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엄마 ....
언덕을 넘어 버려 백미러로는 더 이상 세븐시스터즈가 안 보이는데, 눈 앞엔 또 다른 별천지가 펼쳐 졌다.
바다와 만나는 축복받은 대지위에 이스트본 (Eastbourne) 이 낮게 깔려 있었다.
여긴 쓰나미 같은 건 전혀 없는게 확실하다.
내려오는 비탈길부터 주택가가 시작되었다,
난 운전, 현주는 호텔 찾기.
① 방금전 Inn을 봤다고 해서 차를 돌려 골목에 대고 들어갔다,
1층은 Bar 였는데 초저녁부터 손님들이 바글바글 하다.
테이블은 꽉 찼고 통로에도 술잔 들고 서 있는 사람들, 분주한 바텐더 앞에도 네댓명의 손님이 주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도저히 빈방 있냐고 물어볼 시츄에이션이 아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여자손님에게 " 위층이 호텔이냐 ? " 고 물었더니 " 아니, 그냥 먹고 마시는 곳이야 " 라고 했다,
휘청~ 밖으로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차로 돌아 왔는데 골목에서 차 한대가 못 나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가씨 운전사에게 미안하다고 손짓하고 차에 타서 현주에게 물어보니 " 저 차도 방금 왔다 " 고 한다,
얼른 차를 빼서 무작정 시가지로 향했다.
아래 지도에 A 표시가 THE SHIP INN
주택가 길 끝은 넓은 해안도로와 닿아 있었다.
오른편으로는 망망대해. 왼편으로는 중급 호텔들이 즐비했다.
② 만만한 호텔이 보여 길가에 차를 대고 들어갔다. 만실이다.
근처에 빈 방을 물어보니 검은 건물 호텔을 알려준다. 재차 물어보았더니 거긴 방이 있다고 했다.
③ 검은 건물 호텔은 로비 인테리어도 모던한 스타일이었다,
프런트에 중년 여직원이 " 싱글룸만 있다 " 고 했다.
④ 현주에게 차에 그냥 있으라고 하고 공원 건너 보이는 호텔로 가보았다.
계단을 올라가 프런트에 섰는데 아무도 없다.
벨을 누르자 좀 늦게 한 남자가 나타났는데 역시 빈방이 없음. 노트북 있냐고 물으며 호텔을 검색해 보라는 충고를 했다
해안가에 이국적인 건물이 아스라히 보였다
Pier 위에 아름다운 Pavilion 이었다,
어두워지는데 방은 없고...마음이 조급해진다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이스트본이 은퇴자들의 휴양도시고 노인들의 실버타운이란 느낌이 들었다.
아직은 중년인 동양인 부부에게 여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임에 틀림없다.
⑤ 삼거리에 주차장이 넓은 호텔이 보였다. 여긴 방이 있을거 같아 현주에게 화이팅을 외치며 들어가봤다. 역시 방 없음
로비 안쪽 홀에 노인들만 잔뜩 앉아 있는 광경이 살짝 무서워서 차라리 방이 없는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8분의 6박자의 빠른 음악을 틀어 놨는데 이미 굳어버린 노인들 관절을 풀어주기엔 역부족인거 같았다,
야외 의자에도 노인들이 빼곡히 앉아 저녁거리로 날 구경하고 있었다
⑥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해안도로를 더 달리자 호텔마저 더 이상 안보이고 살림집만 계속 됐다.
고만고만한 집 끝에 Guest House 라는 간판이 달랑달랑 보였다, 골목안에 차를 대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창문을 통해 따뜻한 불빛의 거실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저녁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유리창에서 반짝이는 네온싸인 글자도 보였다
《 NO VACANCY 》
시내에는 빈방이 있을거야 ! 서로 격려하며 바다를 등지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긴 더 썰렁했다,
이스트본의 번화가는 해안가가 다였고 안쪽은 다 주택가였다
⑦ 길가에 Bar 가 보였다, 현주에게 뭐 좀 먹자며 건물 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앞문으로 들어갔다,
두어명 앉아 있는 손님도, 바텐더도 다 남자였다, 혹시 Light meal 먹을 수 있냐고 물었는데 마실 것만 있다고 무심히 서서 대꾸했다.
우리를 손님으로 받을 생각조차 없는게 느껴졌다,
칠전팔기는 쥐뿔 ! 칠전노숙하게 생겼다.
짜증도 나고 배도 고프고 피곤한데 ...이스트본이 벌써 다 끝나고 외곽으로 나와버렸다,
불꺼진 마트옆에 빨간색 KFC가 보였다. 내키진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둡고 횡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손님이 거의 없는 KFC 매장안으로 들어갔다,
떼꼰한 현주
난 트위터와 콜라,
현주는 커피나 한잔 마신다고 해서 커피 한잔 주문했다.
허겁지겁 먹자 현주가 배고팠냐고 물어보며 남은 커피를 나에게 밀쳤다
다 들고 마셔버렸다.
배도 고팠지만 어딘가에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사회에 불만이 가득 차서 폭발할 거 같았다,
빈 콜라잔을 들고 가 아래 사진의 Kate Winslet 닮은 금발 아가씨에게 리필해 달라고 했다
" Refill ? " 영국인이 그 단어를 모를 리는 없고, 약간 당황 후 살짝 고민하더니
" 쪼금만 줄께 ! " 콜라를 4/5 담아 내주며 눈짓으로 - 매니저 보기전에 - 얼른 가져 가라고 했다.
그 마음이 고마워 오레오 아이스크림도 하나 주문해 가져왔다.
어느샌가 리필이라는 미풍양속이 전세계적으로 멸종된 거 같다.
이젠 더 이상 고리타분하게 ' 리필' 을 외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아가씨는 고리타분 외국인에게 마음에 우러나는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영국의 이스트본이 한 큐에 좋은 도시로 추억 될 거 같다.
남은 콜라를 가지고 나와 차 안에 있는 패트병에 옮겨 담았다.
현주랑 밤거리 사진찍기 놀이 하다가 정처없이 또 출발했다.
⑧ 교차로에서 Travelodge 를 발견했다.
빙빙 돌아 입구를 간신히 찾아갔는데 역시 Full. 주말이라 시내에 빈방이 없을 것이란 이야기를 했다.
현주가 그냥 주차장에서 자고 아침에 화장실 가서 닦자고 했다.
그럴 순 없지... 어떡하든지 숙소를 찾아야지.
다시 출발했는데 설상가상 네비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갓길이라곤 자전거 세울 틈도 없는 깜깜한 찻길, 뒷차는 몰아 붙이고...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 버렸다.
급기야 현주는 ' 미안한데 나 좀 잘께 ~ ' 하고 의자를 뒤로 눕히고 잠이 들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얼마나 가야 하는지, 빈방은 남아 있을지.... 그냥 눈감고 운전하는게 낫겠다 싶었다
불꺼진 주유소가 보여서 얼른 차를 뺐다.
주유소에 딸린 슈퍼에는 희미한 전등이 하나 켜있고 어둠속에 SUV 한대가 세워져 있었다.
도로를 향해 주차해 놓고 나도 잠이 들었다. 10 :30
잠이 깼다. 뒷자리로 가서 벌러덩 누워 다리를 올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11 :11
잠결에 남자들 말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밖을 보니 주차되어 있던 SUV 옆에서 남자들 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괜히 문제 일으키기 싫어 몸을 깊숙히 숨겼는데, 잠시 후 그들이 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다가 헤드라이트 불빛에 우리가 비춰져 버렸다.
운전수가 뭐라고 하길래 그냥 가라고 손짓을 했다,
난 눈이 부셔서 얼굴을 찡그리며 손으로 불빛을 가리고 있는데 운전수가 내려 내 차로 오는 실루엣이 보였다.
으슥한 곳에서 현주까지 함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순간적으로 느껴졌다
" 기름이 떨어졌는가 ? 차가 수리가 필요한가 ? " 남자가 물었다.
" 아니다. 졸려서 잠깐 쉬는거다 " 라며 그냥 가라고 다시 손짓을 했다.
다행히 별 말 없이 차가 떠났고, 아직 두려움이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5분후 또 다시 나타나서 내 차에 강한 헤드라이트 불빛을 비추며 섰다.
그런데 차에서 곧바로 안 내리고 어딘가에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다. 수상한 외국인이라고 경찰에 신고하는거 같았다.
... 골치 아프게 됐군 ! 이번엔 두려움보다도 승질이 났다.
그러더니 잠시후 차가 다시 떠나는 것이다. 차 뒤를 보니 아까 그 SUV 가 아니라 크기가 비슷한 승합차였다
그 이후 간간히 차가 들어와 시동 켠채 잠시 정차하다 가곤 했다.
현주 께지 않게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
담벼락에 소변을 보고 반바지로 갈아 입고 웃통을 벗고 다시 잤다. 12 :11
또 깼다, 간간히 지나가는 차 소리가 너무 커서 주유소 안쪽으로 차를 옮겨 놓고 실내등을 켜고 일기를 썼다. 1: 57
일기를 거의 다 썼을때 불빛이 약해지며 깜빡거렸다, 방전될까 두려워 얼른 불을 켰다.
" 엄마 ... " 현주가 외마디 잠꼬대를 했다,
순간 숙소도 하나 마련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같고 고생하는 현주가 안타까워 괴로워졌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며 다시 잠을 청했다. 3:00
※ 감사하게도, 현주는 그날 밤에 일어난 일들을 까막득히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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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장례식 - W. H. 오든
그는 나의 북쪽이며, 나의 남쪽, 나의 동쪽과 서쪽이었고
나의 노동의 나날이었고 내 휴식의 일요일이었고
나의 정오, 나의 한밤중, 나의 언어, 나의 노래였습니다
사랑은 영원히 계속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별들은 필요 없습니다. 다 꺼버리세요
달을 싸서 치우고 해를 내리세요
바닷물을 다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리세요
지금은 아무것도 소용이 없으니까요.
Funeral Blues - W. H. Auden
He was my North, my South, my East and West
My working week and my Sunday rest
My noon, my midnight, my talk, my song;
I thought that love would last for ever; I was wrong.
The stars are not wanted now: put out every one;
Pack up the moon and dismantle the sun;
Pour away the ocean and sweep up the wood.
For nothing now can ever come to any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