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tain 2014

10> 인생은 멀고 먼 고행의 길

LoBo1967 2014. 7. 24.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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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밤까지 시내를 쏘다녔으니 피곤해서 오늘 아침 못 일어날 줄 알았다.

버뜨, 시차때문인지, 신진대사가 잘 되서 그런건지 침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외국 나올 때마다 잔병치레 하나 없이 잘 버텨주는 내 몸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오늘은 조금 이른 7 :30 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일단 눈치를 좀 보고, 갖고 내려간 페트병에 식당 식수를 한 병 가득 담았다, 

맥스* 캔커피나 미에* 화이바까진 안 바래, 방에 짝퉁 생수라도 하나씩 있어야 되는거 아녀 ? 내가 이상한겨 ?  생각해보니 열받네 !

탁 ! 물병을 당당하게 탁자위에 올려놨다.

 

바게트빵을 반으로 갈라 두꺼운 햄을 깔고 토마토를 넣고 베트남에서 배운 반미 (Banh Mi)를 해먹었다.

의외로 맛있어서 현주에게 권했더니 잘 먹는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내려오면서도 의식하지 못 했는데 식당 창밖으로 계단을 보자 ' 아, 여기가 지하였지 ! ' 

반지하식으로 계단을 파고 창을 내서 아침햇살이 식당 안으로 충분히 들어오고 있었다.

공간활용을 기막하게 잘 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방으로 올라왔다.

첫날, 시간이 지날수록 방이 좋아진다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오늘 아침도 그 말은 유효하다. 현주가 특히 칭찬하는 곳이 욕실이다.

동쪽으로 큰 창이 있어 밝고 환기가 아주 잘 되었다, 악취나 곰팡이 하나 없이 깨끗하고 쾌적했다

 

현주가 욕실에 들어가더니 열심히 빨래거리를 주무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얄밉게 자기 빨래만 해놨다.

이번엔 내가 들어가 어제 나온 빨래를 빠는데 ... 열받는다고 너무 힘을 줬나, 코피가 터졌다. 아 창피해 !

휴지로 틀어 막은 코를 들키기 싫어 문만 빠꼼히 열고 현주에게 바지 좀 널어달라고 건네줬다.

 

지혈이 된 다음에 나와 보니 내 바지를 저렇게 널어 놓았다. 앞섶이 창문 손잡이에 걸려 바지가 발기했다. 

저런식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구만.  코피 날 만 하네 !

 

나갈 준비를 하고 로비에 내려와 뉴페이스 청년에게 어제 현주가 만들어 온 오이스터 카드와 영수증을 내보였다.

원데이가 맞는지, 오늘도 또 끊어야 하는지, 얼마를 또 내야 되는건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정성껏 설명을 하는데 들을수록 더 헷갈렸다.

정액제라며 뭔 요금이 삭감 되는거지 ?  그럼 몇 번을 탈 수 있단 거야 ? ...

그래서 작정을 하고 계속 묻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길래 평소에 버스를 좀 타보는 건데 ...

 

오이스터 카드에 기본 보증금은 5.  One day pass 요금은 4.5 

버스를 한번 이용할 때마다 1.4 나 1.5가 -피크타임에 따라 달라진다- 4.5 에서 빠져 나간다.3번 타면 4.5 가 다 소멸된다.

이후엔 몇번을 타건 계속 무료로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틀간 one day pass 를 이용하려면 4.5 X 2 = 9 를 충전하면 된다. 하루 당 4.5만 빠져 나가고 나머지 돈은 안 건든다.

 

숫자가 약간 틀린건 있지만 설명을 잘 해준 뉴페이스 청년이 고마워 이름을 물어보았다. 드미트리 (Dmitriy) !

드미트리에게 오늘 가려는 테이트브리튼 (Tate Britain) 미술관 노선까지 확인하고 길을 나섰다,

 

오늘은 남쪽 노팅힐 (Notting hill) 쪽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야 한다.

현주를 혼자 베이스워터역에 안 보내도 되서 더 기분이 좋아, 가는 내내 오이스터 카드 시스템을 설명해주었다.

표정으로 봐선 별로 궁금해 하지도, 알려고도 않는데 나 혼자 신났다. 

 

 

현주가 골목에서 사진을 찍다가 유모차 밀고 딸 둘을 데리고 가던 백인아줌마랑 눈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휴가왔냐고 묻더니 자기도 소원이 이렇게 외국여행하는 거라고 해서 맘이 짠~했다능 

 

 

 

 

큰길로 나오자 길건너 공원입구에 Bobby 들이 보였다. 켄싱턴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왠 김아중 ? 

신기해서 봤더니 한의원이었다

 

 

노팅힐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설명 들은대로 바로 옆 가게로 들어가 오이스터카드 보증금 확인하고 이틀치를 충전했다

 

 

148번 버스 타고

 

Hyde park corner 정류장에서 내려 환승버스를 기다린다

 

오늘 아침도 격렬하게 신난 현주,

 

이번에 탄 버스는 차장이 흑인여성이다,

 

 

한국 아가씨 둘이 버스 2층에서 내려와

 

 

Victoria station 에서 내리는걸 구경하며 자리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는데

 

 

흑인 차장과 흑인 기사가 오더니 종점이라고 내리라고 했다.

 

" 그럼 우찌해야 되남유 ? "

저쪽 로터리가서 Pimlico 가는 버스를 타세요 "

 

빅토리아역 주변은 공사중이라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검은 개가 혀를 낼름거리며 뒷 사람 손에 든 음식을 계속 처다보고 있다.

아가씨도 줄 맘이 전혀 없는지 미동도 않고 개만 내려다 봤다,

개나 사람이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핌리코행 버스가 진입하는게 보였다, 얼른 뛰어가 올라탔다.

그런데 잘 가던 버스가 갑자기 우회전을 해서 한참을 내려가는 것이다. 지도를 기억하기로는 직진해서 조금만 가면 목적지인데,,,

흑인 차장에게 Tate Britain 안 가냐고 물어보았다.

" 잘못 탔네, 잘못 탔어 " 승객 아줌마랑 합세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어쩔 도리도 없고 종점이 거의 다 왔다고 해서 ' 이 차로 돌아 나오면 되겠지 ' 생각하고 그냥 앉아 있었다.

 

버스가 한적한 강변도로에 섰다, 템즈강 너머로 거대한 공장건물만 보이고 주변은 황량했다,

흑인 차장이 다가와 입을 얼었다, 가지런한 치아가 유난히 하애보였다,

"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

길따라 북쪽으로 쭉 걸어가면 그 미술관이 나온다고 손짓했다.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어떻게 타냐고 물으니 ' 그럼 조금만 기다리라 '고 했다. 

 

이젠 뭐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오늘의 운세에 맡기기로 했다.

이윽고 또 다른 버스가 들어와 우리는 인수인계 되었다, 여기 차장도 흑인이었다, 영국에선 버스차장이나 매표소직원, 세금환급업무등의 저임금, 단순노동은 대부분 흑인과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었다,

현대판 노예제도고 어찌 해볼수 없는 계급사회다. 대단하다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

 

그나저나 버스 번호가 몇번인지, 우리가 몇번이나 버스를 갈아타고 있는지 이젠 Out of memory...

 

버스가 출발해 두번쩨 정류장에 서더니 우리에게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했다.

감으로 길을 건너 강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또 다른 버스 한대가 지나가며 뒤에서 누가 소리쳤다.

아까 흰 이를 가진 흑인 차장이 " 그쪽 말고 저쪽이야 ! " 라고 손으로 길을 가르쳤다.

고맙다고 손 흔든 후 내 감만 믿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평일 낮의 한적한 주택가.

 

 

블럭 모퉁이를 돌면 미술관이 보이는게 진리이자 바램인데...

 

아무리 걸어도 미술관은 커녕 미술학원도 안 보였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그냥 쭈욱 걸어가라고... 20분 걸린다고 하고...

 

블랙캡 하나 안 지나 다니고... 자전거라도 있었음 ...

거기다 현주는 햇볕에 얼굴 타니까 자기는 건너편 길로 간다고 하고... 

 

어떤 놈은 차가 세대라서 한대에 한대를 업어 한대가 끌고 가고,,, 

오늘따라 사회에 불만이 점점 쌓여간다.

 

땡볕을 하염없이 걸어도 끝이 안 보여

그늘에 퍼질러 앉아 신발을 벗어 던지자, 신세한탄이 절로 나왔다

 

"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지만 ~ 그 시절 그 추억이 ~ ♪ "

 

평소에 부르지도 않고 가수도 제목도 모르는 이 노래가 방언처럼 지멋대로 터지는 걸 보니 내가 정줄을 놓긴 했구나 !

2층 발코니에서 한 남자가 놀라 내려 보더니 미친놈인줄 알고 얼른 몸을 숨겼다,

 

여자가 한명 지나가기에 얼른 신발을 고쳐 신고...

 

다시 또 끝없는 인생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드디어, 마침내, 결국

지도에 Tate Britain 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건너 풍경이 공장에서 고급 아파트들로 어느새 바뀌었다, 

 

 

 

 

 

 

다 온줄 알고 담벼락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어줬는데 이게 Tate Britain 이 아니였다

쉽게는 안 보여준다 이거지 ? 

 

파란별과 빨간별은 버스정류장, 붉은 선은 걸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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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 강 둑길 - T. E. 흄

 

(춥고 매서운 밤에 쓰러진 한 신사의 공상)

한때는 곱디고운 바이올린의 가락에서

단단한 보도 위에서 번쩍이는 금빛 구두굽에서

황홀을 찾았지만

이제 나는

온기가 바로 시의 소재임을 안다

아, 신이여. 별이 좀먹은

낡은 담요짝 하늘을 작게 접어주오

내 몸을 감싸고 편안히 누을 수 있도록

 

 

The Embankment - T. E. Hulme

 

(The fantasia of a fallen gentleman on a cold, bitter night)

Once, in finesse of fiddles found I ecstasy,

In a flash of gold heels on the hard pavement

Now see I

That warmth's the very stuff of poesy.

Oh, God, make small

The old star-eaten blanket of the sky

That I may fold it round me and in comfort l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