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삼고초려 소프리노

2018. 6. 12. 21:00Russia 2018





차를 다시 돌려, 시내를 통과해, 하노이-모스크바 호텔을 보면서, 외곽고속도로 밑을 통과해, 며칠전 황금고리로 출발하던 그 길을 다시 간다.

그때랑 달라진 건 화창한 아침 대신 비오는 오후.


우리가 동쪽에서 모스크바 진입하는 내내 차가 막혔듯 여기도 북쪽에서 시내 진입하려는 차량의 정체가 질려 뻐드려질 정도로 심각했다,

차 한대만큼의 빈틈도 없는 행렬이 수 km 이상 계속 되고 있는데 오늘 내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



오늘은 여수팀을 위해서 하루를 다 내놓은 셈이다. 저녁 숙소도 장거리 운전을 힘들어 하는 현주를 위해 여정 중간지점에 잡아놓았다. 여수팀과 날짜만 같이 맞았음 정체를 뚫고 모스크바 들를 일도 없고 어중간한 숙소는 거들떠도 안봐도 되고 함께 귀국하면 재밌었을텐데...


공기라도 좋은 곳에서 쉬려고 고속도로 옆 숲속에 호텔을 정했는데 네비를 따라 샛길로 들어서며 바로 후회했다.

인적이 너무 없어 좀 으스스했다, 이럴때 여수팀이 있었음 든든했을텐데 ... 여러모로 아쉽다



한참을 숲속으로 들어가다 담을 따라 들판을 지나더니


흙길로 들어서는게 아닌가.

어라 ?  뭔 호텔이 비포장이다냐


결국 뭔 자재들을 쌓아놔 길이 막혀 있는 곳까지 들어와 버렸다,

Sofrino park hotel (56.109076   37.988957) 좌표를 내가 지도에서 대충 찍었나보다. Park는 고사하고 parking 도 못할 험악한 곳에서 차를 넣다뺏다 돌려서 얼른 도망치듯 나왔다. 지대로 맘편하게 숙소를 들어간 적이 없다 이나라에선...


길옆 웅덩이마저 깊은 늪같아 무섭게 보이고


인가도 없는 곳에 갑자기 색색의 창고같은게 줄지어 서 있는 곳을 지나간다. 생긴건 호주 멜버른의 Brighton beach 오두막 같이 생겼는데 모하는 곳이지 ?  오두막 한채에 2억이 넘는 멜버른의 그 곳을 잠깐 보고 가실 분은 여기를 클릭


사람은 없고 개 두마리만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얼른 자리를 떴다,


아까 들어올때 Tulip inn 뭐라고 써 있는 곳이 기억나 일단 그리로 향했다

입구에 엉성하게 처 놓은 쇠줄에 가까이 다가가자


경비가 나오더니 어떻게 왔냐고 물었다. ' 소프리노 ? ' 하자 고개를 끄떡이더니 차 번호를 적었다,


이번엔 여권까지 달래서 황당했지만 지금은 아쉬운게 나라 순순히 내주었다,

다 적더니 쇠줄을 치우며 손을 몇번 휘저어 호텔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때까지도 표정변화가 없는 경비


위치 설명을 받았는데도 숲으로 더 들어가자 건물들이 드문드문 있고 갈림길도 있어,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또 길을 물어봐야 했다.


첫번째 로터리에서 좌측에 제법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겉을 알록달록하게 장식해 놓은 걸 보니 소프리노가 모던을 추구하는 호텔인가 보다.


길끝과 건물 사이가 포장이 안되어 있어 약간 실망스러웠다,



비를 맞으며 짐을 다 꺼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프런트 아가씨에게 ' 이완호 이름으로 예약했다' 고 했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한다. 혹시 내 이름 전달아 안되는거 같아 여권을 꺼내 줬더니...


이젠 옆에 아가씨까지 합세해 또 뭐라고 한다. 내가 계속 못 알아듣고 당황하자 두 아가씨가 싱크로나이즈드 수영흉내를 내며 '마사지,마사지...'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호텔이 아니였다. 뭔 스포츠센터 였다, 소프리노 호텔을 묻자 앞쪽 건물을 손짓했다.


비를 맞고 다시 차에 짐을 싣고 아까 로터리에서 반대쪽으로 갔다


여긴 제법 고급스럽다.

TULIP INN 큰 글자아래 soprino park hotel 이란 글자가 작게 써있어서 최근 이름을 개명했나보다 생각했다.

건너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또 짐을 다 내려 비를 맞으며 건물입구로 들어갔다


문앞에 서 있던 경비가 가볍게 목례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제법 고급스러웠다, 현주에게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하고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 프런트로 향했다


내가 여권을 내밀며 '예약했다' 고 하니 상냥한 아가씨가 잠시 컴을 누르더니 이번엔 ' 예약이 안되어 있다' 는 것이 아닌가 !

적어간 주소를 보여주자 여긴 소프리노 호텔이 아니고 tulip inn 이라고 한다.

"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소프리노 호텔이 있어요 "

라며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알려 주려고 했다,


내가 종이에 그려달라는 시늉을 하자 생각난듯 화일을 뒤져 아래 지도를 꺼내 설명해 주었다,


짐 다시 싸들고 나오는데 경비 얼굴을 볼 낯이 없었다

두번째 건물에서도 쫓겨나니 불안하고 화도 났는데 오히려 조용한 현주가 체념한 듯해 더 눈치가 보였다


세번째 건물은 숲 저 아래쪽에 있는데 진입로를 찾을 수가 없다.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은 인도턱으로 막혀 있었다. 공원내부를 한바퀴 다시 돌고 와도 마찬가지 상황. 멀찌기 주차하고 걸어가는 수밖엔 없었다. 황당해서 이젠 화도 안 난다.


지금까지 헤맨 상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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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는 먼저 뛰어가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고 난 물에 빠진 생쥐마냥 홀딱 젖은채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갔다

안에서는 도로공사와 조경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 안에서 회랑 같은 곳을 또 한참 걸어가자 호텔 프런트가 보였다





여기가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소프리노 호텔 맞다

프런트에서 체크인할 때는 희망


2,970루블 (53,460원) 결재


프턴트 여자가 뭔 귀중한 것인양 꼼꼼히 적고 도장까지 찍어준 수영장 티켓엔 첫번째 갔던 건물 그림이 찍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실망

낡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깽겨 타서 수동식 버튼을 누르자 덜컹하며 사람을 한번 들었다 놓았다.

' 탁 ! ' 도착해서는 버튼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뭐 부러지는 것처럼 커서 처음 타는 사람들을 놀래켰다,


객실에 들어와서는 절망

바닥재는 틈이 안 맞아 여기저기 벌어져 있고, 지금은 골동품인 삼성브라운관 TV. 좁고 구닥다리 화장실, 촌스런 커튼, 녹슬고 다 삭은 베란다... 가장 문제는 비릿한 물때 냄새였다, 환기 되라고 창문을 활짝 열고 잠을 청해도 악취때문에 깰 정도였다







손도 닿기 불결할 정도로 드러운 발코니 밖으로 나가 보았다,

정원 여기저기 공사중,



이 나라는 민박이건 여인숙이건 여관이건 모텔이건 다 호텔이라고 한다. 단언하긴데 이곳은 호텔이 아니라 소비에트시절 정신병자 수용소다.


WiFi 접속방법도 너무 복잡해 현주가 물어본다고 프런트로 내려갔다.

갑자기 할마니정도로 나이든 메이드가 열린 문을 세게 노크하며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뭐라 계속 혼잣말을 하며 베갯잎 하나를 갈아주고 나갔다. 베개가 두개인데 하나만...


베드 두개를 붙이고 협탁 같은걸 끌어다 밀리지 않게 고여 놓고 좀 쉰다.

느리고 끊어지는 인터넷, 애들은 분명히 복도에서 뛰는데 내 옆에 있는 이 생생한 환청


이 방에 조금만 더 있음 둘다 정신병자 될 거 같아 아까 본 식당에서 저녁이나 먹자고 1층으로 내려왔다.

서쪽편은 객실이 있는 호텔이고 회랑을 지나 동쪽 식당으로 가니 이쪽은 최근에 지은 듯 깨끗하고 좀 세련되었다




1층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상당히 고급스러웠다.

여자 매니저가 오더니 여긴 라운지바고 2층이 식당이라고 한다. 여기 매뉴를 물어보니 파스타등 지중해식 레스토랑이고 2층은 러시안 음식이라고 하며 2층에선 객실키만 보여주고 결재는 체크아웃할때 같이 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헌 여자가 ' 자기가 통역해 주겠다 ' 고 한마디 하며 사라졌다,


2층 식당을 한번 보려고 매니저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매니저가 2층 식당 직원에게 우리를 설명해주고 우리는 그 사이 식당안을 살짝 들여다 봤다. 여긴 뷔페식이고 손님들도 꽤 있었다, 현주가 저녁때 뷔페는 좀 부담스럽고 내일 아침에 여기 또 오게 되니까 그냥 1층으로 가자고 했다. 나도 사실 1층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2충 로비엔 학생들 수십명이 꽉 차서 왁자지껄했다, 한 여자가 우리에게 오더니 도와줄 일 없냐며 ' 이 많은 사람들중에 영어 하는 사람 없겠어요 ? ' 환한 얼굴로 친절하게 말했다.


다시 1층 라운지바로 내려왔다. 그 사이 러시아 커플이 창쪽 자리에 들어와 있다. 우리도 그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난 키릴문자 메뉴판을 한줄한줄 물어보고 매니저는 옆에서 구글로 번역하고 서빙맨은 적고 있으니...


갑자기 옆자리 러시아 여자가 ' carrot ! ,,,, orange ' 하며 끼어들었다,

우리 꼴이 답답하고 오늘내로 저녁을 못 먹을거 같았나보다, 덕분에 쥬스에 버섯파스타에 샤슬릿을 주문할 수 있었고 소스와 garnish(고명), 케찹까지 소소한 부분까지 끝낼수 있었다, 주문 간신히 끝낸후 내가 이마에 땀닦는 시늉을 하자 모두 웃었다


현주 뒤에 금발의 러시아여자가 도와주었다. 참고로 같이 온 남자는 여자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다


서빙남자가 중앙아시아 출신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카자흐라고 한다. 내 번역기로 ' 나는 카자흐스탄을 사랑합니다 ' 라고 써서 보여 주었는데 수줍음을 타는지 얼굴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이후로 밥먹을때 가끔 다가와 번역기를 들이대는데 거기엔 ' 더 필요한거 없습니까 ? ' 라는 문장만 적혀 었었다



많이 힘들어 하는 현주



전구 하나 나간거 없이 은빛금속이 반짝반짝한 샹들리에. 색깔이 수시로 바뀌는 간접조명, 푹신한 소파... 객실은 소련이고 레스토랑은 러시아다


창밖으론 비가 그치자 아이들이 뛰어 놀고 어른들은 산책을 나왔다





음식이 다 맛있었다, 특히 파스타와 감자튀김은 5성급 호텔 수준이었다.

러시아 숙소는 수준이하, 러시아 음식은 기대이상,




갑자기 꼬마애들이 몇명 들어오더니


중학생, 고등학생, 보조선생님, 학부모들까지 순식간에 홀이 가득찼다,

스크린에 댄스강습 화면을 띄워놓고 남자강사가 앞에서 율동을 하자 모두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무슨 여름캠프 같은데 졸지에 나이트장이 된 거 같았다,


아가씨들의 춤추는 뒷태들이 예술이었다.

이나라 사람들은 참 춥도 잘 추고, 쭈삣거리는 것도 없고, 신체조건들도 훌륭하고.


러시아는 참 스텍터클한 나라다.

밥먹고 이런 멋진 공연까지 라이브로 즐길 줄은 몰랐다.


나도 앉아서 음악에 맞춰 몸을 들썩였다




8시 40분쯤에 공연이 다 끝났다,

직원을 불러 ' 계산서 달라, 카드로 결재하겠다' 라고 화면을 보여 주었다. 총 1,590 루블 (28,620 원)

조금전 객실에서의 참담한 심정을 완전히 보상받은 기분이라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옆 테이블 여자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여자 매니저도 끝까지 친절했다


호텔 프런트에 잠깐 들려 구글 번역기로 ' 헤어 드라이기 빌려주세요' 하니 단박에 알아듣고 책상 아래에서 꺼내주었다,

' 내일 갖다줄게요 ' 번역해서 보여주었다. 번역기 대박 !



방에 오니 아까보다 냄새가 좀 빠져 있고 아직 환한 창밖 숲에서 새소리까지 들리자 휴양림에 와 있는 것 같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


Booking.com 에 올려진 이 호텔의 사진들을 현주에게 보여주며 억울함을 호소하자 현주도 그걸보고 제대로 낚였다고 인정했다,

러시아 애들은 후진것을 좋게 보이게 찍는 방면에도 예술성이 탁월했다. 여러모로 예술인 나라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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