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5. 12:00ㆍBelgium 2016
루방라뇌브를 떠나 북서쪽 다음 목적지를 찾아 간다.
약간 외진 길에 지나다니는 차들도 별로 없어 쓸쓸하기까지 한데 예전 여행과는 느낌이 약간 다르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여정이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마저 다 답사해보고픈 욕심과 약간의 비장함까지 생겼다. 그래서 날씨와 컨디션의 영향을 좀 덜 받고 있다. 뭔가 보람되고 근사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에 덤으로 즐거우니 됐다.
이름모를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길모퉁이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발길질을 하는 걸 목격했다. 천국에서도 부부싸움은 하는구나~
어제 워털루에서와 같은 상황이 또 발생했다. 이번 목적지도 분명 벌판이던데, 번지수를 몰라 마을 안에서 헤매고 있다.
한 젊은 남자를 붙들고 물어보니 자기도 외지인이라 모른다고 한다,
길가에 서 있는 동네 할머니에게 물어보았다. 할머니가 친절하게 알려는 주시는데 영어가 미숙해 대충만 알아 들었다.
또 마을안에서 헤매다 유치원 애들을 통솔하는 선셍님에게 물었더니 유창한 영어로 알려 주었다
" 길끝에서 우회전, 직진, 표지판 보고 좌회전 ... "
설명대로 찾아가니 Vlooybergtoren 이라고 발음도 어려운 단어가 적인 표지판까지는 왔다, 그런데 이 표지판이 있는 자리가 사거리를 약간 벗어난 지점이다. 우리 차 뒤로 다른 차가 서 있어서 후진을 못하는 상황이라서 갓길에 잠깐 세웠는데 지나가던 동네 할아버지가 ' 자전거 도로를 막고 있다' 고 궁시렁 댔다.
뒷차가 차를 빼서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아줌마가 내려 우리를 도와주었다
" 후진, 좌회전 후 조금 들어가 차 세우고 걸어가라 ..."
그 설명대로 오긴 왔는데... 목표물은 안 보이고 숲으로 향하는 입구에 파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거기엔 말과 자전거 도안이 그려져 있고 자동차는 없었다. 그냥 차로 밀고 들어가려니 현주가 말렸다.
거리를 모르니 무작정 걸을 수가 없어, 차를 끌고 더 가자 넓은 들판 너머로...
언덕위에 내가 찾는 전망대가 보였다, 일단 감은 잡았는데... 너무 멀다.
산속 임도로 들어갔다가 더 이상 진입불가. 후진하며 차를 험하게 몰자 현주가 짜증을 냈다,
다시 원래 그림 표지판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현주가 ' 그냥 걸어, 힘들면 내가 혼자 가서 사진 찍어오겠다' 고 하는데 그 말에 확 짜증이 났다.
현주는 멀찌감치 앞서가고 난 삐져서 투덜대며 천천히 뒤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가시덩쿨이 내 손등을 긁었다. 지팡이로 내리치며 거기다 화풀이를 했더니 조금 나아졌다.
숲이 끝나고 넓은 옥수수 밭이 언덕부터 아랫마을까지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사람 키만큼 자란 옥수수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차를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유를 알 거 같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빗물에 골이 깊게 패여 구루마도 못 갈 정도였다.
그늘 한점 없는 들판.
땀이 얼굴로 흘러 내렸다. 눈으로 들어간 땀 때문에 따가워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그 순간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뭔가가 보였다. 계단이었다. 하늘에 닿으려는 바벨탑처럼...
하늘에서, 계단 끝에서 현주가 손을 흔드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삐져서 대꾸도 안하고 나무아래 의자에 앉아 몸을 숨겼다.
옥수수 밭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으니 현주가 내려왔다.
와서 한다는 소리가 “ 계단 밑으로 마을길이 있네. 차 끌고 올 수 있었는데...”
그 말을 듣자 말라가던 땀이 다시 삐져 나왔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발길질 하던 광경이 순간 떠올랐다.
오기로 혼자 전망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 올라갔다.
마침내 붉게 녹슨 철계단 앞에 섰다.
39-Vlooybergtoren (전망대) blerebergstraat 3390 Tielt-Winge
원래 이곳엔 10m 정도의 원두막 같은 나무 전망대가 있었는데 불이 나서 싹 타버렸다고 한다. 그것이 한이 되어 절대 불에 타지 않는 전망대를 만들었다. 비록 계단끝은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하늘까지 닿으려는 인간의 끝없는 의지를 표현한 것 같다.
신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딱 자벌레 포즈다. 그런데 미물도 쉽게 하는 이 자세를 인간이 흉내 내려면 중력을 무시하고 중량과의 싸움이기에 결코 간단치 않았다. 무게가 나가는 장식 없이 작고 가볍고 홀쭉하게 만들다보니 이런 흉측한 모양이 탄생했다.
계단 끝까지 올라갔다.
옥수수 밭 가장자리로 숲, 그 너머엔 작은 마을이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이 번갈아 희미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무 밑에서 안가고 기다리던 현주의 외침이 약하게 들려왔다. “ 포즈 좀 잡아봐 ”
" 흥 ! "
360〬 맘껏 풍광을 감상한 후 난간을 잡고 발등만 보며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왔다.
만약 차에 탄채 편하게 왔다면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을까 ? 힘은 들었지만 어쨌든 현주 잔소리 덕분에 보람도 더 컸고 땀을 쪽 흘리고 났더니 기분도 상쾌하다. 자연스럽게 화가 풀리고 이내 서로 키득댔다.
할아버지는 지금쯤 설거지를 하고 계시겠지 ?
그나저나 저 전망대는 한번에 몇 명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
오면서 현주를 먼저 보내고 숲을 향해 등돌려 소변을 보는데 숲속에서 한 아줌마가 튀어 나왔다. 얼덜결에 나도 튀었다
차로 돌아와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수습하고 차키를 넣고 돌리는데 핸들이 잠겨 시동이 안 걸렸다.
현주가 차 고장난 줄 알고 놀라는 순간 차가 부르릉 몸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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