고,  여인은 몸을 뒤로 젖혀 뿌리치고 싶지만, 어쩌지 못하는 자세다. 두 연인은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떨어지지 못하는 괴로움사이에서 불안한 공존을 유지하고 있다. 이 작품은 카미유 클로델의 1888년작인 <사쿤달라>와 비슷한 분위기를 띄고 있다


 

 

<젊은 여인의 초상>  -1865년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은 평생 로댕 곁을 지켰던 부인 로즈다. 

이 작품이 제작될 무렵 로댕은 처음으로 살롱에서 입선하여 정신적으로 고무되어 있었으며, 또한 살롱의 성공과 함께 흉상들의 주문으로 재정 형편도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으며 그러한 생활의 안정은 작품 속에서 여유와 평화스러운 분위기로 표출되었다. 테라코타로 제작된 이 흉상은 아직 앳된 소녀티를 벗지 않은 고운 얼굴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로댕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것으로 로댕의 원숙기에 보여지는 남성적인 역동성보다는 부드러운 선이 한층 더 돋보인다. 살아 있는 사람의 숨결과 인상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 

 


<성당>  La Cathedrale -1908년 

어렸을때 미술교과서에서 본거 같이 친숙한 조각이죠 ?

이 유명한 작품은 원래 분수의 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는데, 휘어진 활모양의 두 손 사이로 물이 솟아 오르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한다. 작은 크기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신적 이미지를 풍기며 양손사이에 빈공간은 좁지만 결코 작지않은 의미로 다가온다. 여러분도 한번 저 제스춰를 해보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    자세히 보면 오른손 두개다. 두 사람이란거  ㅋㅋ 



이 작품은 알고싶지 않네요. 무서워서...



<다나이드> - 1885년, 대리석

'다나이드'란 제목은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것으로 ‘다나오스의 딸들’이란 의미다.

아르고스의 왕이었던 다나오스는 자신의 사위들에 의해 멸망된다는 신의 계시를 받게 되어 자신의 50 명의 딸들과 이집트의 완 아이굽터스의 50 명의 아들들과 혼례날 밤에 남편들의 생명을 빼앗도록 딸들에게 명령한다. 그 중에 단 한 사람은 살육을 행하지 않았지만 나머지 49명의 딸들은 남편을 살해한 죄로 저승에서 항아리에 물을 담아 구멍 뚫린 독에 물을 붇는 영겁의 벌을 받았다고 한다. 물을 긷다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을 조각한 것
 
역시 <지옥문>을 위하여 구상된 작품이며 또한 다른 작품들처럼 개별적으로도 제작되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감을 나타낸 작품 중의 하나인데도 이상하게 관능적이며 우아한 선과 섹시하기까지 하지 않은가 ? 아마도 제자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하여 제작됐기 때문인거 같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특별한 포즈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온몸을 잔뜩 움추리고 있는 까닭에

엉덩이로부터 허리로 이어지는 선과 풍부한 양감이 강조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로댕이 의도했던 고대 그리스,로마의 항아리를 떠올리게 된다. 귀엽게 튀어나온 요추뼈가 차가운 대리석에 온기를 느끼게 해준다.  

 


<머리가 없는 신의 사자 아이리스>  -1890년, 브론즈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참 난감했다.

힐끗 힐끗 처다보다가 용기를 내서 사진을 찍긴 했는데 안사람이 변태라고 놀릴까봐 걱정 많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 아이리스는 허벅지를 벌려, 로댕이 부르는 '영원한 터널'을 맘껏 보여주고 있는데 로댕의 작업실에서는 모델들이 모두 나체로 자유스럽게 생활하게 두었다고 한다. 가끔 외부사람들이 보곤 놀라기도 하고 욕하기도 했지만 여인이라면 모두 사랑했던 로댕이기에, 그가 예술 세계에서도 여인의 모두를 표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팔짱을 끼고 있는 나신의 발자크>  -1892년, 브론즈
프랑스문단에서 '문학의 순교자'로 추앙받던 발자크.  그의 사후 40년을 기념하기위해 문인협회장 에밀 졸라는 로댕에게 조각상을 부탁한다.  2년후 청동작품을 인도하기로 하고 작업구상을 하는데 그 당시 사진술도 초창기라 발자크의 모습을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한다. 이에 발자크의 고향이 투르 (지난주 고성순례 다녔던 베이스캠프같은 프랑스 중부의 전원마을) 라는것을 알게 된 로댕은 수소문끝에 단골양복점 재단사를 찾아가 발자크 생전의 치수대로 옷을 한벌 지어달라고 한다. 맞춤옷을 펼처본 로댕은 도저히 정상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형의 체형을 보며 당항했다. 거구인건 알았는데 장신이 아닌 157cm의 배불뚝이 였거던. 로댕은 원작에 충실하게 조각을 한다. 중간점검을 나온 문인사람들은 이 조각상을 보며 악평을 합니다

 ' 뚱뚱한 흑덩어리, 조각이 아니라 눈사람이라는 둥, 투실투실한 살덩어리가 꼭 비대한 태아처럼 보인다는 둥'  그 이후로도 조각상을 두고 양쪽에서 몇년간이나 공방을 주고 받다가 로댕은 착수금을 다 돌려주고 이 작품을 회수해 버린다. 제 3자인 내가 봐도 문인협회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이번엔 로댕이 좀 심했어 !




    

아래 작품들은 이름표를 못 찍어서 작품명도 모르고 정보도 찾을수가 없어 사진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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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샹보로궁전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제작한 신비의 계단 같기도 하고 성경의 바빌론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