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하동질러가기.

2010. 4. 25. 16:11국내여행

 

 

           토요일 아침. 안사람은 막내를 데리고 여수로 떠났다. 

       난 그날 밤 11시가 되어서야 모임이 끝났고 휴대폰에는 찜질방에서 잔다는 문자만 덩그런히 남아있었다.

           호텔도 친구집도 아닌 그런곳에서 잔다고 하는지...

           내일 아침에 찜질방앞에서 짠 하고 나타나야겠군 !

           그럴려면 일찍일어나야지. 

       알람을 맞춰놓고 TV를 보다가 리모콘 큰애 넘겨주고 1시가 되어서 잠자리로 기어들어갔다, 넘 졸려서.

            4시 알람은 4시 정각에 날 깨웠다. 냉정하게...

       머리감고 깜깜한 새벅에 차 시동을 건다. 오늘 달릴 거리가 얼마나 될까 약간 흥분된 호기심에

       거리 리셋을 시키고 밤 안개속으로 조용히 사라진다

 

         대진고속도로를 들어서 빈 도로를 느긋하게 가다보니 갑자기 지름길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주,사천까지 고속도로로 돌아가지말구 산청에서 지리산을 옆구리로 끼고 하동까지 국도로

       질러가는거다.  야홋 !

 

        아래 지도는 대략적인 노선.  분홍색표시길이 이번 노선. 우측 삼각형부분에 진주분기점이 보인다.

      빨간 사각형은 세부지도를 만들어놓았다.  어느길이 더 빠른지 여러분들도 생각해보시길...

   예정에 없었던 여정이라 사진은 없습니다. 지송 ~

 

 

               A

                 산청 IC 로 나왔다.

              톨비도 절약되고, 질러가니 시간도 절약되겠지. 연비는 좀 나쁘겠군...머리를 열심히 굴려가며.

              59번 국도를 만난다. 좌측으로 가면 시내. 우측으로 꺾어졌다. 잠시후 좌회전하며 고속도로 밑을 지났다.

              갑자기 길이 비포장으로 바뀐다. 이 여정이 순탄치 않겠군, 공사현장을 벗어나니 다시 포장도로.

               차 몇대를 추월한후에 한적한 국도다.  차창을 다 열었다. 맑은 공기를 꽁짜로 다 차에 싣고가려고.

              한의학의 고장 산청 !   시원하고 깨끗한 산청의 공기가 차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온다.

                 산청에서 북쪽 생초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한의학박물관도 있고 드라마에서 본 허준에게 해부를

              위해 몸을 맡기는 스승 유의태도 회상해본다.

                 갑자기 차가 산으로 올라간다.  hair pin course.  장난이 아니다.

              과속도 아닌데 커브를 틀때마다 중앙선을 넘기일쑤다.  다행스럽게 마주오는 차도 없다.

              차를 바꿔올껄...늦은 후회에 차는 두부덩어리처럼 출렁거린다. 경사를 올라가는 힘은 괜찮은데

               무른 서스팬션이 이런 커브엔 사고나기 딱이다. 

                 잠시 차를 세울수도 없다. 모든 길이 급경사고 커브길이기 때문이다.

               머리위로 길들이 겹겹이 보인다. 처다만봐도 아찔한데 저 길을 을라가야 한다니...

                 맞은편 산이 병풍처럼 높이 솟아있는데 그 눈높이를 가름해가며 산을 오른다.

                 맞은편 산에 중턱이 보이던 곳이 점점 산 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산도 그쯤 올라가고 있겠구나

                 왼쪽을 보면 발아래 동네가 항공사진처럼 보이고 오른쪽은 머리위로 길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갑자기 나무들이 달라졌다. 4월에 파란 잎색은 하나도 안 보이고 갈색의 잔가지들만 앙상한 나무들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정상이다.  거센 바람이 산꼭대기를 넘으며 나무들을 다 쥐뜯어놨다.

                 제단처럼 쌓아논 곳에 차 몇대가 세워져 있고 몇몇이 바람을 맞으며 산아래를 내려다보고있다.

                   산을 넘으니 이건 뭐 더 점입가경이다.

                 2단 저속기어의 엔진브레이크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내리 꽂히는데 앞서가던 스트렉스가

                 깜빡이를 켜며 길을 비켜준다. 내 책임이 아니다. 엑설 한번 밣은적 없어도 점점 가속도를

                 붙이는 이 산을 원망하자.

 

 

 

               B

                    저 밑에 보이던 동네까지 내려왔다.  마을위에 잿빛 연기인지 구름이 떠있다.

                 그 구름위에서 한참 아래까지 단숨에 내려오니 고막은 드럼치듯이 꿍꽝거린다.

                    명색이 두자릿수 국도(59, 20) 인데 이건 뭐 동네 안길이다.  중앙선은 물론이요 흔한 페인트조차

                 칠해지지 않은 시멘트길. 거기다 높낮이가 하나도 다듬어지지않아 불끈 올라간 차는 가슴까지 덜컹

                 내려앉게 떨어진다.  도저히 추천할 길이 아니다. 나중에 shock absorber 나갔단 원망을 들을께 뻔하니

                    산을 내려와서도 한참을 산과 산사이길로 내려가니 옆에 새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게집이 듬섬듬섬 있는 조금 큰 마을에 삼거리에 도착하여 우회전한다

                 지리산 대원사들어가는 이정표가 있고 조그만 개천건너 산밑에 팬션들이 많이 보인다.

                 이 도로가 경상도사람들이 지리산을 찾는 메인도로인가보구나 생각이 든다. 맞나요 경상도분들 ?

 

 

               C

                  또다시 산속으로 더 들어가는 기분이다.  도로표지판엔 조그만 마을이름과 4자릿수 도로번호만

               보이고 네비도 없고 지도도 없으니 불안한 마음이 점점 커진다.  상대적으로 경치는 점점 좋아진다.

               여름헷볕을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봄 새잎색이 눈부신 연두색이다.  벗꽃인지 배꽃인지 하얀 꽃들도 그대로고

               그 꽃터널을 지나서 계속 올라가니 내 앞에 차들이 점점 없어지며 나중엔 나 혼자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이젠 후회는 없다. 길을 잘못들었다해도 이 무릉도원을 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인거다.

                  역시나 길은 점점 좁아져 중앙선이 없어지더니 '국립공원에 오신걸 환영한다' 는 푯말과 함께 매표소

               직원이 천원짜리를 한 웅쿰쥐고 날 기다리고 있다.

                   '하동'가는 길을 물으니 다시 차를 돌려 청학동으로 가란다. 터널도 하나 지나야 된다고...

                내려가는 길. 완전히 내 차선으로 들어와 올라오는 차가 있어서 크락션을 빵빵 두번 울려줬다.

                꽃구경에 완전 넋이 나간 사람인가보다. 저러다 마지막 꽃구경되지 빙신XX ... 욕을 해대며 내려오니

                청학동가는 표지판이 작게 보인다. 우회전하여 예치터널을 지나니 왼쪽에 아름다운 저수지가 보인다.

                조금더 들어가니 재법 큰 마을이 보이고 팬션도 보이고 직진하면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 좌회전하여

                차는 산위로 올라간다. 갑자기 큰 터널로 들어섰다.  시속 100km 로 달려도 한참 걸린다. 꽤 긴 터널이다

                 지리산 자락이 이 정도로 높구나 새삼 느끼며 약간 좌측으로 틀어진 터널을 빠져나오니 햇살이 눈부시다.

 

 

               D

                 엑셀이 필요없이 계속 내리막길이다. 조용한 동네를 지나 삼거리.

                우측엔 유명한 청학동이란다. 이 산속 구석까지 속세의 오물이 튀겨서 여기도 많이 상업화 되었다던데...

                삼거리를 지나서 이어지는 동네엔 큰 고목들이 서있고 그 그늘아래에 행락객들이 몇명씩 보인다.

                  이미 안 사람에겐 한참 늦을거라고 아직도 길을 감을 못 잡았다고 말해놨다.

                  안사람은 여수시장에 가서 할머니들이 갖고 나온 싱싱한 물건들 장볼수 있겠다고 벌써 신났다. 

                 쉬고가고싶을 정도로 왠지 정가는 마을이다.  차세우고 커피한잔 했음 참 좋겠구만

                 마을을 벗어나니 우측에 도로옆으로 길게 호수가 누워있다. 첲재 팬스를 처놓아서 상수원보호구역

                 이지 않을까 싶다. 경북 주산지 호수처럼 잔잔하고 조용하다.  갑자기 소변이 마렵다.

                   

 

               E

                  아직은 이른 아침인가보다. 8시.

                원래 이렇게 차들도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도로인지 궁금해졌다. 낮에는 많이 붐빌래나

                서울올라가는 아들네 식구들 배웅한다고 노인내외분이 서걱서걱 손을 비비며 나오고

                손주는 신나서 뛰어다니고 차 트렁크엔 무공해 농산물이 바리바리하다.

                   산모퉁이를 도니 갑자기 이국적인 풍광이 펼처진다. 

                파란 호수, 잔잔한 수면위로 아침햇살이 눈부시고, 호수끝엔 하얀색 호텔이 그림처럼 세워져있다.

                그 뒤로는 막힘없이 탁 트인 남쪽하늘...

                 캐나다 루이스호수나 스위스 풍경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               

                   冷(차갑다)하지않고 凉(서늘)한 봄바람이 차창으로 살랑살랑 들어온다

                   호수를 낀 도로엔 군데군데 차 세우고 전망을 감상할 벤취도 보이고 드라이브길로는 최고다.

                장미단추(멀리서 보면 예쁜데 가까이서 보면 기미가 보이는 여자)처럼 서있는 청학콘도를 지나니

                 또 한적한 시골길이다.

                 

 

               F

                              원래 예정인 59번 국도는 벌써 저 만치 가버렸고 난 1003호 지방도를 내려가고 있다.

                              길위에 예쁜 강아지가 다리를 뻗고 하품을 하고 있다.

                           급차선 변경을 해서 피하긴 했지만 이 마을이, 이 길이 평소에도 평화로운 곳이였음을

                           하룻강아지 한마리가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정표에 횡천 !  왠지 마을 이름이 꺼림칙하다. 그런데 통과해야만 하는 동네.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마을을 들어서니 지금까지 본 동네중에 젤 큰거 같다.

                           벌교처럼 일본식가옥도 조금 보이고 사거리 구멍가게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있는

                           동네 할아버지들도 친근하다. 남쪽 경상도땅에서 전라도로 넘어오는 유일한 국도가

                           이 마을을 지난다. 그래서 마을이 좀 번성했나보다.

                              이제 나도 큰 도로에 차를 올렸다.                    

 

 

               G

                   횡천에서 하동가는 길           

                  대학교때 거제도 친구 결혼식을 보기 위해 순천에서 진주까지 열차를 탄적이 있다

                 단선열차는 광양역처럼 귀여운 역들마다 다 들리고 섬진강을 건너더니 갑자기 전라도와는 무언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높은 산 부스러기들이 아래로 떨어져 내려와 완만한 경사를 이루더니 너른 평야가 되었다

                 탁 트인 시야, 높은 곳의 마을들. 연두색 녹색의 논밭, 전설의 고향 대나무숲 ...

                 객차사이에 매달려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그 아름다운 풍경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기회되시면 꼭 열차를 타고 이 곳을 지나가시라 추천합니다.

                  하동은 매화축제때는 절대 오면 안된다. 시내까지 차가 막히는데 사람걷는 속도보다 더 느리니까.

                  할아버지가 전동 스쿠터를 타고 1차선을 달리는 동네.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다 섬진강 다리를 건넌다

                    우측 강변길로 올라가면 화개장터가 나온다.  난 좌측으로...

                  대하소설 '토지' 에 평사리 최참판네 집위에서 섬진강변의 평야를 내려다보는 호사도 누릴수있다.

                  

 

 

               H

                   하동을 벗어나 광양까지 가는 길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길은 4차선으로 넗어졌다

                광양제철소와 하청업체들 소유의 화물차량들이 육중한 체중으로 과속을 한다. 거기에 질세라

                2톤을 훌쩍넘긴 SUV까지 가세하여 도로는 순식간에 혼을 쏙 빼놓는다.

                  돌려서 말하거나 부탁하거나 애교를 떠는 교통표지판만 봐오다가 기분까지 나빠지는 도로표지판을 본다

                  " 80km 엄중단속  -광양경찰서장-"  "81km 이상은 짤 없다" 뭐 이런 식이다.

                 그 표지판을 보며 " 놀고있네 ! "  한번 일갈을 날리며 속도계바늘을 2시방향으로 확 껵어버린다. 

 

                  원래 고속도로를 탔으면 1시간정도 걸리는 여정이였으나, 이렇게 지름길로 오니 2시간 걸렸다 .

                   물론 초행길이니 잘못들어가 돌려나온것도 몇번된다. 

                  기름도 많이 먹고 서스펜션과 타이어와 쇽업쇼버에도 무리가 갔다.

                  그러나 결코 아깝지 않은 선택이였다.  인생도 그렇게 힘들지만 멀리 돌아와야 하는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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